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대디의 난생처음 셀프인테리어 #14 현장에서 내가 할 일
드디어 셀프 인테리어 사전 준비를 마치고 공사가 시작된다. 나는 이 공사를 위해 6개월에 가까운 기간 동안 사전 준비를 했다. 준비 기간이 긴 만큼 철저하게 계획할 수 있었던 반면,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약간의 긴장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공사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막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모든 것이 두렵고 떨렸다. 그때를 생각하며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유심히 관찰했던 것, 현장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턴키 인테리어 공사를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턴키 업체에게 인테리어를 맡긴 상황이라면 그 업체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제대로 된 업체라면 나에게 작업 내용을 전체적으로 브리핑했을 테고, 당일에 진행된 공정들도 수시로 공유할 것이다. 나는 그저 시간 나면 가끔 현장에 들러서 얼마나 집이 예뻐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짚어주면 끝이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내가 아무리 집주인이라 하더라도 현장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것은 업체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턴키 공사는 믿을만한 업체를 정해서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나도 업체도 피곤해질 수 있다.
그러나 셀프 인테리어는 다르다. 셀프 인테리어의 주최인 우리는 모든 공정에 매우 적극적이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현장의 먼지를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 예산 절감을 위해서라면 손에서 빗자루를 놓지 않고 기꺼이 현장의 청소 요정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공사 기간 내내 현장 감리는 물론, 작업자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오롯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것에만 전념했다.
현장 감리는 셀프 인테리어 공사 중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매의 눈을 가진 감독이 되어 작업이 지시한 대로 잘 되고 있는지 수시로 공사 현장을 살펴봐야 한다. 현장에 내가 있는 것 만으로 작업자들에게는 적당한 긴장감을 줄 수 있다. 물론 옆에 붙어서 귀찮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작업자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한에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기록용 사진과 영상을 남기면서 현장 감리를 봤다.
현장 감리를 잘 해내기 위해 작업 공정과 시공 방법에 대한 사전 숙지는 필수다. 현장에서 작업하는 분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할 때 내가 원하는 시공 방식에 대해 바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들도 '적당히' 할 수 있겠지만, 단열시공 시 우레탄 폼을 쏘는 방법 등의 지식 정도는 알고 가야 '셀린이'인 나를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내가 각 공정별로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감리했는지는 이후에 공사별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현장에 있으면 작업 방향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기획서에 내가 작업하고 싶은 부분을 최대한 자세히 적어 두었다 하더라도 현장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빠른 결정을 해줘야 작업 속도를 올릴 수 있는데, 경험이 없는 우리는 이 과정에서 실수를 할 가능성도 높다. 내가 했던 실수들을 자세히 나눌 테니 참고해서 조금이나마 실수를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산이 충분해서 현장의 잡다한 일을 처리할 인원을 고용할 수 있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처럼 빠듯한 예산 안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적은 인건비로 인테리어를 완성하려면, 내가 직접 나서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늘 먼지를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작업자들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최대한 공사가 기한 안에 완성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섭외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실력 있는 작업자의 경우 인건비가 적지 않다. 작업하는 시간은 곧 비용이 된다. 전기나 창호 시공의 경우 총공사비가 고정되어 있어서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인테리어 목수 등 하루 단위로 인건비가 들어가는 작업은, 작업시간이 초과되어 다음날로 미루어지면 하루치 일당이 나가게 되는 부분이라 최대한 공기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싼 인력이 자재나 폐기물을 치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작업에 방해가 될만한 요소들을 수시로 치우고 현장 청소를 했다. 그들이 작업 시간 내에 못이라도 하나 더 치고, 제대로 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으니까.
사전 계획을 잘못 세워서 목공 작업 기간에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1톤 트럭 1.5대 분량의 철거 폐기물을 혼자 청소하고 치운 적이 있다. 직접 치우느라 몸은 몸대로 힘들고, 폐기물 처리에 든 돈까지 계산하면 멍청 비용이 꽤 발생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나 같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길 바라며, 내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보겠다.
