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국악)과 현대음악의 결합?

by Komponist

음악의 문화적 성격은 사용된 음계나 악기와 같은 재료의 차원에서 결정되는가, 아니면 시간 조직, 형식적 사고, 음향의 존재 방식과 같은 구조적 차원에서 결정되는가?

우리나라 음악계에는 반복되어 온 하나의 욕망이 있다. 일명 "한국의 전통과 현대음악의 결합". 이는 긍정적인 가치로 간주되어 왔으며 많은 작곡가들은 국악기의 음색, 장단의 패턴, 혹은 전통적 음계를 현대적 작곡기법과 결합하려는 시도와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작업은 흔히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진지한 시도로 평가되며 “전통의 현대화” 혹은 “동서양의 융합”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합이 실제로 무엇을 성취하는가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 욕망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작곡가는 자신이 몸담은 장소와 역사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딱히 이에 대한 긍정도, 반감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욕망이 실현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현대음악에서 “한국적”이라고 제시되는 작업들 중 자신의 출발점에서 제기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한 채 오히려 서양음악의 구조를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겉으로 보기에는 충분히 한국적으로 보인다. 국악기가 등장하고, 민요적 선율과 5음음계가 놓이고, 시김새의 흔적이 드러난다. 작품의 제목은 한국의 풍경, 정서, 전통적 개념을 호출하고 청중은 그것을 듣고 곧바로 “한국적 색채”를 감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내부의 구조적 조직 원리는 여전히 서양음악의 체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시간성은 서양음악의 구조적 형식과 다를게 없고, 앙상블의 구성은 서양 실내악 혹은 오케스트라의 모델을 기반으로 하며, 그 결과 표면적으로는 한국적 재료가 사용되지만 음악적 사고의 문법 자체는 서양적 체계에 의해 규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실제로 한국적인가 하는 점이다. 표면에 드러나는 재료가 한국적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음악의 사유 구조까지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음악이 특정 문화권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화의 시간감각, 소리의 조직 방식, 존재론적 전제를 함께 구현한다고 볼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는 급격히 복잡해진다.

한국적 음악의 본질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어렵다. 음계의 측면에서 보면 5음음계는 한국 음악에만 고유한 요소가 아니다. 동아시아 여러 문화권뿐 아니라 다양한 민속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국악기의 음색 역시 그 자체만으로 음악적 사고의 전환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김새 역시 장식적 요소로 환원될 경우 기존 ornament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을 형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한국적 재료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재료가 어떠한 구조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가에 있다. 민요 선율을 관현악적으로 편곡하는 방식은 색채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음악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반대로 시간 조직이나 음향의 형성 방식에 대한 재고는 보다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이는 훨씬 어려운 작업이며 명확한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현대음악의 맥락에서 문화적 정체성은 점점 더 재료의 차원이 아니라 사고 방식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정 음계나 악기의 사용 여부보다 음악이 시간과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정체성은 외형적 특징의 집합이 아니라 음악적 사고의 구조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 항상 문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음악적 체계가 만날 때 새로운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체계가 서로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기보다 한 체계가 다른 체계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전통음악 그 자체가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전통음악은 이미 높은 차원의 미적 질서를 갖고 있으며 그 질서는 특정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그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음악적 세계이다. 그 세계는 반드시 현대적 기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필요를 갖지 않는다. 전통을 존중하는 방식은 그것을 현대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전통이 이미 하나의 완결된 미학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으며 전통은 변형되지 않아도 현재의 감각과 만날 수 있다.

어설픈 결합이 종종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음악적 필요에서 출발하기보다 개념적 정당화의 요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음악의 결합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새로운 음색인가, 새로운 형식인가, 혹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설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은 음악적 필연성을 갖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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