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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Oct 05. 2020

부부 동반 치매

"내 아내는 괜찮은 거죠, 이제 안 아픈 거죠?"


"내 아내는 괜찮은 거죠? 이제 안 아픈 거죠?"


아내가 본인에 의해 어떻게 다쳤는지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술에서 깨자 아내가 다쳤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 애처로운 표정에 지금만큼은 차마 '당신 때문에 다쳤다. 이러니까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고 질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아내도 치료를 잘 받고 있고 점점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말라는 위로를 건넸다. 내가 아내도 치료해왔다는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들어서인지 갑자기 잘 부탁드린다며 내 손을 덥석 잡는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같은 대화를 한다.  

"내 아내는 괜찮은 거죠?"

할아버지는 내가 본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회진 때마다 내 표정을 살피며 아내의 안녕을 확인하며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동반 치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동반 치매였다. 치매가 감염병도 아닌데 한 배우자가 치매를 진단받고 어느 순간 다른 배우자도 기억이 떨어진다. 자녀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요새 치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우연히 부부가 동시에 진단받는 경우가 늘어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이 데려온 한 노부부를 지켜보면서 동반 치매를 단순히 치매 환자 두 명으로 각각 접근하는 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시작은 할머니였다. 몇 년 전 우울증상과 기억력 문제로 자녀들과 대학병원을 방문한 할머니는 검사 후 초기 치매를 진단받았다.  할머니는 꼼꼼했던 이전과 달리 집이 지저분해도 청소를 하지 않았다. 어떨 때는 가스불을 켜놓고 나가 불을 낼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자녀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부부 사이의 문제였다.


자녀들도 처음엔 부부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보니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니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 어머니 입에선 놀랄 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녀들이 아버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다독여줬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자녀들은 얼마나 속상하면 술로 마음을 달랠까 하는 생각에 이를 말릴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의 술 문제도 심각한 상태가 됐다. 술에 취해 집에서 누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 밖에 나갈 때는 술을 사러 가는 경우 말고는 없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술 사러 가는 뒷모습에 대고 누구를 만나러 가냐며 화를 낼 뿐이었다.


처음엔  할머니를 망상이 동반된 전형적인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할아버지를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 이해했다. 할머니의 의부증이 할아버지를 힘들게 했을 거고 돌봄에 대한 부담이 잠재된 알코올 문제를 악화시켰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알코올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들처럼 할아버지는 병원에 오는 것을 꺼려했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으며 치료를 권유하는 자식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식들이 아무리 말렸지만 할아버지가 몰래 술 마시는 것까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술 취한 상태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밀쳐 크게 다친 것이다. 결국 자녀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병원에 왔다.


그런데 입원 후 내가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알코올 중독 환자의 반응이 아니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분노나 술에 대한 욕구보다 아내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표정에는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마치 엄마와 떨어진 다섯 살 아이와 같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하루가 지나면 다시 리셋되는 것 같았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나온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두 사람의 사랑이 남아 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기억은 다음날 아침 사라질지언정 아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은 다시 살아나 아내와 연결되었다.


자녀들을 통해 들은 할머니도 자신을 다치게 한 남편이 보고 싶다며 남편에게 데려다 달라며 애기처럼 조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의 의식 속에 할아버지는 분명 다른 여자를 만나는,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운 사람 이어야 했다. 할아버지 마음속엔 할머니는 술로 잊지 않고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둘 다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치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전부터 가족들에게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치매 증상으로 인한 무료함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초기 치매 남자 노인들의 경우 술 문제가 동반된 경우를 자주 본다. 아마 할아버지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너져 가는 현실을 술에 기댔던 건지 모른다. 더해 할머니의 나쁜 치매 증상인 의부증 또한 단순히 치매가 진행되며 나타난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하게 아무 말 없이 술을 사러 나가는 그 뒷모습에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만들어낸 할머니의 또 다른 현실이 아닐까


동반 치매의 원인을 하나로 짚어내기는 어렵다. 분명 돌봄의 육체적, 심리적 스트레스도 상대 배우자의 치매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부부가 오랜 시간 같은 생활환경에 살아오면서 동일한 치매 위험 요인에 노출되었을 수도 있다. 또는 후생유전학적 관점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해온 부부에게 유전적 관점에서 비슷한 감정적, 신체적, 유전적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42쌍의 부부에게 작은 상처를 내고 어떤 대화를 나누냐에 따라 두 사람의 면역력이 같이 변화하고 170개 이상의 유전자가 변했다는 오하이오 주립대 의과대학의 연구결과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병이 발생하든 간에 부부동반 치매가 주는 메시지를 우리는 읽어내야 한다.


미국 유타주립대의 캐시 카운티 연구에 따르면 한쪽 배우자가 치매에 걸리면 다른 배우자가 치매를 앓을 확률이 6배 올라갔다. 특히 배우자가 아내인 경우 3.7배임에 반해 배우자가 남편일 경우 11.9배로 더 위험이 높았다. 우선 치매 배우자를 돌보면서 받게 되는 육체적, 심리적 돌봄 스트레스를 상대 배우자의 치매 발병 원인으로 생각할 텐데 그렇게 단순하지만 않은 것 같다. 워싱턴 대학의 피터 비탈리아노(Peter Vitaliano) 박사 연구팀은 치매에 걸린 배우자가 사망하기 2년 전부터도 인지저하가 나타났는데 배우자가 사망하고 1년이 지났음에도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돌봄에 대한 책임감과 육체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사라졌음에도 인지저하가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반 치매에 내재된 신경병리학 질병 과정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부부 중 한 명에게 치매 증상이 발생했다면, 다른 배우자의 힘든 감정뿐만 아니라 잠재적 치매 위험에 대해서도 들여다보시라 조언하고 싶다.
 


핵가족이 늘면서 자의던 타의던 이제 노년기에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부부 중 한 명에게 치매가 생기는 상황도 비극적이다. 하지만 돌봐주는 다른 배우자, 특히 그게 아내라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부부가 많다. 그러나 부부동반 치매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는 상황이 아니다. 자녀들이 데려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자녀도 돌보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답이 없다. 현재 독거노인보다 부부동반 치매 노인은 통계조차 잘 잡히지 않는다. 분명 진료실에 방문하는 부부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노부부로부터 느꼈던 그 애틋함과 애잔함을 또 다른 누군가가 마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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