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반, 드디어 돌고래 수영을 하러 간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기대한 이벤트였다. 신나서 분주한 나와 달리 공주는 꽤나 긴장을 했다. 그는 내가 쿨쿨 자는 사이 근심으로 새벽을 채웠다. 제대로 된 수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구명조끼도 없이 바다 한가운데 들어간다고 하니 막상 겁이 났나 보다. 차가워진 공주의 손을 잡고 센터에 도착했다. 카운터에 등록을 하러 갔더니 알아보고 말을 건다. 어제 설문응답에 ‘수영을 아예 못함’이라고 써 두어서 주의대상이었나 보다.
바다 상황에 따라서 미숙자는 수영을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다행히 그날은 4일간의 거센 바람 후에 잔잔한 날이라고 한다. 그들은 생각보다 너무 친절하게 남편에게 구명조끼와 킥판을 권했고 구명조끼를 입을 수 있다고 듣자 비로소 공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두꺼운 웻슈트와 스노클을 챙겨서 바다로 나갔다. 해가 어스름 떠오르는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나가는 기분은 상쾌했다. 블로그에서 멀미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걱정되었지만 약국에서 사 와서 먹은 멀미약의 효능을 믿을 수밖에였다.
한참을 가다가 배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gogogo jumpjumpjump라는 가이드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바다로 들어갔다. 공주의 손을 잡고 들어간 나는 배 주변을 맴도는 그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서 물에 얼굴을 넣었는데 내가 본 것은 희뿌연 회녹색 물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물에 들어가자 덜컥 원인 모를 공포가 다가왔다. 희뿌연 회색 물속, 숨이 가빠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열심히 돌고래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울 공주도 보였다.
구명조끼를 입에서 좋은 점은 그를 찾기가 매우 쉽다는 것, 그에게 돌아갔고 그때쯤 배에서도 돌아오라는 신호가 왔다. 공주는 돌고래를 굉장히 많이 봐서 신이 난 상태였다.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가이드가 그를 전담마크해 준 덕에 그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바다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라 나만 좋아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는 돌고래를 보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두 번째 스폿으로 이동했다. 이전보다 조금 더 요령을 알았다. 머리를 들어 돌고래를 찾은 다음 돌고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머리를 넣은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 주변에 수많은 돌고래가 수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난치면서 가고 있었는데 서로 뱅뱅 돌기도 하고 바다 위에서 쌍점프를 하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방인인 나를 개의치 않고 내 아래로 쓱 지나가거나 위로 점프해 가기도 했다. 내 주변을 빙글 돌기도 하며 돌고래들은 말 그대로 놀고 있었다. 비현실적인 시간이었다.
물속에서 돌고래의 눈을 몇 번이고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면 교감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기대했지만 눈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꺼이 낯선 이방인과 놀아주었다. 물속에서 수백만 마리의 돌고래를 본 것 같다. 지나치기도 하고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돌고래와 나름의 교감을 했다. 세 번째 스폿에서도 그들의 무리에 섞여서 그들이 내 주변을 감싸는 것을 경험했다. 돌아오라는 신호가 들려 아쉬웠지만 내 인생 그 어느 때에도 바다생물과 이렇게 교감을 했던 적은 없었다. 너무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어느새 수영이 끝나고 정박장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갑판 위에서 돌고래를 보았다. 아까 보았던 무리들이 우리 배와 방향을 함께 하고 있었다.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함께 가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가 함께했던 돌고래는 dusky dolphin이라는 종으로 돌고래 중에서도 활발한 개구쟁이 같은 아이들이라고 한다. 아크로바틱을 하며 물속을 유영하고 물 위에 날아다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물 위에서 연속 5-6번을 점프하기도 하고 백스핀 하기도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냥 재미로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전 세계에 12,000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며 뉴질랜드에 가장 많다고 한다.
귀염둥이 더스키 돌핀 옆에 갑자기 다른 돌고래가 나타났다. 흰색 바탕에 회색 붓으로 파스텔 핑크와 블루를 섞어놓은 것 같은 작은 돌고래였다. 이 아이들은 hector dolphin으로 성격이 수줍고 작은 무리로 함께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크로바틱을 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굉장히 귀여웠다. 가이드가 가장 좋아하는 돌고래이지만 돌고래 중 가장 개채수가 적은 종이라고 한다. 돌고래들 많이 많이 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돌고래를 잡거나 죽이는, 혹은 동물원에 두는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바다에서 행복해 보였다.
돌고래수영이 끝나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목적은 컵라면과 야외욕조! 우리 숙소 마당에는 꽤나 큰 욕조가 있었다. 배스오일을 넣고 충분히 물을 받은 후 풍덩 들어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몸은 물속에 따뜻하다. 불을 손으로 나무젓가락을 뜯어 컵라면을 후후 불어서 먹으며 우리가 아까 수영했던 바다를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돌고래를 보았던 비현실적인 기분에서 돌아와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분이다. 몸이 노곤노곤해질 때쯤 나와서 씻고 낮잠을 잤다.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고 일어나 보니 벌써 점심시간. 어제부터 찜해두었던 해물철판 푸드트럭에 갔다. 점심시간만 짧게 하는 집이라 시간 맞춰서 후다닥 갔더니 벌써 줄이 꽤나 있다. 합석을 해서 햇빛을 조금 가려주는 테이블에 자리를 겨우 자리를 잡고 철판에 구운 크레이피시, 성대구이(뉴질랜드에서는 성대를 자주 사용한다), 초록입홍합을 시켰다. 우리의 원픽은 단연 성대구이! 소금간된 생선을 밥 위에 올려 와아아 먹으면 입안에서 하얀 살이 탱글 하게 결 따라 부서진다. 초록입 홍합은 홍합이니까 맛있었고 크레이피시도 크레이 피시니까 당연 맛이 좋았지만 차가운 바닷물에서 자란 성대는 단연 기억에 남았다.
만족스러운 배를 두드리며 집에 돌아와서 아이스크림과 감자칩을 먹었다. 행복한 맛! 낙농업 강국 뉴질랜드답게 아이스크림에 실패가 없다. 특히 KAPITI라는 브랜드 아이스크림은 여행 내내 보이면 먹었는데, 크림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커피를 한 잔 내려 테라스로 나왔다. 이디스 워튼의 여름이라는 책을 펼쳤다. 아름다운 연초록 자연을 풍부하게 묘사한 책으로 지금 이 순간과 멋들어지게 잘 어울렸다.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보다가 다시 들어가서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카약을 타러 가자고 한다. 퀸스타운에서부터 타고 싶다던 그의 소원을 드디어 성취하는구나 싶었다. 심지어 100% 물개 만남 보장이었다.
시간이 되어 카약을 타러 갔다. 장소에 모여 그들이 나눠주는 방품재킷과 카약스커트를 입고 영차영차 노를 저었다. 어렸을 적 아빠와 래프팅 하러 다녔던 가닥이 있어서인지 노 젓는 게 익숙했다. 카약을 타고 바다를 한 바퀴 돌면서 물개도 가까이서 보고 돌아왔더니 벌써 저녁시간이 넘었다. 만족한 남편과 피시 앤 칩스를 사다가 집으러 가서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으아 즐거운 카이코우라. 이곳은 뉴질랜드사람들이 여름휴가나 관광으로 많이 찾는 만큼 액티비티나 자연경관이 발달해 있었다. 너무 즐거웠고 다음에 온다면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다시 만나자 카이코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