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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Jan 26. 2024

이집트에서 숨참고 프리다이브

이집트 다합에 도착한 뒤, 내가 첫날 묵은 에어비앤비 숙소 호스트의 프로필 문구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자로 살다가 다합에 정착한 남자.'

그걸 보자마자 든 생각은 다합이 그렇게 좋은가, 하는 의문과 함께 드는 부러움이었다.

온 세상 다 가보고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곳을 골라 정착하다니. 부럽다.


며칠이 지나면서 점점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다합은 정말 독특한 매력의 여행지였다. 중동과 아프리카 사이 그 어딘가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 휴양 온 이집트인들과 전 세계에서 온 다이버들이 어우러져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딜 가나 시샤라고 불리는 니코틴 없는 물담배를 입에 물고 리듬을 타거나 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풍경은 마치 나태지옥이 아니라 나태천국 같다고 느껴졌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시샤를 입에 물고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다가 더워지면 수영을 하고 길고양이와 놀고는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거리에는 한국인여행자들도 곧잘 눈에 띄었다. 다합은 한국인 강사들이 있는 다이빙 샵, 한국인 셰어 하우스가 있는 걸로도 유명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단체로 묵으며 친해지기도 한다고 하던데 나는 단체생활알레르기가 있는 여행자라 그러진 못했지만 그 혜택만은 톡톡히 누렸다. 한국인들만의 장터가 있어 한국식 호빵이나 육개장, 김밥 같은 걸 사다 먹으며 행복해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건 유튜버 빠니보틀이 셰어하우스를 연 곳도 바로 이곳 다합이라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또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다합에 셰어하우스라니, 사업을 이유로 다합에 자주 오겠네. 부럽다.


그렇게 홍해바다를 바라보는 즐거움에 아무것도 안 하며 며칠간을 보냈다. 그런데 딱 일주일이 지나자 내가 점점 지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다합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다합에 머무를 이유를 찾던 나는 다이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다합에서 다이빙을 하리라는 건 예정된 운명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다이버들이 우글거리며 다이버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데, 다이빙이 세계에서 제일 싸다고 꼭 배워오라고 어딜 가나 그러는데 다이빙을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나.

찾아보니 다합에서 다이빙을 배우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듯했다.

첫 번째, 다이빙 코스 비용이 싸다.

두 번째, 수심이 깊고 파도가 세지 않아 배를 타고 나가지 않고 그냥 걸어 들어가서 다이빙을 할 수 있고 산호가 아름답다.

세 번째, 다이빙을 배우면 세계 5대 호수라는 수심130미터 블루홀에 가볼 수 있다.


문제는 다합에서 다이빙을 하면 보통 AIDA 2라는 자격증 코스를 듣는데 그건 최소 일주일이 걸리고, 나의 튀르키예행 비행기는 이틀 후면 떠나는 티켓이었다는 거다.

튀르키예를 갈까, 다합에 열흘 더 있을까?

홍해바다를 바라보며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때 다합 여행자들이 모인 '다합 단톡방'에 누군가가 다이빙 버디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다이빙은 수심 아래로 내려가는 스포츠라 안전상 이유로 항상 2인 1조로 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이빙을 못 배우고, 다이빙을 못 배우면 다합에 머물만한 이유가 없어져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주저 없이 다이빙 코스에 등록하고 튀르키예 행 비행기표를 찢었다(는 아니고 사실 온라인예매라 그냥 취소버튼을 눌렀을 뿐이지만 어쨌든 쿨 해 보이기 위해 찢었다고 표현하기로 한다.)


다이빙에는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는 스쿠버 다이빙과 별다른 장비 없이 숨을 참고 들어가는 프리다이빙이 있는데, 나는 주저 없이 장비 없는 프리다이빙을 택했다. 아무래도 어딜 가나 다이빙을 하려면 장비가 필요 없는 프리다이빙이 낫지.


그렇게 등록한 프리다이빙샵에 도착한 것은 아주 더운 날 오후였다. 나와 버디님은 이론강의를 들은 후 다이빙샵 마루에 벌러덩 누워 '숨 쉬는 법'부터 배웠다.

숨 쉬는 법이라니. 살면서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다이빙에서는 다이버의 호흡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했다. 전문 다이버들은 숨 한 번에 80미터, 100미터까지도 내려가는데, 그러려면 가슴(폐)으로만 호흡을 마시는 걸로는 산소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배와 가슴 모두를 이용해 숨을 쉬어야 한다고! 배를 부풀리며 배 안에 공기를 가득 채우며 들이마시고, 배에 산소를 다 채운 뒤엔 가슴을 부풀려 숨을 들이마신다. 그렇게 하면 몸통 전체에 산소를 채운 듯 빵빵해진 기분이 든다. 그 상태로 숨을 참는다. 신기하게도 일반적으로 숨 쉬는 것과 달리 2분, 3분까지도 참을 수 있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오면 투, 하며 짧게 숨을 내쉬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며 하, 하며 부족했던 산소를 채운다.


이렇게 한참을 호흡 연습을 한 우리는 이후 수영장에서의 수영테스트와 다이빙 연습을 거쳐 시험을 봤다. 시험 기준이던 수심 12미터를 내려갈 때 호흡만큼 힘들었던 건 이퀄라이징이었다. 물속에 들어가면 귓속 압력이 높아지면서 귀가 아프게 되는데, 그때 코와 입을 막고 공기를 코로 보내며 귓속 압력을 낮추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숨 참기보다 더 어려웠다. 태생적으로 잘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그런 것엔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험날, 코피까지 흘려가며 중간에 포기해 버릴까 고심하다가 겨우 통과했다.

그렇게 딴 AIDA2 다이빙 자격증. 비록 배낭에 넣으면 다 구겨질 테고 어디에도 그다지 쓸모는 없지만 꼭 쓸모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다이빙을 배우면서 내친김에 세계 5대 블루홀이라는 130미터 깊이 호수인 블루홀에도 가보았다. 나는 이제, 게임 속 기술 이름 같은 '다이버의 호흡'이란걸 배워보았고, 맨 몸으로 수심 13미터쯤은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블루홀의 산호가 얼마나 멋졌는지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튀르키예행 비행기를 타면서 나는 언젠가 다합에 꼭 돌아가고 싶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여행자로 살다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 정착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행자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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