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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중 Oct 12. 2019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불면'

치매와 살아가기-실전 편 1

그동안 특별한 문제를 호소하지 않던 80대 치매 할머니의 아들이 급하게 상담을 요청했다.


'어머니께서 밤에 안 주무세요. 요양원 선생님들도 이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고 잘못하면 여기서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낮에 일을 해야 하는 아들 입장에서 집으로 데려가 모실 수도 없고 다른 요양원을 알아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아들은 밤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돌봐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에 표정이 굳어간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의 친척들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니 치매 증상이 주위 사람들 힘들게 하는 건 맞지만 잠을 안 자면 그냥 가만히 두면 되지 왜 그리 눈치를 주나, 요새는 수면제도 좋다던데 그거 먹으며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마라'


정말 그럴까? 수면제만 먹이면 바로 해결될 문제일까?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불면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잠드는데 시간이 걸리고, 깊은 수면은 감소하며, 얕은 수면은 증가한다. 의학적으로 90세 이상이 되면 깊은 수면이 사라진다고 보고된다. 그래서 어르신분들은 중간에 자주 깨고, 한번 깨면 잠들기가 어렵다. 낮에도 마찬가지이다. 피곤해하다 잠시 눈을 감지만 작은 인기척에도 바로 눈을 뜬다.  

이 중에서 일주일이 지나도 불면이 계속되면 그들은 한계를 느끼고 병원을 방문한다. 먼저 의사들은 면담과 수원 다원검사와 같은 검사를 통해 정신 생리적 불면의 원인을 탐색하고 환자 개인의 수면 위생을 파악한다. 여기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면 위생을 재교육하고 발견된 원인을 교정하고 필요시 수면제를 처방받아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두 달 이내 불면 문제는 완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에게 불면이 나타났다면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일반 불면증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나쁜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불면은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행동'의 문제다. 


수년 전 치매 진단을 받고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지내왔던 70대 할아버지가 입원했다.

입원 전 할아버지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에 낮에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밤이 되면 가족들과 같이 운동, 산책을 하며 안정적으로 지냈었다. 그러나 여섯 달 전 발생한 낙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할아버지는 밤에 소변 누러 가는 도중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골다공증으로 인해 약해진 대퇴골이 골절되었다. 다행히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한 달간 침대에서만 누워 지내면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골절로 움직이면 안 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통증 조절 위해 진통제를 사용하면서 낮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점 밤에 자다가 깨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한밤중에 자다가 깨 사별한 아내를 찾다가 소리를 질렀고 새벽에 자고 있는 자식들에게 밥을 달라하고 안 들어주면 화내며 욕을 했다. 결국 매일 밤 사투를 하던 가족들은 골절은 회복되었으나 점점 심해지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감당할 수 없어 입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입원 후 나타났다.

병실에서 지내는 첫날밤 소등을 하고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자는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조용히 일어나 맞은편 침대에 다가갔다. 그리고 코를 골고 자고 있던 다른 할아버지 자리에 비집고 들어가 옆에 눕더니 갑자기 상대방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두 팔로 꼭 안았다.

이상한 느낌에 깨어난 맞은편 할아버지는 순간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욕부터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르는 늙은 노인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안고 있으니 말이다. 큰 소리가 나자 간호사와 보호사들이 급하게 병실을 찾았고 병실 불을 켰을 때 분노에 휩싸여 소리치는 노인네와 대비되어 바닥에 구부려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노인네의 모습이 보였다.


위와 같은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는 뇌가 망가진 노인의 변태적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의 '불면'에 의해 벌어지는 상황이다. 밤낮으로 잠들지 못하는 일반 불면과 달리 낮과 밤이 바뀌는 '수면 주기(circardian cycle)'의 장애가 특징이다. 우울, 불안 또는 노화로 인한 영향으로 불면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치매로 인해 뇌의 일중 주기를 담당하는 시신경 교차 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의 퇴행이 발생하여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밤낮만 바뀌는 게 아니다. 밤이 되면 낮보다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과 지남력(현재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 특히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인식)이 더욱 떨어지는데 이를 '일몰 증후군 (sundowning syndrome)'의 '야간 혼미(nocturnal confusion)' 현상이라 부른다. 낮 시간에 누워서 축 늘어져 잠을 자던 노인들은 밤이 되면 일어나 낮보다 더 혼란스러운 모습과 초조감을 보이며 가족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다. 잠시 잠들었다 하더라도 갑자기 깨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상 행동을 하고 밤인지도 모른 채 곧 아침이라 생각해 밖으로 나가려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혼란감을 느낀다. 자기 전 내가 만났던 사람이나 꿈을 꾸면서 봤던 사람으로 착각하며 행동하기도 한다.  


