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by 담다리담


최근 영어로 업무를 하면서 내가 크게 깨달은 것들이 있다.

|회의를 할 때면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인상을 팍 쓸 정도로 귀를 기울여야만 무슨 말인지가 들린다. 그런데 진짜 답답한 것은 그들의 문장이 들린다고 해서 그게 바로 뇌에서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귀를 통해 들어와 귀로 나간다는 말을 말 그대로 경험했다. 내가 아주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도, 어떤 문장과 어떤 단어로 말했는지는 알았는데도 말이다. 충격적이었다. 한껏 집중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는 데도 뇌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경험은 정말, 정말이지 무력감 그 자체였다. 알아들은 말은 뇌에서 한국어 필터를 통해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해할 때만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뇌 속에서 한국어 필터를 돌릴 새가 없이 그들이 빠르게 말하면 결국 나는 알아듣는 것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저 리액션 기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잘못된 리액션을 하면 내가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색하고 민망한 미소를 짓는다. 또한 단어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문장의 의미를 다 바꾸기도 하는데, 이런 식이다. We don’t need some parts of the process to proceed.이라고 말하면, 그래서 필요하다는 건지 필요 없다는 것인지조차 도통 이해하기가 어렵다. 특히 빠른 문장 속에 섞이면 더욱이 어렵다. 꼭 한 번 더 물어봐야만 한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내가 영어를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푸시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잘 설명해주고 친절하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시간이 두 배로 걸린다는 것이다. 꼭 한국말을 통해 이중으로 이해하고 두 번 일해야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영어로 메신저를 할 때 한국말로 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오래 걸리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그리 일을 효율적으로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도 항상 야근을 한다. 안 그래도 모두가 시간을 쪼개어 쓰는 곳에서 메신저 하나 보내는데도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데 어찌 시간이 안 걸릴 수 있을까.

사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영어로 말하며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면 그들의 집중력은 곧바로 다른 곳을 향한다. 폰으로 다른 메신저를 보거나 다른 업무를 하거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기에 나의 느리고도 되풀이되는 영어를 하나하나 들어주고 있을 여유가 없는 거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내 시간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여기는 업무의 장이니까. 그저 그게 내가 말을 잘 못하는 상황에 의해 야기된다는 것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 뿐이다. 그런 표정들, 그런 행동들이 월요일이 다가오는 것을 점점 더 두렵게 만든다.

그나마 나는 지금은 통역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다. 통역을 사용하면 내 의미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결국 나는 보이지 않는 테두리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리더는 거의 모두가 외국인이기에 리더와 소통하려면 영어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통역을 사용하면 절대로 자연스러운 소통을 할 수도 없고 리더가 될 수 도 없다. 내 목소리로 직접 말을 전하는 것과 통역사의 목소리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은 분명 아주 다르다. 지금은 이렇게 통역 없이 버티고 있지만 통역 없이 내가 말이 너무 안 통해서 그들이 나에게 통역을 사용해 달라고 할까봐 한 편으로 두렵다.


|이렇게 회사에서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면서 요즘은 모든 콘텐츠를 영어로 보려 하고 있다. 원서를 읽고 외국 유튜브를 보고 넷플릭스를 영어자막으로 보는 등.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깨닫는 것은, 절대 나는 평생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겠구나.라는 것이다. 내가 영미권 국가에서 아예 자리를 잡아 살지 않는 이상은 절대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어로 바스락과 파스락의 미묘한 차이를 인지하는 데는 수많은 노출과 상호작용이 있었다. 파스락거리는 낙엽의 소리를 듣고 나서 파스락이라고 말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파스락과 바스락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린다. 외국인도 그들만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를 알아차리려면 정말 많은 시간을 그들과 실제로 함께 보내야 한다. 멀리서 언어를 단순히 공부해서는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막연한 심리적 장벽을 느꼈다.

회사에서도 대강 들으면 저 사람은 영어권 국가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며 갈고닦은 영어인지 아닌 지를 금방 듣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영어는 어휘나 문장구성이 자유롭다. 타일러처럼 언어에 천부적인 재주가 있지 않은 나는 어쩌면 이대로 이방인으로서 제대로 된 내 감정을 설명하고 불공정한 일에 대응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영어로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에는 여전히 한계를 느끼면서. 특히나 나는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사람과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친해지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이런 점들은 내가 말을 주고받으며 이해를 하는 데 더 장애물이 된다. 이를 느끼며 나는 무력해진다.

한동안은 이런 막막함에 답답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냥 영어를 도구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일 테지만 영어라는 도구를 가진 이방인이 되기로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그들이 아니니까. 그냥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 되기로 했다. 그만큼만으로도 어쩌면 벅찰지도 모른다. 영어는 정말 평생을 배워도 모자라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단어와 뉘앙스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으로 영어와 익숙해져서 능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아무렴 힘들지만 영어로 내 감정을 설명하고 영어로 업무 경과를 설명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멋지다. 기분도 좋다. 나를 이런 환경에 집어넣은 것은 나 스스로다. 그러니 어떻게 되든 올 한 해만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영어와 친해지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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