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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삼 Nov 21. 2021

당신은 너무 예민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말 말이죠.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너무 예민해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민하다는 뜻이 궁금해서 사전적으로 찾아봤어요.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3.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첫 번째 뜻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인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민하다는 말은 주로 좋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민하게 왜 그러니? "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








선천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으로 예민한 사람을 제외하고 "예민하다"라는 말은 대부분 환경으로부터 작용됩니다. 가젤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 동물은 심박수가 매우 빠른 동물인데, 포식자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매우 민감하고 예민한 동물로 잘 알려져 있죠. 어린 가젤은 유전적으로 가젤이 가지는 특징을 가지지만, 대부분 무리 생활을 하면서 얻어지는 학습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예로 동물원에서 태어난 가젤의 경우, 야생의 가젤과 달리 여유롭고 포식자로부터의 위험을 덜 느끼는 만큼 예민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예로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흔히 개와 고양이는 앙숙이라 표현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동물들입니다. 하지만 어린 개와 고양이를 한 집에서 키우다 보면 앙숙이긴커녕 둘도 없는 친구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죠. 그 어떠한 예민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밥그릇 싸움을 제외하고 말이죠.

출처 : Sponsored Images iStock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그저 신기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개와 동물을 통해서 의미심장한 함의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서로에게 적이 아닌 식구가 되어 그냥 아무런 경계가 없는 상태가 된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민함은 상대에 대해 잘 모를 때, 상대가 나에게 적일 가능성이 높을 때, 상대가 나보다 힘으로 우위에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경계를 두고, 상대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쌍둥이로 태어났다면 비슷한 부분이 많죠. 최근에 어느 다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거론된 바가 있는데요.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따로따로 입양되어 36년에 만나 자매 이야기입니다. 그들에 대해 인지능력을 비롯하여 다양한 검사를 했는데, 거의 유사했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한 명은 외향적이고, 다른 한 명은 내향적이라는 점입니다.

성격에 있어서 외 내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 어땠는지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밝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좀 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조용하거나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좀 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죠.


이처럼 예민함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 어떤 대인관계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발현되는 현상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예민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주위에서 봐도 예민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 거라 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예민함은 어떤 상황에 내가 놓여 있을 때 발현되는 현상이지만, 정작 주위 사람들은 예민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타이르거나 꾸짖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게다가 예민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긴 자기 일이 아니니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라 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의 일에 관여를 잘못하면 또 다른 문제로 발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무조건 누군가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아마도 개인적인 습관이나 정신질환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예민함은 상대와 함께 일을 하거나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소통하지 않고 함께 엮일 일이 없다면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굳이 예민함을 가질 이유도 존재하지 않죠.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나열해서 보면 다음과 같을 때 예민할 수 있습니다.


1. 직설적인 내 말투(거만한, 오만한, 무례한)로 인해 상대방이 예민할 수 있다.

    / 직설적인 말투를 가진 상대의 말이 매우 거슬린다.


2. 내 행동이 거칠어서 상대방이 예민할 수 있다.

    / 상대의 행동이 거칠어서 늘 신경이 쓰인다.


3. 내 일하는 방식(속도, 해결방법 등)으로 인해 상대방이 예민할 수 있다.

    / 상대의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아 늘 거슬린다.


4.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상대보다 우세해서 이로 인해 상대방이 예민할 수 있다.

    / 상대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가장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네 가지 정도라 봅니다.

여기서 1, 2의 경우 시간이 흘러 서로가 양해를 하면 충분히 교정되고 고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예민하지 않으려는 방법은 다양하죠. 서로 보지 않기로 한다거나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든가...


그런데 3, 4번은 좀 다릅니다.

흔히 일을 할 때 많이 보이는 현상인데, 이 경우 조직 내에서 발현되는 경우이다 보니 내가 싫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함부로 거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보통은 조직은 계급이라는 단계를 두어 3, 4번과 같은 현상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불만이 있을 때, 뒷담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즉 예민해지는 순간이죠.



그렇다면 예민한 것은 나쁜 것일까요?

예민하다는 것은 문제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가장 선제적인 반응으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민하다는 것에 대한 문제는 정작 예민함을 느낄 때가 아니라 예민함을 느꼈음에도 그것에 대해 해결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상대방이 왜 예민할까. 예민한 이유가 무엇일까. 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상대는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 뿐이죠.

고민을 해 보고 상대방이 느끼는 예민함에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고 고칠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하고 그렇지 않고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오해를 풀어야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일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을 하다가 예민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특히 협업을 할 경우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 예민함이 더 발현되죠.

협업을 할 경우, 서로 다른 기능의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일하는 데, 부서의 특성이나 부서 구성원의 일 처리 능력 정도의 차이가 예민함이라는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협력의 경우, 이미 정해진 프로세스 역할에  따라 타인 또는 타 부서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세스라는 틀 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협업보다는 덜 문제가 발생됩니다.


그렇다면 협업일 때 왜 예민함이 더 많이 발현될까요.

그 이유는 말은 협업이지만 여전히 부서 간 그리고 조직 간의 우위 문제, 또는 원청과 하청 간의 시스템을 고수하며 일을 추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문제 상황 중에서 원청과 하청 간의 일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원청이 하청에게 일을 맡기면 매우 상세하고 성의가 있는 관련 소스를 건네줘야 하는데, 소스 없이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의 업무 태도들.

또는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서 겨우 겨우 결정 나는 사안들,

직접 대면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협업 부서의 직원과의 전문지식의 차이가 클 때,

그리고 그 직원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가장 자신 있게 활용할 때, 동시에 자신의 생각이 최선이자 최고라 믿고 주장할 때,

가장 심한 경우는 객관적 지식에서 벗어나 자기 개인의 판단과 상상을 집어넣어 이미 결정 난 의사결정이 오염될 때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생각이 다를 뿐이지 틀리지 않다고 믿으며 살죠.


하청 입장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하지만 당시에는 귀를 닫고 있다가 정작 문제점으로 나타날 때 그제야 부랴부랴 마치 원청이 스스로 생각해 낸 것처럼 하청을 몰아 부칠 때... 그 순간 예민해집니다.

그래도 의사결정권은 모두 원청에 있기 때문에 문제를 만들지 않고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일이 대수죠.

그렇지 않고, 일일이 하나하나 따지고 옳고 그름을 가른다면 그 순간 거래는 끝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죠.

방금 전 태도가 일종의 예민한 태도일 겁니다.






예민하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예민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라면 예민한 경우는 대부분 상대라는 대상과의 마찰이나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가득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그렇게 예민하세요?"라는 말로 은근히 핀잔을 주죠. 예민해하는 것이 아직 어리다, 미숙하다 라는 의미를 담으면서 말이죠.

어쩌면 노련하지 못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예민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라는 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아온 세대들을 보면,,,, 이제까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늘 차선책의 차선책을 선택하여 미봉책에 가까운 결말들만 만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넘어가면 또 내일이 오니까...


예민해졌다면 예민한 이유를 밝혀내고, 이유를 알았다면 근원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서 행하는 것이 더욱더 건설적인 행위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예민한 것 같다는 식의 핀잔 섞인 말투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 달라 라는 식의 대화가 더 멋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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