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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Sep 17. 2023

#14. 와이키키 푸드트럭

어느새 워니가 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시간이 쏜 살 같이 간다. 남은 시간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써야지. 어제 관광을 마지막으로 다시 와이키키에서의 일상을 시작했다. 드디어 서핑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금 자는 워니를 두고 새벽 동틀 때 즈음 살며시 바다로 나간다. 지난주 일요일 마지막 서핑 이후 6일 만이다.  마지막 서핑 때 누군가의 보드에 머리를 맞은 이후로 아직까지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의 두려움이 있었는데 때마침 파도가 작다. 차트를 보니 50cm로 무릎에서 허벅지 사이의 작고 친절한 파도라 겁먹은 마음을 달래면서 타기에 딱이다. 


오늘은 9피트(2.7m) 짜리 보드를 빌렸다. 평소 내가 타던 보드보다 조금 짧았지만 부력이 좋은 보드라 가볍게 통통 튀며 파도를 잘 잡았다. 와이키키에는 파도 잘 잡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단 다른 건 몰라도 파도를 잘 잡을 수 있는 보드가 좋다. 뭐라도 해 보려면 일단 파도 위에 올라타야 하니 말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새벽의 와이키키는 다시 한번 감동적이다. 파도가 굉장히 말랑말랑한데도 힘은 조금 있어서 잘 잡히고, 한국 대비 사람도 많이 없고 뷰 예쁘고 날씨도 좋고 걸어갈 수 있고 바닷속에서도 라인업(파도를 기다리는 위치)이 적당히 가깝다! 모든 게 완벽한 스폿을 찾는다면 바로 이곳. 내 레벨에 이곳이 정말 딱이다. 새삼스레 이 파도를 만날 수 있음에 다시 감사하다. 있는 동안 여기서 정말 많이 타고 가고 싶다.


보통 사람들이 와이키키라고 말하는 서핑 스폿의 이름은 카누스(Canoes)다. 새벽 여섯 시의 카누스는 대부분 나이가 좀 있는 여행객과 현지 서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붐비지 않고 나름의 질서도 있다. 여덟 시쯤 되면 비키니 차림의 젊은 서퍼들이 꽤나 들어오고 강습도 여기저기서 시작한다. 이쯤 되면 라이딩할 때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해야 한다. 파도를 타는 길목에 보드들이 꽤나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람 주변을 피하도록 조심조심 보드를 컨트롤해야 한다. 아홉 시가 넘어가면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같이 타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패들 하면 나는 패들을 하다가도 보드를 뒤로 빼기 때문에 파도를 잡는 빈도수도 현저히 줄어든다. 아홉 시쯤 되면 해는 다이아몬드헤드 뒤쪽쯤에 있던 해는 이제 중천으로 떠오른다. 눈이 부셔올 이때쯤 되면 퇴근파도(그날의 마지막 파도)를 타고 나온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 샵에 보드를 반납하면 개운한 기분으로 집에 가서 씻을 수가 있다. 오늘도 오랜만에 서핑한 탓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탔다. 너무 잘 타는 생태계파괴자 두 분이 계속 타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그들을 보는 재미도 꽤나 있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만 보던 실력자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숨 자고 오후에는 워니와 쿠히오 비치로 갔다. 워니는 부기보드를 빌려서 바닷속에서 보드를 타고 나는 엄마처럼 비치 그늘에서 책을 보다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워니는 같이 놀지 않는 내가 못내 아쉬운 듯했다. 조금 미안했지만 아침에 서핑을 실컷 하고 나면은 그 외의 물놀이는 왠지 다 시시하다. 그저 누워서 바다를, 그리고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을 하고 싶다.


잠시 쉬러 나온 워니와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맥도널드 치즈버거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비치로 돌아가려고 와이키키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느 새인지 길가에 푸드트럭들이 쫙 들어섰다. 무슨 영문으로 늘어섰는지는 몰라도 자고로 푸드트럭을 만나면 하나쯤은 사 먹어봐야 하는데 막 버거를 먹고 나와 영 후회가 되었다. 비치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철수하고 바닷물에 젖은 몸을 씻고 푸드트럭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마켓이 문을 닫을까 서둘러 씻고 나왔더니 마켓은 한창이고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줄이 점점 더 길어져서 아까 먹을까 망설였던 것들은 이제 줄 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곳의 바비큐 푸드트럭들은 그릴과 바비큐 화덕까지 들고 나왔다. 본격적인 쇼맨십에 한 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나마 줄이 짧은 파인애플주스와 코코넛을 사서 듀크 동상 앞에 앉았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늘은 해가 지기 직전. 오늘도 어김없이 아름답다. 해가 바다 너머로 넘어가는 것까지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 집 앞 펍으로 향했다. 비교적 여유로운 이곳에서 맥주 한 잔과 나초를 먹었다. 푸짐한 과카몰리까지 만족스럽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저물었다. 시간아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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