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이 약을 꺼내 먹듯이
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할 때만 펜을 찾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다는 걸
사실 모른 척하고 있던 건 아닐까.
병원에 가면 증상을 적어주는 진단서처럼
'나는 많이 아픕니다'라고 수많은 이야기를 적고 있는 내 모습.
무언가 가득히 적힌 종이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수십 장이 넘어가고
구석 자리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사실 모른 척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나는 건강한 사람이야'라고 나 자신을 속이던 행동을 해왔던 건 아닐까.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나의 20대도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벚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나의 눈을 가렸던 봄
햇빛이 뜨거워 그늘에 숨기에 바빴던 여름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던 가을
그리고 모든 게 얼어붙은 듯 차갑기만 한 지금의 겨울
피어오르던 꽃들의 향기를 더 맡았어야 했고
살이 타오를 만큼 뜨거운 햇빛을 가슴에 품었어야 했고
낙엽들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했다.
아무런 향기도 느껴지지 않고 살이 얼어 버릴 것 같은
내 방안은 고요하다 못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왜 나는 아픈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했을까.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척하고 있는 나 자신이 딱해 보였다.
집에서 오래된 물건들과 아픔을 숨기려고 적었던 종이들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마음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후회라는 단어는 내 입과 손에서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미루다 보니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적게 된 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