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과연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는가
오늘, 영상을 통해 니체가 던진 질문 하나가 내 가슴을 찔렀다. "당신은 지금을 살고 있는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는가?"
나는 영상 속 니체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를 들으며 잠시 멈춰 섰다. 아버지가 단순하고 평화로운 삶이 행복이라고 믿었지만,
실은 삶 속으로 깊이 뛰어들 용기가 없어 그저 존재만 했을 뿐 진정한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는 통찰. 그 삶은 열정도 도전도 없는 고요한 풍경화 같았다고 했다.
니체는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인생을 그저 스쳐 지나가듯 살지 않겠다고.
진정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 자신을 뛰어넘고, 초월하며 매 순간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고통과 맞서 싸우며 그 속에서 자기만의 별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많은 이들이 안정된 길을 선택하지만, 그 길에는 진정한 가치와 자유를 의미하는 '별'이 없다. 불안정한 길을 걷고 때로는 좌절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야말로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나만의 길을 창조하기까지
나는 내 삶을 포장하는 일을 멈추고,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내가 속한 사회의 기대에 얽매여 스스로를 도구처럼 소모하고, 내 존재를 갉아먹는 '나태한 활동'에 빠져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겉으로는 바쁘지만 깊이도 의미도 없는 소란스러움만 만들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니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만약 하루에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쓸 수 없다면, 그가 누구든 무엇을 하든 그는 단지 노예일 뿐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너 자신이 되어라'**는 말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초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라는 능동적인 요청임을 이해했다.
남에게서 길을 찾지 않고, 나만의 길을 창조해야 한다. 본래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정신이 낙타(짐을 짊어진 순응)와 사자(기존을 부정하는 반항)의 단계를 넘어 **어린아이(창조하는 정신)**의 단계에 진입한 것을 알았다. 어린아이의 정신은 누군가가 정해준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고 자신만의 길을 창조하는 완전한 자유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3.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습관이다
나의 잠재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쁜 습관이었다. 영상은 나에게 경고한다. "나쁜 습관은 천재를 평범하게 만든다". 게으름, 지나친 자기 의심, 현실 안주와 같은 습관들은 작은 균열로 시작해 결국 나의 가능성을 완전히 갉아먹는다.
재능이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실천, 그리고 좋은 습관을 통해 다듬어져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13가지(절제, 침묵, 질서, 결단 등) 덕목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가 반백 년의 삶을 통해 깨달아 온 가치들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특히 '결단' 덕목(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라)과 '근면' 덕목(늘 유익한 일을 하라)은 나를 채찍질한다.
프랭클린처럼, 나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하루가 끝난 후 **"오늘은 잘 살았는가"**를 떠올리고 지내고 있다.
나는 나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반복하는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다.
4. 걷는 동안 나는 생각의 자유를 얻는다
나는 걷기가 창조적 사유에 주는 강력한 힘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동기 부여 영상을 앉아서 들을 때와 걸으면서 들을 때의 감정의 차이는 분명하다.
영상은 나의 경험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시켜 주었다.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걸으면서 탄생한다".
걷는 행위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해방되는 자유의 상징이며,
머릿속에 뒤엉켜 있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산의 맑은 바람처럼 서서히 정리되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칸트가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며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고,
베토벤이 숲 속을 걸으며 음악적 영감을 얻었으며,
다윈이 산책길에서 진화론을 발전시켰듯이,
나 역시 머리가 복잡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책상에서 벗어나 걷기를 하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다양한 해결책,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스로를 돕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5. 나의 운명, 그리고 최후의 웃음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는 태도)라는 문장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나 같은 경우의 인생은 어떻게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건가 하고..
2003년, 엄마는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셨다.
그때부터 삶의 리듬이 바뀌었다.
우리 사 남매의 인생이 이렇게 뒤집힐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운명’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응시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를 배워야 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은 고통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머니의 고통과 간병의 어려움은 나에게 주어진 거대한 시험이다.
이 시험 속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시련이 나를 어떻게 더 강한 존재로 만들고 있는지에 집중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상황 속에서 괴물과 싸우는 동안 나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싸움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짜 승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고
괴물과 싸우는 동안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돌보았다.
최후의 웃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차곡차곡 성실하게 만들어진다.
나는 오늘을 충만히 살았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웃음을 얻기 위해,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고 신뢰하며, 매 순간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선택해야지..
"지금의 삶을 그대로 영원히 반복해도 괜찮겠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다.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본질은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오늘 여기에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나는 내 운명과 끝까지 함께 있겠다.
소스 : 유튜브 하와이 대저택 "고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결국 무너진다, 그 이유는..." https://youtu.be/qB5 fLN0 yveE? list=TLGGUuZIFZCR-7 AyODEwMjAyN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