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우리 삶에 죽음이 스며들기 시작할 때가 있다. 만약 당신이 청첩장을 받는 것보다, 부고를 받는 일 잦아진다면, 이제 당신에게도 죽음은 일상을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의미 있는 사람의 죽음을 맞닥뜨리면 날 것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 한 번 만나러 오는 게 좋지 않겠나?
부산에 있는 큰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요양병원에서 셋째 고모가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알기로 고모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양자를 들였지만 성인이 된 후 사연이 있어 연락을 끊고 지냈기에 주위에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지척에 큰어머니와 막내 고모가 살다 보니 친구처럼 지냈는데, 외로움 때문인지 몰라도 세 분 중 유일하게 치매가 왔다. 유난히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았던 고모는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고모는 다른 사람에게는 깐깐하고 똑 부러진 사람일지 몰라도, 없는 살림에도 내 호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늘 찔러주던 그런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 날 큰어머니로부터 셋째 고모가 치매로 집 밖을 배회하다 큰일 날 뻔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과거 고모네 집 한편에서 사글세를 살던 젊은 새색시의 환청을 듣고 맨발로 뛰쳐나가 여기저기 헤매다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그전부터 고모의 치매 증상은 진행되고 있었다. 깔끔한 성격이었던 사람이 음식이 상하도록 관리를 못했고, 한 번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둔 채 외출을 해 화재가 날 뻔하기도 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고모는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됐다. 그러던 중 고모는 어느 날부터 식사를 잘 못하더니 급속도로 기력이 떨어졌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고 잦은 사레들림으로 인해 폐렴이 반복됐다. 고모에게도 점점 죽음이 드리워졌다. 그 과정의 끝자락에서 큰어머니는 나에게 고모의 다가오는 마지막을 알려 준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차를 몰고 부산으로 향했다. 아직 고모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기에 어떤 이야기를 드려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병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고모가 있다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10개 남짓한 침대가 놓인 넓은 홀의 끝 쪽에 고모가 보였다. 너무 왜소해진 체격에 핼쑥한 얼굴, 이름표를 다시 확인했지만 내가 알던 고모의 모습이 아니었다. 침대 옆에 앉았지만, 그 어떤 가벼운 인사도 나눌 수 없었다. 치매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어떤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목구멍 깊은 곳을 긁고 올라오는 듯한 그르렁거리는 호흡소리 중간에 ‘아악’하며 자신의 생명을 쥐어짜는 듯한 외마디만 있을 뿐이었다. 격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치매는 마지막 남은 고모의 인간성마저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고모 저 알아보시겠어요?”
“….”
나는 그녀가 어떤 반응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성적으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를 물었다. 대다수의 실존주의자들이 수많은 죽음의 형태 중 치매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그 순간 이해됐다.
나는 그 숨 막힘을 견디기 어려워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지금 병세가 나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라도 더 진행할 수 있는 검사는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간호사는 늦게 나타나서 무슨 트집을 잡는 사람인양 나를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혈색소 수치가 6점대까지 떨어졌어요. 뭐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대학 병원 가서 내시경 검사부터 해야겠죠. 하지만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그런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에요. 어떻게 하실지는 보호자 분께서 결정하세요.”
나도 알고 있었다. 단지 나는 고모와의 침묵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다시 고모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반응 없는 고모의 마지막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고모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멈췄다. 마지막 숨을 뱉는 동물의 신음소리 같던 외마디 소리도 더 이상 내지 않았다. 나를 알아차리시는 걸까. 마치 고모가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은 상상을 해보지만, 내가 기대하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모의 그 작고 새까만 눈동자에 얼마나 많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 왔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고모의 죽음에 감상적인 의미를 붙이는 건 그녀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죽음은 고모로부터 청력과 목소리를 앗아가고 있고, 치매는 그녀의 세상에 대한 기억, 그리움과 사랑, 후회와 비통함조차 지워가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고모에게 어떤 의미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고모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손을 잡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아름다운 죽음이나 품위 있는 죽음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옆에 있어줄 수 있을 뿐 내가 애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럼 가볼게요.’
그것이 내가 고모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인사였다. 나 또한 고인에게 작별을 고하던 다른 보호자들처럼 무심한 눈으로 조용히 인사를 드렸다.
의사로 일하며 나는 적잖은 죽음을 만나왔다. 암 환자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 치매 노인들.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의 죽음까지. 노인 병동에서 당직을 서던 어느 날은 하룻밤 새 세 분의 사망을 지켜보기도 했다. 나는 그분들의 멈춰진 호흡과 심장 소리, 맥박 등 살아있다는 신호가 이제 멈췄음을 결정하는 사망선고를 내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가족들이 그 순간의 마지막을 같이 할 수 있을 때였다. 뺨을 쓰다듬고 안아주며 고생했다, 사랑한다, 걱정하지 말라 눈물을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안면도 없는 의사 한 명만 나타나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다가오는 어둠이 너무나 쓸쓸하고 두려울 것 같았다.
어떤 죽음이 외롭지 않으며, 어떤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겠는가.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도 대신하거나 도와줄 수 없으며,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마음 깊은 곳에 욕망과 부끄러움, 후회와 비참함을 꼭꼭 숨겨뒀다 한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철저히 발가벗겨진다.
그중에서 치매 노인의 죽음이 다른 이들의 마지막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그 마음을 알기 어렵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돌아가시는 분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삶의 마지막에 건네는 소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담는다. 그 순간에는 옳고 그름이나 선악은 중요치 않다. 품위 있는 죽음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정리하고 의미를 나누며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간직함으로써 당신의 생각과 마음, 기억이 우리를 통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약속한다. 그러나 치매 노인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있는 채로 죽음의 과정을 겪고, 죽음이 찾아왔을 때는 그것이 내 앞에 온 것조차 모른 상태로 죽음을 맞이 한다.
나는 이런 많은 죽음들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릴 때는 죽음 이후를 누구도 알지 못하기에 죽음 자체에 경외감을 갖는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일상에 스며든 죽음에 대해 인식하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죽음의 두려움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의 후회에 비례하여 경험된다. 떠나는 순간 삶의 미련과 애착이 클수록, 죽음은 그 사람을 삼킬 정도의 공포로 다가온다. 이런 이유로 죽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살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였는지 정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지금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물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도전을 위한 용기가 있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더 깊은 관계를 맺었나,’ ‘상처를 주고, 상처 받은 사람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구했나?’ 그러나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이런 생각들은 압박감으로 다가오거나 일상에 묻혀 너무나도 쉽게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어쩌면 죽음이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내 진료실에서 들었던, 치매 노인들의 잔잔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지금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치매 노인들의 고집이라 생각했다. 치매에 대한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만 있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묵묵히 던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나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어쩌면 죽음과 같은 치매 안에서도 그들은 어떤 삶의 태도가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는 해답을 주지 않는다. 죽음은 어떤 삶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순간 당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물어보고 상기시킬 뿐이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국 당신이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견뎌낼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갈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고 생각했던 치매 노인들로부터 죽음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유연하게 맞선 그들만의 삶의 태도를 배웠다. 어쩌면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후회 없는 삶이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대신 우리의 삶에 어떤 결함이 있을지라도 그날 하루에 대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대답해 줄 수 있다면, 아직은 온전히 자기 삶을 살고 있다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하루하루 이어져 훗날 내 죽음 앞에서 조차 스스로에게 ‘후회 없이 살았다 ‘가 아닌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 또한 죽음의 외로움 안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