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던 생일은 내가 첫사랑에게 차이고 얼마 후에 맞이한 스물세살의 생일이었다. 저녁마다 데이트를 하겠다며 매일 마지막 수업을 같은 걸로 넣어두었는데 수강변경기간이 끝나고 차이는 바람에 매일 구남친의 얼굴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 구질구질한 나날을 견디던 중이었다. 남자친구를 잃어버린 것만으로도 화딱지가 나는데, 내 남자친구의 다음 애인이 된 동아리 후배는 너무 예쁘고 똑똑하고 심지어 부자이기까지 했다. 화나고 슬프고 초라하고 배신감도 드는 총체적 괴로움을 잊기위해 매일 누군가를 불러내 술을 마시고 눈물을 쥐어짜며 살았다. 그 와중에 생일이 닥쳤으니 친구들은 너나나나 저 불쌍한 애 생일은 챙겨줘야겠다 싶었나보다.
생에 가장 화려한 생일은 꽃배달로 시작됐다. "꽃배달입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라는 전화와 함께 도착한 스물세송이 장미 꽃다발은 한달에 7만원인가 받으며 군복무중이던 나의 남사친이 보낸 것이었다. 남자사람이 보내준 꽃다발의 위력은 꽤 큰 것이어서 쪼그라든 마음을 조금은 펴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이번엔 친구들이 꽃을 안겨줬다.(그렇다. 나는 소문난 꽃순이였다.) 그 다음엔 또 동아리 친구들이 꽂을... 그런 식으로 하루만에 세개의 꽃다발을 받고나니 5월에 혼자서 졸업식을 치른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기분은 한껏 괜찮아졌다. 생일날도 나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구남친은 꽂다발을 주렁주렁 끌어안고 나타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날만큼은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성대한 약속이 있었으므로 그의 존재가 아무렇지 않았다.
아웃백에서 기름지게 생일파티를 하고 들어오는 길에 동네 친구들과 집근처에서 생일파티가 한번 더 있었다. 세개의 꽃다발과 다수의 선물들을 양손에 들고는 현관문을 직접 열 수 없었으므로 호기롭게 발로 문을 걷어차며 동생을 호출했다. 동생은 짜증을 내면서도 내 손에 들린 주렁주렁이들을 보고는 눈이 둥그래져서 "이걸 오늘 다 받은 거라고?대박." 이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 때는 그랬다.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게 너무 중요한 시절이었기에 생일에 함께 할 친구들쯤은 늘 곁에 있었다. 심심하면 친구의 친구 생일파티도 따라가서 놀다가 또 친구가 됐다. 내가 왕따는 아닐까? 고민도 해봤던 나 같은 사람이 저랬으니 주변에 사람이 늘 많다 싶은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진 인생을 살았을 지 상상도 못 하겠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 건 학교를 벗어나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기 시작한 서른 즈음 부터였다. 각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친구들과 더 이상 "수업 끝나고 떡볶이 먹을래?"가 가능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아도 사회 초년병인 우리들은 "미안한데 나 오늘 야근, 다음에 보자."를 반복했다. 생일은 친구보다는 애인과 함께 보내는 게 자연스러워져서 만나는 사람이 없던 해에는 누구와 함께 생일을 보내야 하나, 슬픈 고민을 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결혼하고 아기가 생긴 친구들은 더 보기 힘들었다. 엄마가 된 친구들은 만나는 건 물론 전화통화도 쉽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진리여서 친구라는 이름 안에 버무려져있던 쭉정이같은 인간관계들이 우수수 사라졌다. 정말 친한 사람들만 친구로 남았다.
남아있는 친구라고 다 잘 맞는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만나면 즐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만 보고 살기에도 삶은 바쁘고 피곤했다. 우리 인생이 맨날 이 모양이지, 하는 식으로 허구헌날 우울한 소리만 해대던 절친과 멀어졌다. 친구의 우울까지 감당하기에는 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관념이 없어서 매번 한 시간, 두 시간씩 지각하던 친구와 멀어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시간 반이나 걸려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나 이제 출발해~."를 반복하는 친구와의 만남이 더이상 즐겁지 않았다. 늘 내가 먼저 연락해야 만날 수 있던 친구들과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나만 혼자 짝사랑하는 것 같던 서운함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진즉에 내가 정리된 건데 혼자 미련을 가지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매달렸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흔이 되자 이제는 정말 손에 꼽힐 만큼의 친구들만 곁에 남아있다. 그 친구들과도 자주 보지 못 한다. 일이 바빠서, 가족행사가 있어서, 아이가 아파서, 아이 볼 사람이 없어서 등등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쌓여있다. 기쁨과 슬픔은 가족들과 나누고, 일상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한다. 생일은 남편이랑 보내고, 친구들은 생일때 잊어버리지않고 축하메세지나 보내주면 감사하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씩 있는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고작 밥 한끼 먹고, 차 한 잔 마시면서 그동안 쌓인 수다를 와르륵 쏟아내는 게 전부인 만남인데도 만나기 한참 전부터 설레고, 만나는 내내 기쁘다. 헤어지기 전에는 다음에 만날 날을 미리 약속하고, 그 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친구랑 노는 게 좋을 줄 몰랐다.
이제는 보지않는 친구들이 가끔 꿈에 나온다. 스르륵 사라져버린 인연들 말고, 내가 정리했던 친구들이나 나를 끊어낸 친구들이 주로 나온다. 그런 친구들을 꿈에서 만나고 나면 마음이 안 좋다. 너무 좁은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잘라냈구나. 후회하기도 한다. 그럴때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억지노력으로 붙들어야하는 인연이었다면 결국 끊어졌을 거라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라고. 그래도 가끔은 생각난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