인테리어 사전 미팅 때 철거 사장님과 목수님 모두 우리 집을 보고 30년 가까이된 구축 아파트라 천정이 오래됐으니 천정 전체를 철거하는 것을 추천하셨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가 봤을 땐 괜찮아 보여서 그대로 살려두자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애초에 전부 철거하고 새로 시공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공사 기간도 늘어나고 재료비도 더 늘어나는데 멀쩡해 보이는 천정을 왜 철거하냐는 생각에 공사비 더 받으려고 그런 건가 라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철거 후 천정에 다운라이트 타공 작업을 하는 도중에 석고가 너무 오래돼서 바스러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두 개야 수습이 가능하겠지만 천정 전체에 타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도저히 천정이 못 버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마침 목공 작업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나중에 목공이 다 끝나고 천정을 뚫다가 석고가 내려앉았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목공 작업은 올 스톱되고 추가 천정 철거를 하기로 결정하고, 계획에 없던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철거 후 폐기물 처리와 정리는 바로 내 몫이었다. 거실을 가득 채운 석고보드와 폐 목재를 당장 치우지 않으면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인건비 비싼 목수 분들이 철거 폐기물을 치우게 된다면 그 시간만큼 공사기간은 늘어나게 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갑자기 폐기물을 치워줄 인원을 급히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먼지를 다 뒤집어쓰면서 밤늦도록 폐기물을 포대자루에 담았다. 이틀에 걸쳐 나온 폐기물이 1톤 트럭 1.5대 분량이었는데, 일반 철거 때 같이 했다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구축 아파트의 경우, 철거를 하기 전에 집안 곳곳을 꼼꼼하게 살펴서 이상하다 싶으면 철거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처럼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멍청 비용을 써버리는 일은 최대한 방지하자.
좋은 이웃을 만나서 그런지 공사 중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민원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만약 민원이 발생하게 되면 현장 있는 우리가 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가장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공사가 바로 철거다. 창호와 욕실, 마루, 일반 철거(내력벽 철거)를 하는 동안은 계속 현장에 상주하는 것이 좋다. 철거 소음이 엄청나기 때문에 아파트 주민이 오고 가며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언제 끝나는 건지 묻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민원에 대처하는 방법은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는 일 밖에 없다. 일반적인 인테리어 공사는 평일 8시부터 17시까지 진행하는데 소음이 심한 철거작업의 경우 오전 9시 이후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소음이 심한 날은 꼭 미리 공지해서 입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도록 하자.
작업이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자를 믿어야 한다. 현잠 감리를 하고 있으면 속으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나 거슬리는 부분이 자꾸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될 때 정확히 의사를 표현하고 공사 방향에 대한 조율이 필요한데, 이때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느냐에 따라 일이 심각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더 잘 풀릴 수 있다.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작업자가 기분이 상해 다음 날 펑크를 낼 수도 있고, 대충하고 마감으로 덮어 놓고 모른 체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리스크다.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작업하시는 분들을 위해 매일 소소하게 커피나 음료수, 간식을 챙겼다. 인테리어 바닥에서 실력 있는 작업자 분들은 프라이드도 있지만 나이대가 많으신 분들도 상당하다. 쉽게 나의 의견을 수용해주는 분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적지 않게 만났다. 어떨 땐 담배 한 갑씩 돌리면서 그분들의 기분을 맞춰드리곤 했다. 내 돈 주고 하는 인테리어인데 내가 을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긴 하지만 내 집 인테리어를 다 마쳤을 때 하자 없이 잘된 결과물을 본다면 그것쯤은 견딜 수 있다. 견뎌야 한다.
지금까지 공사 현장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어쨌든 이 집은 내가 살 집이고, 내가 직접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는 집이 될 것이다.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한 달 뒤의 뿌듯함과 결과물을 기대하면서 잘 견뎌내자. 이후에는 각 공정별로 어떤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나는 어떻게 시공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