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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an 17. 2020

멍 때릴 자유를 더하다.

멍 때림의 미학

멍 때림의 미학

창밖에 휴식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며 여기저기 눈길을 주다 보면 때론 위로가, 또 때로는 감사한 마음이 살포시 다가온다.      

 

나의 꿈이 만들어지는 공간. 이 사무실이 놀이터가 되기까지 창문의 역할이 컸다.


사무실 창밖 전경


'멍 때리기'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하다. 특히 소방관, 경찰관, 교도관, 군인, 의사, 간호사 등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이 걸려있는 긴박한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다. 정신없이 달린 후 찾아온 피로와 공허감을 다시 충만한 에너지로 채우는데 멍 때리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통해 현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마음속에서 충분히 숙성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거나 혹은 버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소방차와 하늘, 멍 때리기 참 좋은 날이다.


그냥 멍 때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뇌가 차분해지고 신기하게도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의미와 삶의 행복이라던지 하는 여러 가지 감사의 조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로지 인풋만 있었던 예전의 공무원 시절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주어진 업무도 잘해야 하지만 윗분들의 기준이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 때로는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운전을 해야 하기도 했고, 생각 없이 자랑했던 탁구 실력 때문에 높은 분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접대 탁구'도 쳐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의전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진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남아있다. 본래 일도 사랑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피곤함 앞에서는 여지없이 '대충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이런 게 직장생활이지 뭐. 나도 빨리 출세해서 편하게 지내고 싶다." 그게 유일한 체념이자 목표였다.   


주한미군에 입사해 미국 소방대원과 함께 일을 하면서 이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소방관은 계급이 아니라 평생 자신이 했던 업무의 양과 질로써만 평가받는다는 말.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렇다. 소방서장은 소방서장의 일을, 막내 출동대원은 출동대원으로서의 일만 하면 된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  받은 만큼 일하고 또 그만큼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5년 동안 십여 명의 미국 소방서장과 함께 근무했다. 운전도, 중요한 회의도 소방서장이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점이 많다. 나 또한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창밖을 내다본다. 오늘 했던 일이 잘된 건지, 혹시 일이라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멍 때린다. 그렇게 벌거벗은 나를 만난다. 멍 때림의 결과가 매번 신박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시간을 통해서 숨 쉬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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