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할 수 있는 일,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라도 상관없다. 그런 일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라. 용기 속에는 그런 일을 능히 할 수 있게 하는 천재성과 힘, 마법을 모두 갖고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오래간만에 전에 다니던 용접학교를 방문했다.
여전히 이곳 용접학교는 그라인더로 모재를 가는 소리와 용접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이런 소리들과 함께 8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서인지 정겹기까지 하다.
나이 50이 되기까지 나에게는 늘 글이 먼저였다.
직장이었던 학교 생활을 그만두고도 최대한 글과 함께 하는 일을 찾았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강의와 글 쓰는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생각보다 경쟁이 심하고, 더군다나 일 개인이 일을 할 경우, 역량면에서 그리고 규모 면에서 늘 부족함이 많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집안의 여러 가지 변화로 전처럼 강의와 글로는 생활이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감히 용기를 내어 선택한 것이 용접 기술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었다. 그리고 결과도 좋았다. 현재 나는 용접기사이다.
그런데 좋은 결과와 달리, 내 맘처럼 용접을 쉽사리 접할 수는 없었다.
대신 현장 일용직이라는 생소한 일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이 또한 적잖은 용기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용접기술을 배우기 위해 냈던 용기보다는 덜 고민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금방 결정했었고, 나의 현장직 첫 출근도 순조로웠다. 그렇게 2달 동안 일을 하고 있다.
솔직히 난 평생에 막노동은 안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사실 내가 학위까지 받은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평생을 힘든 공장에서 일을 했던 나의 아버지는 내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를 바라셨다. 그 일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사무직이든 현장직이든 모든 게 막노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학 연구소에서도 덩치가 크고 힘쓰게 생겼다고 몸으로 하는 일이면 늘 앞장서서 일을 했었다.
2026년 봄
지금이 있기까지 어쩌면 작지만 나름의 용기의 연속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용접기술을 배우기 위한 용기,
현장일용직을 하기 위한 용기,
망설임 대신 용기를 낸 결과로 '현장 일용직'을 하고 있지만, 이 선택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 본다.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할 순간이 올 것이다.
용기는 새로운 용기를 낼 때 밑거름이 된다.
망설임이 연속이었다면 계속해서 망설이다 선택도 못하고 주저앉겠지만,
한 번 용기를 내면, 그 관성이 이어져 다른 선택에 필요한 용기에 힘을 더 한다.
용기가 가진 힘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