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스쿠버다이버의 일기 08
깊고 깊은 바다 아래에는 뭐가 있을까?
만화 네모바지 스폰지밥을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만화처럼 파인애플 집이나 도시가 있을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직접 깊고 깊은 바닷속을 가볼 줄은.
레저 다이빙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심이 40m 정도다. 40m면 아파트 12층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깊이다. 그래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인 ‘오픈워터’ 자격 취득 후 다음 단계인 ‘어드밴스드 오픈워터’가 되어야만 딥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수심이 깊을수록 위험하기 때문이다. 깊은 물속은 공기 중보다 압력이 몇 배나 되기 때문에 산소가 소모되는 속도도 몇 배가 되어, 짧은 시간만 체류해도 남은 산소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또한 압력의 변화가 커서 질소마취가 감압병의 위험도 커진다.
그럼에도 깊은 바다를 가는 이유는 그곳에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가라앉은 난파선, 멋진 지형,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제주도 남쪽 문섬 근처에는 난파선을 보는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 정확히는 난파선이 아니라 침몰선이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배처럼 크고 웅장한 배는 아니고 아마 중소형의 고기잡이 배였던 같다. 그래도 오랜 세월 산호가 뒤덮여 자라나 꽤 볼만하다. 난파선은 수심 35m 즈음에 있다.
바닷속 시야가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선 난파선을 찾는 것부터가 숙제였다. 딥 다이빙을 할 때는 산소 소모량이 빠른 가장 깊은 곳을 가장 먼저 가야 하고, 그다음은 서서히 올라오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지상에서 지도를 보고 사물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목적물이 바닷속 깊은 곳에 있고 매시간마다 조류가 변하기 때문에, 숙련된 가이드가 경험을 바탕으로 난파선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시간과 수심이 한계가 있어서, 만약 목적물을 못 찾아도 그냥 올라와야 한다. 난파선 다이빙을 하러 내려갔다가 난파선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다음 코스를 난파선으로 정하자 가이드님들도 비상 회의를 해서 최근에 난파선 가이드를 해본 분으로 진행자를 바꿨다. 망망대해에 떨어져서 바닷속 길을 외워 가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트가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하자 가이드님과 나, 강사님 순으로 입수했다. 가이드님은 엄지를 아래로 내려 하강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물속으로 내려가며 주기적으로 코를 잡고 이퀄라이징을 했다. 이퀄라이징은 주변 압력과 귀 속 압력을 같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다이빙을 하다 보면 비행기가 착륙할 때처럼 귀가 조금씩 당기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코를 손으로 잡아 구멍을 막고 코를 푸는 것처럼 세게 흥- 하면 귀를 통해 공기가 나가게 되며 압력이 맞춰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압이 높아져서, 하강할 때는 부지런히 귀 속 압력을 계속 주변과 맞춰주어야 나중에 귀가 아프지 않다. 겉에서 보면 하강은 엘리베이터처럼 그냥 스르르 내려오는 것 같지만, 나는 오히려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 칸 한 칸 내려오며 압력과 시간과 속도를 주기적으로 체크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잘 내려올 수 있다. 수면 조류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빠른 하강을 했다.
처음 내려갔을 때는 모래바닥밖에 안보였다. 길을 잘못 잡은 건가, 난파선을 못 보는 건가 어리둥절했다. 그때 갑자기 가이드님이 우리가 있던 모래바닥의 옆으로 가더니 머리를 아래로 하고 내려갔다.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절벽 위였던 것이다. 절벽은 굉장히 가팔라서 거의 90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절벽 아래는 위 보다 훨씬 더 어둡고 탁해 보였다. 저기를 가도 되나 싶어 무서웠는데 강사님과 멀어지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에 나도 재빨리 강사님을 따라 쭉 하강했다. 머리가 아래로 향해졌다. 매번 똑바로 서거나 엎드려서 하강했었는데, 그렇게 내려가니 정말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했다. 물속에서 또 하나의 다이빙을 하는 기분이었다.
눈앞에 정말 거짓말처럼 난파선이 있었다. 예전에 어부를 태우고 물고기를 잡았을지 모르는 그 배는 이제는 바다와 한 몸이 되었다. 부식된 몸에는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산호가 자라났다. 갑판이었을 곳은 둥그스런 선체가 위요한 안락한 산호 정원이 되어 다른 곳 보다 물고기들이 많았다. 나중에 강사님이 물고기들도 조류가 심할 때는 바위 뒤처럼 조류를 막아주는 잔잔한 곳을 찾는데, 그래서 아마 난파선에 숨어 쉬고 있었던 고기들이 많았을 거라 이야기해주셨다. 그런 고기들은 많이 지쳐있어서,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뒤늦게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배 위에서 고기들과 눈을 많이 마주쳤다. 스펀지밥의 도시처럼 작은 도시가 거기에 있었다. 잠깐 집들이 왔다고, 눈인사를 했다.
강사님은 슈트 주머니에서 빈 페트병을 꺼냈다. 요트에서 멀쩡하던 페트병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수압을 눈으로 확인하니 꽤 차이가 커서 놀랐다. 마스크를 쓰고도 내가 놀란 티가 났는지 강사님이 즐거워했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질소마취 증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깊은 곳에서는 질소가 몸에 더 잘 쌓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내가 이겼다. 추운데도 야무지게 주먹을 쥐더라며 질소마취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다이빙 체질이라고 나중에 강사님이 말해주었다. 오래 머물 수 없으므로 우리는 서서히 상승하며 출수했다.
깊은 물속은 더 깜깜하고 무채색이다. 무섭고 차갑고 인간이 가서는 안 되는 곳 같다. 그러나 랜턴을 비추면 원래의 색이 살아났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화려하고 생생한 풍경이 펼쳐졌다. 딥 다이빙은 보물 찾기다. 제주도 바닷속 어딘가에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운 누군가의 집이자 정원이, 보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