잠을 안 자고 밤을 헤매는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과 감정 기억이 흘러가고 있을까.

낮시간 동안 하루 종일 멍하니 티브이만 응시하고 있거나 눈을 감고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무기력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던 그들이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렇지 않다. 돌아다닌다. 사람을 찾아서. 보통 사람들처럼 잠을 자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낮에는 주위를 향한 모든 관심을 끊은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행동이 '필사적'으로 변했다고 느꼈다.

밤이 되면 자신을 확인시켜줄 상황과 대상이 없다. 아무도 없다.

밤이 지나고 낮이 올 것이라는 생각조차 사라진다. 그 시간에 정지된다.

보이지 않는데 누가 부른다. 누가 나를 찾고 있으니 가봐야 한다.

그들에게 사람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밤의 적막함은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칠흑 같은 밤에 밀려오는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숨 막힐 정도의 압도감이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깊이 일 것이다.  

철저히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려는 노력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을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찾았을 것이다. 이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생존 본능이다. 


나의 아버지는 뇌의 2/3가 손상될 만큼 심각한 뇌졸중으로 사경을 헤매며 중환자실에 계셨다. 당시 의사들은 뇌부종으로 인한 섬망으로 심한 혼란감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회복하시고 그 당시 상황을 돌이키며 아버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여러 간호사와 의사가 자신의 앞을 지나쳐 갔으나 아버지는 그들과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의 눈에 자신이 들어오지 않으면 그 순간 자신은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목놓아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섬망 증상으로 보였겠지만 아버지에게는 살려달라는 외침 (crying for help)이었고 현실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필사의 투쟁이었다.


그렇기에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 불면이 나타나면 절대 칠흑 같은 밤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두우면 잠을 더 잘 잘 거라는 생각에 불을 다 끄고 그들을 혼자 두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특히 그들이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을 신경 써야 한다. 의학적으로 야간 혼미(night confusion)는 '꿈꾸는 잠'이라고 알려진 렘(REM) 수면에서 깨어났을 때 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꿈꾸다 깼을 때 현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은은한 조명을 유지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옆에 두는 것도 괜찮다. 여기에 더해 난 개인적으로 나쁜 치매 불면이 발생하면 좀 더 일찍 약물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쁜 치매 증상으로서 불면은 너무나 빠르게 또 다른 나쁜 치매 증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대신 약을 쓸 때 단순히 잠을 자게 만드는 '수면유도'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 수면 유도만을 목적으로 일반 수면제를 쓰면 그들의 혼란감이 더 심해지고 불면이 더 악화되는 것을 자주 본다. 핵심은 그들의 혼란감과 공포, 불안을 다루는 것이고 이에 초점을 맞춘 약물을 소량 유지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 그들의 불면도 가라앉는 걸 보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 70대 치매 할아버지는 일련의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수면이 늘어났다. 이후 변태 환자라는 오명은 벗었지만 기이한 행동이 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낮에 드러나는 이상행동은 주위 사람들이 받아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병동 생활에 적응해나갈 무렵, 어느 날 회진 중 나는 할아버지의 반쯤 열린 서랍에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게 됐다. 아마 할아버지를 위해 자식 중 한 명이 놓고 갔으리라. 그 사진에서 할아버지는 수줍게 아내의 손을 잡고 서 있다. 경직되어 서 있는 폼을 보니 숫기가 없어 아내에게 표현도 잘 못했을 것 같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손은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다. 할아버지가 칠흑의 공포안에서도 놓고 싶지 않았던 '그것'이 사진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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