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살면서 이런 경험은 한 번쯤 가질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이유를 모를 뿐이지,,,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수없이 많은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부산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연구교수로 활동을 하다 그만두고, 아내가 직장을 잡으면서 집에서 가정주부 일과 프리랜서를 일을 하며 지내는 50대 남성이다. 그런 생활을 약 5년 넘게 하면서 스스로 SDGs와 ESG를 공부하면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덕분에 올해부터서는 인근 대학교에 다시 출강을 하고 있다.
그럴싸한 소속은 없지만, 그래도 나만의 커리어를 하나씩 만들어가며 집안을 안전하게 지켜가는 데 열심히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인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아주 의외의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현재 나는 시 소속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같이 활동하는 누군가가 나의 학위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요즘 학위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한동안 그 문제가 고민거리였다. 조금만 알아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인데 무슨 이유로 그런 의심을 하게 된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사실 속으로는 조금 서운하고 억울했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사람과 대화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면 좀 더 특별한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질문 한마디에 자연스럽게 모든 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다른 삶을 살 것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가정주부로 일하면서 특별할 것이 없는 내 모습이 그저 능력이 한참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은 박사학위가 거짓처럼 보였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 주위에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드물 수 있기 때문이다.
협의회 내에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그들의 배경을 보면 돈이 많은 지역 유지이거나 기업인이거나 대학교수이거나 기관이나 연구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인데 나만 별 소속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런 의심을 낳게 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라는 사람이 박사학위를 가지고 협의회 활동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상 모습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 계기였다.
계층을 나누고, 그 계층 속에 속하거나 속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그런 흔히 말하는 비열한 세상 모습을...
SDGs와 ESG를 실천해야 하는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이해와 연대, 그리고 통합 대신에 의심과 소문, 그리고 배척이 서려 있다는 점이 사실 많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조금만 알아보면 다 알 수 있는 사실을 자신의 생각만 앞세워서 소문을 만들어 퍼트리는 모습이 너무 추했다. 여전히 자신의 알량한 상상을 진실처럼 생각하고 이슈의 중심에서 춤추려 하는 그런 사람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 경험할 만큼 경험한 사람들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다.
게다가 또 안타까운 것은 무척이나 게으르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그리 어려웠을까?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 충분히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 수 있을 텐데 알아보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그만큼 게으르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더 아이러닉 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의 중심에서 지식인이자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내 모습이 못 마땅했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싫었을 것이다.
그저 나만 그 이유를 모를 뿐이다. 하긴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그 어떠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으며 차별한 적이 없었다. 아마 못 마땅한 것이 있다면 내 외모였을까? 유독 긴 머리를 가진 남성이라서?
2년 전에 누군가 박사학위까지 받아 놓고 남성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살아갈 가치가 있냐라고 물었다.
그들 눈에는 박사학위가 있으면서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한심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나에게 질문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느꼈으리라 본다.
그때 난 이렇게 답을 했다.
"가치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삶의 경험과 인생관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방금 전 그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을 해 주신 분 입장에서 생각하는 가치를 두고 판단하실 테니 말입니다. 저에게 물으셨으니 저에게 맞는 질문으로 다시 고쳐 질문해 보이겠습니다. 당신 입장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떤 가치가 있냐?라고 말이죠. "
이렇게 답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적이 있다.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적어도 시간을 남용하지 않고 헛되이 생각을 남용하지 않고, 가족을 생각하고 지켜나가며, 내가 배운 방식대로 제대로 익히고 제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 보다 좋은 가치는 없으리라 봅니다. 혹시 돈에 대한 가치나 대외적인 명예나 권력에 대한 가치를 생각했다면 그런 가치와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누리기 때문에 저는 늘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 없어서 좋습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 그리고 내 아내에게 흔들림 없는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어서 더없이 큰 가치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렇게 답을 했지만 그들은 그냥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답을 하고 2년이 지났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와 비교했을 때 내가 말한 가치에서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생각했던 가치가 더 늘어났다.
지난 2년 동안 SDGs와 ESG에 대해 학습이 강화되어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고, 간혹 시민단체와 기업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오고 실제 특강을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노력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쩌면 흔들림 없이 내가 바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시에 가정주부라도 계속해서 박사처럼 공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방금 전 말한 문장에서 박사학위를 빼더라도 내 가치의 핵심 문장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가정주부라도 계속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