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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Sep 08. 2022

마음이 우울할 땐 닭강정을 먹으러 가자.

  결혼을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서른일곱에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적성을 찾아 헤매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이 서른세살에 취직한 남편과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둘이 가진 것을 탈탈 털어보아도 합쳐서 1억이었다.


  "이 나이에 결혼하면 직장 10년쯤 다니면서 돈 좀 모아놓은 과장님이랑 결혼할 줄 알았는데!"라고 하자 그는 "연상이랑 만났는데 나보다 돈이 없을 줄은 몰랐어!"라고 맞받아쳤다. 1억으로 집도 구하고, 살림도 장만하고, 결혼식도 하고, 신혼여행도 갈 생각을 하니 암담해서 웃음이 났다. 손에 천원짜리 한 장 쥐어주면서 "이걸로 담배 사 오고, 남은 돈은 너 용돈해라."라고 하는 못된 놈에게 걸린 기분이었다.


  그의 직장과 나의 직장 중간쯤에 있는 도시를 우리가 살 곳으로 점찍었다. 우리의 주제를 알았으므로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역에서 멀고, 지은 지 20년이 넘었고, 넓지 않은 곳. 그런 곳으로만 알아봐도 전세가 몇 억이었다. 그걸 대출로 다 메꾸고나면 한 달에 이자가 얼마일까. 아니, 은행에서 우리에게 그만큼 대출을 주기는 할까. 이러다 그가 자취할 때 살던 옥탑의 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겨울엔 입이 돌아가게 춥고, 여름엔 불판 위에 놓여있는 것 같던 그 곳에서.


  그런데 어느날 남편, 아니,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기특한 정보를 물어왔다. 우리가 신청할 수 있는 임대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억 소리 나는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전세가 많이 저렴했다. 그는 신혼부부가 1순위라며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고 했다. 옥탑방의 삼겹살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재빨리 수락했다. 그렇게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법률상으로 부부가 된 우리는 당당히 1순위의 자격을 획득한 후 아파트를 신청했다. 경쟁률은 13대 1. 열두  제껴야 우리는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대학입시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집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다음 신청은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이사를 나가서 빈 집이 생겨야 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옥탑방이 우리의 신혼집 후보 1순위로 다시 떠올랐다.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할 것 같던 '결혼'이라는 단어에 '가난'이 더해지자 모든 게 누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와 내가 가진 것은 성실함 뿐이었으므로, 그 성실함을 무기삼아 은행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우리는 몹시 서민이니 서민을 위한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은행에서는 법적으로 부부가 된 우리 둘의 연봉을 합하니 서민의 자격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우리가 서민이 아니었구나!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은행 직원에게 대출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우리의 급여명세서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던 은행 직원 종이에 숫자를 적어서 내밀었다. 생각보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었다. 우리의 연봉이 높지 않은 탓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연봉은 서민의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간 주제에 집을 얻을 돈을 구할 만큼은 높지 않은, 아주 얄궂은 위치에 있는 거였다.


  지금 장난하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멱살을 잡아흔들고 싶었다. 열받은 김에 역에서 가깝고, 새로 지었고, 널찍한 아파트들은 얼마인지 알아보았다. 백화점과 지하철역 사이에 기가 막히게 위치한, 뒤에는 커다란 공원이 있고, 걸어서 10분이면 대학병원에 갈 수 있는 아파트는 제일 작은 평수의 전세가가 6억이었다. 내가 받는 월급을 100원도 안 쓰고 모아도 십 몇년을 꼬박 모아 가질 수 있는 돈이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돈이 없을까. 집은 왜 이렇게 비쌀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서 돈을 구해서 결혼하는 걸까. 답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울하게 앉아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우리, 이러고 있지 말고 어디라도 가자."

  "돈도 없는데 어딜 가."

  "바다라도 보고 오자."


  그렇게 훌쩍 동해로 떠났다.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 동해바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물회에 오징어순대를 먹고, 칼바람이 부는 바닷가를 걸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돈, 집, 6억... 이런 것들이 바닷바람에 날려 잠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가득한 시장 구경을 마치고, 닭강정을 한박스 사서 숙소에 들어올 때쯤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 있었다. 갑자기 예약한 싸구려 숙소는 낡고 더러웠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맥주 한 캔을 따서 닭강정을 먹으며 남편과  큰소리를 땅땅 쳤다.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원룸에서 살면 되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 받으면 어디서든 못 살까!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것이 나와 남편이 함께 겪어낸 최초의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를만한 무언가와 맞닥뜨릴 때, 그러니까 입시나 취직과 같은 것들을 겪어낼 때 내 곁에 있었던 건 언제나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보니 성공했을 때 부모님과 함께 기뻐하는 건 좋았지만, 실패를 전할 때는 마음이 불편했다. 부모님은 자식의 실패에 너무 많이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실패할 만한 일들은 종종 숨겼다. 면접에 갈 때 정장을 챙겨나와 밖에서 갈아입은 후, 몰래 면접에 다녀오는 식이었다. 불합격 소식은 혼자서만 삭이고, 합격의 기쁨만 부모님과 나눴다. 그래서 어떤 실패는 오롯이 나 혼자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인생에서 실패를 함께 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새로 획득한 남편이라는 존재는 부모님과는 달랐다. 뭔가 좀 더 무너져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닭강정에 맥주를 마시며 돈이 없다고 그와 함께 실컷 한탄할 때, 우리의 가난과 실패에 대해 숨기지 않고 떠들어댈 때, 나는 돈 때문에 잔뜩 구부러진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앞에 남아있는 성공과 실패가 얼마나 될까. 학교도 다 졸업하고, 직장에서 자리도 잡았으니 성공과 실패를 가를만한 일이 많지는 않아보인다. 청춘을 불안하게 만들던 모든 일이 지나간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묵묵히 하루하루를 잘 쌓아나가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다 또 예측하지 못 한 실패에 부딪히겠지만, 훌쩍 바다로 떠나오기도 하고,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면서 살면 어찌어찌 살아지지 않을까 싶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얼마 후, 전에 신청했던 그 아파트에 빈 집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의 신혼집이 된 그집에서 5년째 살고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집 문제는 해결하지 못 한 숙제이다. 머지않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할텐데 그 사이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백화점과 지하철역과 공원 등등이 다 가까이에 있는 그 기가 막힌 아파트에 살려면 이제 10억이 넘는 돈을 쥐어야 한다. 10억이라니. 아무래도 그건 너무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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