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남편이 출출하다며 뭘 좀 먹자고 했다. 냉동실에 있는 만두를 떠올리고 있는데 남편이 “만두 콜?”을 외쳤다. 둘이 통했다고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평화로운 오후였다.
별 생각없이 남편에게 만두를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코로나로 집에 갇힌 지 두 달이 넘어가는 동안 나는 아기 밥과 어른 밥을 삼시세끼 해대느라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만두 정도는 내 손을 거치지 않고 먹고 싶었다. 요리를 못 하는 남편이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 예상치 못 한 말이 튀어나왔다.
“만두?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되잖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되니 본인이 만두를 굽겠다는 의도로 한 말이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의 얼굴을 보니 그런 말이 아니었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만두, 왜 나에게 부탁하냐는 거였다.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혹시 장난인가 싶어 한번 더 부탁을 했다. 약간의 웃음과 애교도 섞어 보았다.
“에이, 남편이 구워주는 만두 먹고 싶어서 그래. 나는 아침에도 밥했잖아.”
그날 아침, 나는 소고기무국을 끓이고 두부를 구워 상을 차렸다. 전날에는 불고기를, 그 전날에는 수제비를, 또 그 전날에는 김치찌개를 끓여대던 내가 간만에 한 부탁이었다. 아침에도 내가 밥을 해줬다는 말까지 덧붙인 건 남편이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돌아서면 밥을 하는 요즘이 너무 힘들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니 그쯤 말하면 남편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TV를 보던 남편이 갑자기 책을 집어들며 말했다.
“아, 나는 그냥 책이나 봐야겠다.”
만두는 날아갔다. 나는 내 말을 무시하고 꼼짝 않는 남편에게 만두를 구워다 바칠 정도로 헌신적인 아내가 아니다. 나는 그의 엄마도 아니고, 밥해주려고 결혼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그와 똑같이 일을 하는 워킹맘이다. 나에게 만두 구워오기를 시키려면 저것보다는 예쁘게 말했어야한다. 별것도 아닌걸 왜 나에게 시키냐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싸늘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남편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않은 채 계속 책장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그동안 남편과 싸우기 싫어서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속에서 화가 되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먹지도 못한 만두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대형 부부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참고, 참고, 또 참았던 것들이 고작 만두 하나로 터진 것이다.
남편은 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적이 없다. 가장 긍정적인 대답은 "이따 봐서."이고 "꼭 내가 해야 해?"라든가 "그걸 꼭 그렇게 해야해?" 라는 말을 즐겨쓴다. 본인이 기분이 안 좋거나 컨디션이 별로이면 "어쩌라고." 하며 어깃장을 지르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정말 이혼절차를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충동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남편은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지고 올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남편이다. 만두 사건때도 그렇다. "에어프라이어에 돌리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뻗대지 않고 "미안한데 자기가 구워주면 안돼?"라고만 말했어도 부부싸움까지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살다보면 양말 벗는 것, 치약 짜는 것 하나 때문에도 싸운다고 하지만 그건 양말과 치약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한 사람이 말을 조금만 예쁘게 해도 그 부부는 싸우지 않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남편은 나의 마음이나 컨디션을 배려하지 않는다. 두달내내 하루에 두세번씩 가스렌지 앞에 서는 아내를 보았다면, 그리고 그 아내의 손에서 만들어진 밥을 얻어먹었다면 안쓰럽고 고마워서라도 저딴 소리를 하면 안된다. 매일 밥하느라 고생했으니 만두는 본인이 굽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한다. 그게 가족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며 철든 사람이 할 줄 아는 배려이다.
남편에게 이 모든 말들을 쏟아놓았다. 나를 이렇게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으며,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은 본인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억울하다며 항변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긴 냉전이 시작됐다. 서로 말도 하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그와 뭔가를 함께 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지쳐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이 메세지를 보냈다. 미안해, 내가 잘 할게. 싸울 때마다 남편은 늘 저 한 마디 뿐이다. 불편하게 보내는 시간이 싫어서 고작 저 한 마디로 남편을 용서한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가 대꾸를 하든 안 하든 남편은 매일 똑같은 메세지를 보냈다. 미안해, 내가 잘 할게.
남편의 사과는 내 마음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 했다. 오히려 남편과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이 편했다. 남편과 말을 섞으며 상처받고 사느니 이렇게 평생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냉전의 시간이 괴롭지 않았으므로 나는 딸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나쁘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남편에게서 조금 다른 메세지가 왔다. 앞으로 너한테 많이 고마워하고, 뭐든지 너를 먼저 배려할게.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영원히 남편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메세지 한 통에 눈물이 흘렀다. 고마워하겠다는 한 마디,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는데. 저 말 한 마디 듣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두대첩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주일이나 모른 척 하고 지내던 우리는 함께 드라마를 보며 궁시렁거리는 이전의 날들로 돌아갔다. 남편이 정말로 노력을 하고 있느냐? 긴 싸움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요 며칠은 바짝 잘 하려고 한다. 내가 청소기를 집어들면 "내가 할게."라며 일어서고, 아기에게 토스트를 만들어 먹여야 한다고 했더니 본인이 굽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만 변하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만두를 누가 굽느냐의 문제로 이렇게까지 싸웠다는 이야기는 창피해서 차마 누구한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부부싸움의 세계는 대부분 이런 것 같다. 바람을 피우고, 도박을 하고, 보증을 서고 돌아오는 무시무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이 부딪힐 일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란 묘한 것이어서 다 큰 어른 둘이, 그것도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둘이 사소하고 찌질하고 구차한 것들로 싸우면서도 어찌저찌 매일을 함께 꾸려간다.
너무 잘 맞아서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든가, 한쪽이 다 받아줘서 싸우지 않는 천생연분들도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생에 그런 행운에 당첨되지 못 했으므로 남편과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화해하며 살아야 한다. 만두대첩의 효과가 끝나고 나면 남편이 또 내게 "어쩌라고."를 시전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또 치열하게 싸워야겠지. 그래도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을 거치며 조금 더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그래서 먼 훗날에는 저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