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딱 마흔이 됐다. 한 친구가 요즘 마흔앓이를 한다며 우울해했다.
- 증상이 뭔데?
- 모든 게 다 후회돼. 이십대로 돌아가고만 싶어.
나도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지 잠시 생각해봤다. 아우, 생각만 해도 싫다. 나의 이십대는 방황과 고생이 콜라보를 이룬 대환장파티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PD가 되고 싶었다. PD가 되려면 무조건 신문방송학과에 가야하는 줄 알았으므로 재수까지 해서 신문방송학과에 갔다. 그런데 2학년 때 재미삼아 들었던 국문학과 수업에 홀딱 빠져 국문학과 수업을 쫓아다녔다. 졸업장에 두 개의 전공이 적혔다. 하지만 전공이 두 개라고 두 배로 똑똑해진 건 아니었다. ‘신문방송학과 국문학을 공부했으니 방송작가가 되면 좋겠구나.’라는 단순논리에 따라 방송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걸 보면 말이다.
시사 프로그램의 막내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뭘 하는지, 방송국이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송국에 잘도 들어갔다. 워라밸은 커녕 잠잘 시간조차 없는 방송가에서 막내작가로 사는 동안 머리숱의 절반을 잃었다. 이틀에 한번씩 퇴근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하다가 응급실에 몇 번 실려간 후, 내 발로 방송국을 뛰쳐나왔다. 꿈이고 나발이고 살고 싶었다. 백만원 남짓 받던 월급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영어 점수를 만들고, 이것저것 준비해 회사에 갔다. 한 달에 이백만원 넘게 주고, 주말에 쉬게만 해준다면 아무 회사라도 좋았다. 하지만 적성, 특기를 몽땅 무시한 채 들어간 회사는 나와 맞지 않았다. 회사도 나를 어디에 써먹어야 할 지 몰랐는지 이 팀, 저 팀으로 돌려댔다. 나가라는 말인 것 같았다. 회사에서 몰래 취업사이트를 들락거렸다. 대체 뭘 해 먹고 살아야할까.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오래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을 하면 잘 하겠다는 걸 깨닫고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스무살 때 엄마가 나한테 교대 가라고 했었는데 그 때 엄마 말 들을걸.
사표를 내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했고, 엄마는 미쳤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던 게 맞는 것 같다. 무려 스물아홉살에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친구들이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나는 아홉살 어린 동기들과 이어달리기를 하고, 단소를 불고, 찰흙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번 돈은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다 썼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고, 친구들 축의금을 내고, 임용고사 준비도 했다. 서른세살에 발령을 받고 보니 통장에는 십여만원이 남아있었다. 누나가 결혼하기를 기다리다가는 늙어죽겠다며 동생이 먼저 결혼했다. 다행히 결혼식 전에 첫 월급이 나왔다. 하마터면 동생 축의금을 엄마에게 빌릴 뻔 했다.
동생의 결혼식날, 이제 선생님도 됐으니 너도 결혼해야지, 라는 말을 백번쯤 들었다.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연애를 해도 좀처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사람 보는 눈이 별로 없었던 건지 운이 없었던 건지 별별 사람을 다 만났다. 남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했다고 화를 내는 집착남도 있었고, 부모님에게 소개까지 시켰는데 알고 보니 빚이 억 단위였던 남자도 있었다. 그런 연애를 끝내고 나면 슬프기보다는 마음이 아득해졌다. 이번 생에 결혼을 할 수 있긴 한 걸까.
그러면서도 언제 결혼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적금은 1년 만기로만 들었다. 소개팅에 나가서 이상한 남자와 밥을 먹다가 체하거나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선자리를 들고 오는 날이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공부나 취업은 그나마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 결혼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못 할 거면 독립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집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서른일곱살.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딸이 어린이집에서 남자친구를 만들어 올 때였다. 노산의 압박에 시달리며 후다닥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집에서 아기를 키우느라 날짜도, 요일도 모르고 살다가 얼떨결에 마흔이 되었다.
되돌아봐도 고단한 시간들이다. 지금 다시 그때처럼 살라고 하면 나는 못할것 같다. ‘젊음’이라든가 ‘청춘’ 같은 싱그러운 단어에서 멀어진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이 차라리 좋다.
지난 날의 내가 많이 고생해준 덕에 지금의 나는 조금 편안해졌다. 교사생활 7년차, 아이들이 속썩이거나 이상한 민원이 들어올 때 힘들긴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사랑한다. 결혼 4년차, 불꽃같이 싸워대던 신혼을 거치면서 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어느 정도 참는 법을 배웠다. 엄마 3년차, 바스라질 것 같이 작던 딸이 제법 커서 이제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 일에도, 결혼생활에도, 육아에도 숨쉴 틈이 생겼다.
그 덕에 나는 내일을 상상한다. 적금은 몇 년짜리를 들까? 딸이 몇 살쯤이면 유럽여행을 갈 수 있을까? 올해는 글쓰기 수업을 들어볼까? 대학을 두번 가고, 직업을 세번 바꾸고, 정신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에는 하지 못 했던 고민이었다. 내 마음대로 꾸려나갈 내일을 기대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줄은 진짜 몰랐다. 일찌감치 삶이 안정된 친구들은 진즉에 느꼈을 행복이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산 덕에 친구들이 마흔앓이를 하는 동안 혼자 설레고 앉아있다.
늘 한두 박자 늦는 삶이니 친구들이 또 다른 삶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혼자 우울해하며 이십대를 그리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흔에 찾아올 대박적인 대박을 기대하며, 늦게 찾아온 행복을 지금은 좀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