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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구 Jan 25. 2022

컨닝페이퍼

컨닝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다. 첫 번째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중간고사를 쳤는데 충격적이게도 다수의 과 친구들이 거의 오픈북 수준으로 컨닝을 했다. 그리고 그 부정행위를 제제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 나도 그 다음 시험부터는 시작부터 컨닝페이퍼를 만들어놓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말이 컨닝페이퍼지 홧김에 만들었을 뿐, 볼 생각도 없었고 공부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묵묵히 했을 때 보다 결과는 훨씬 더 처참했다. 심지어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던 문제도 막상 시험에 들어가보니 애매하거나 기억이 안나서 풀지 못 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 시험을 끝으로 그 학교를 자퇴했다.

한참 뒤 입대했지만 채 얼마 안가서 크게 다치고 의병제대를 한 후 다시 수능에 도전했다. 고작 1년 남짓한 군 생활이었는데 생각보다 수능 내용을 굉장히 많이 까먹었었다. 그런데 쪽팔리기는 싫었다. 나이먹고 재수하는 것도 쪽팔리는데 이렇게 쉬운 문제도 못 푸는 건 비록 누가 보지 않더라도 자존심 상한다면서. '그래도 가오가 있지' 라며 미적분 공식을 봐가며 (거의 컨닝에 가깝게) 문제를 풀었는데, 잠깐은 풀리는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문제가 더 안 풀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는 문제도 점점 더 헷갈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뭘 아는지,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지경까지 갔다. 이유를 찾다보니 수년 전 그 컨닝페이퍼 사건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냥 만드는 것 뿐이다' 라고 했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건지, 나도 모르는 사이 대충했었던 모양이다. 컨닝페이퍼라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굳이 '완벽히' 외우거나 '정확히' 공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했던 공부도 안다고 느꼈을 뿐 진짜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태도가 차곡차곡 쌓여 결과로 나타났던 걸 그제야 알았다. 그 이후 부터는 정면승부를 해야 할 때는 두 번 다시 무언가에 의존하거나 치팅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기량을 낮추기만 할테니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관문을 넘어설 때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유일무이한 선택지다. 애초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누구라도 제대로 완벽하게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대안을 세우려 할수록 갖고있는 실력조차 발휘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고, 정면돌파가 불가피 할 때 어줍잖은 편법을 찾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다. 꼼수와 정수는 태도만 다를 뿐 상황은 같다. 두 행마는 태도가 다른만큼 시작과 과정이 다를 것이고, 결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컨닝페이퍼는 최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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