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농사짓는 변호사를 만나다

인도 고아 아람볼 비치

by 박꿀꿀

내가 묵는 호스텔에는 인도 뭄바이출신의 수육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수육은 이름도 생김새도 푸근한 삼촌같은 느낌의 친구로, 굉장히 진중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호스텔 로비에서 거북이 이야기를 하다 친해진 수육과 나는 다른 호스텔 친구와 다같이 수영을 하러 가거나, 파티에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문득 낡은 티셔츠에 배낭하나를 매고 다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게감있어 보이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수육, 수육은 무슨 일을 해?"

그는 농사를 짓는다고 이야기했다. 오오, 그렇구나. 답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말했다.

농사를 짓기 이전에는
뭄바이에서 변호사로 일했어.

변호사로 일하다가 농사를 짓는다고?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이직이람? 믿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자신이 쓴 칼럼들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어쩐지 내 표정에 의구심이 있었는지 그는 자신의 변호사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런 그는 지금은 직업을 ’떠났'으며, 농사를 짓고있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뭄바이같은 대도시에서 변호사로 일했다면 아마 인도에선 최상류층의 인생이었을텐데, 굳이 고생해가면서 농사를 지을 필요가 있나? 원래도 호기심이 넘치는 나의 호기심 버튼을 그가 눌러버렸다. 나는 무례함도 잊고 7살짜리 아이처럼 그에게 질문을 해댔다. 그런 내게 그는 따뜻하고 신중한 태도로 답을 해주다가 말로는 부족하다 느꼈는지 내게 7천명이 넘는 자신의 페이스북 농업 그룹과 공유하는 포스트들을 보여주었다.

뭐라고, 7천명?

"농사를 짓는다는 건 알겠는데, 왜 7천명이나 함께 그룹이 있어야 하는건데?"

바다의 모래사장 위에 앉아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봐, 너는 우리가 자연에서 모든 걸 얻을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 있어?

영화 <매트릭스> 봤지? 나는 우리 사회가 매트릭스와 같다고 생각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안에서 물질이 필요하고 학위가 필요하다는 시스템안에 갇혀버려서, 실은 자연이 모든 걸 준다는 걸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야. "


신선했다.

그렇지만 의문점이 또 생겼다.

"그렇지만, 변호사가 되기까지 분명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을텐데.. 농사보다 변호사일을 하는게 돈을 더 벌수 있지 않아? 너의 자격증이 아깝진 않아?"


수육은 나의 질문에 웃었다. 자신도 변호사생활을 하기까지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매트릭스 안에서의 사고방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그는 간디의 말을 들려주었다.

자연은 사람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까지 채워줄 수는 없다. -마하트마 간디

그는 자본가들의 방식대로 자연을 활용하다보면 그것이 바로 가난과 굶주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땅이나 강이나 바다를 지금의 방식처럼 누군가가 소유해서는 안되고, 모든 이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며 자연을 공존하는 방식으로 가꾸어나가야한다고.


그는 학교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학교는 이런 시스템을 가르치며, 사람들의 사고를 틀안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고. 한때 잠시 교사였음에도 한국의 학교시스템에 완전히 질려버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그에게 그럼 그의 그룹안에 대안적인 교육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랬다.

우리는 자연을 배워. 그게 우리의 교육이야.


듣다보니 그가 왜 고아여행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히피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의 뿌리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나오는 것일까? 자연과의 공존을 말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이걸 이렇게 실천한다고?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보리수나무 아래로 간 석가모니의 나라 답다. 그는 고아지역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는데, 이 곳은 원래부터 히피들의 지역이었고 관광지로 상업화된지는 15년정도밖에 안되었다고. 지금이야 히피들이 옷이라도 입지, 그전엔 정말 해변가에 모여서 불을 피우고 알몸으로 춤추고 노래했다고 한다.


호스텔에 돌아온 나는 그와의 대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연은 정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줄까? 그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가 보고듣고 살아온 세상에선 보통 동의할 수 없는 세상의 시스템과 부딪히면 순응하거나, 불평하거나 둘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예 그 시스템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고, 심지어 그런 그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7천명이나 모였다. 놀라웠다.


그가 쓴 몇개의 칼럼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의 칼럼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가장 부자인 사람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게 흥미가 있다면 자신의 농업그룹에 온라인으로라도 참여해도 된다고 했다. 요가원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자연식만 먹으며 살았던 2주간의 요가원 생활은 내게 너무 힘들었는데.. 나는 아이스바닐라라떼도 마셔야하고, KFC햄버거도 먹어야 행복한데. 스마트폰도 있어야 하고 에어팟맥스도 가지고 싶고.. 그의 농업그룹에서 활동하긴 어렵겠다고 말했다. 나는 간디랑은 거리가 먼가봐.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수육의 농업그룹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그의 절대 소박하지 않은 거대한 농업그룹은 내게 영감을 주었다. 어떤 영감이냐면, 꼭 주어진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며 살아도 그렇게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살수 있다는 것.

인도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보지 못했을 생각들을 나는 만났고, 내 세상은 한발자국씩 넓혀지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옥수수껍데기를 먹고싶어서 기다리는 송아지와 노을을 보며 먹은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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