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장군 Dec 21. 2020

모국어와 외국어 (전편)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나의 영어

 직장 맥킨지 서울 오피스에 들어갔을 ,  주변에는 교포나 외국에서 유학하고  동료들이 많았다. 어린 시절에 영어권 나라(주로 미국)에서 살다왔거나, 고등학교 대학교를 그런 나라에서 공부하고 왔거나. 넘사벽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영어를 '좋아해 왔고', 1 교환학생을 다녀온 곳도 파리였다. 전공이 프랑스어였으므로, 영어뿐 아니라 '경영' 영어 용어 일색이던 맥킨지에서 나는 그야말로 맨바닥에 헤딩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예의  교포/유학생 친구들에 대한 동경을 무럭무럭 키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디즈니 OST 팝송 가사를 따라 외우며 놀았지만 (만화책과 함께  유년의 진정한 선생님들이었다.) 나에게 영어는 '즐기는 외국어', '잘한다고 칭찬 듣는 과목'이었다.  동료들처럼 모국어로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나오는 상태와는 그야말로 하늘과  차이였다.

지금의 영어

어쩌다 보니, 영어를 계속 쓰게 되었다. 맥킨지 서울 오피스 2.5년을 지나 너무나 운 좋게도 뉴욕오피스에서 1  맥킨지 경험을 하게 되었고,   문화예술/소셜 섹터에 있던 3년도 간간이 영어로 계속 일을 했다. 인시아드 MBA 1년을 하면서 영어가 한 단계  늘었고, 우여곡절 끝에 뉴질랜드에 와서 취업을 하게 되면서 2019 2020년은 매일매일 (나만 빼고 99%) 네이티브들과 일하고 있다.

영어에 대한 친숙함은 이제 2005 맥킨지에 입사했을 때와는 비교할  없다. 독특한 키위 엑센트도 이제 익숙해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이제 거의  들린다. 말을  알아들을 때는 Pardon? 하고 물어볼  있고 다행히 그게 너무 자주가 아니라 민망한 수준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한국어로 말할 때도 딴생각하느라  못 듣거나 들려도 이해가 안 가면 '뭐라고요?' 다시 물어보니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말이 술술 나올 때도 많다. 특히 영어 자체에 집중하는  아니라 내가 하려는 말의 논리에 분명한 경우,  내가 말하는 것을 100%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경우, 다른 생각 안 해도 그냥 명쾌한 문장들이 나오고, 상대를 설득하게 된다.  원래도 (한국에선 특이하게) 단어는 몰라도 말은 많이 했고, 읽기는 느려도 쓰기는 빨랐다.

그렇지만, 결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나의 사고체계는 한국어로 지은 집이고, 한국어의 어순은 영어의 어순과 반대이다. 방심(!)하고 딴생각하는 순간, 나는 혼자 안드로메다로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들에는 민망할 정도로  입에서 나오는 문장들이 비문이거나, 버벅댄다. 영어로 일을 한다고 영어 단어가 팍팍 늘거나 내가   있는 표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은 없다.

결국 노출, 그것이 전부

 7, 3 아이들이  곳에서 크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습득하는 모국어로서의 영어와 내가 평생 숙련하는 외국어로서의 영어의 차이점을 매일 느낀다. 그리고 내가 습득했던 모국어로서의 한국어 경험도 평가하게 된다.

  영어를 몰라서 매일 울고 불고 학교 가기 싫다던 첫째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영어를 배웠고, 이제 한국어와 영어 스위치를 왔다 갔다 켜며 상대방을 대한다. 8개월에 와서 거의  2 반까지 영어도 한국어도 안 하고 입을  닫고 있던 둘째는, 이제 한국어를 100%  알아듣지만  영어로만 말하려고 한다.

지난 3년 동안 이들이 영어로 말하고 영어를 배워야 했던 시간이 한국어를 써야 했던 시간의 2배는 족히 넘는다.  시간 동안 약간 짠하지만  아이들은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써야 했다. 그리고 매일 8 -5시까지 있는 (직장 같은) 학교에서  아이들은 영어로 배우고 영미권의 문화/이벤트를 경험하며 커나가고 있다.

아이들과 계속 영어책을 읽고 나도 모르던 생활단어를 익혀가면서, 내가 그렇게 동경하던 어린 시절 영미권 유학을 대리 체험하면서, 결국 언어는 (수준에 맞는) 노출이 전부라는  알게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계속  언어에 노출되면 그냥 괴로운 시간이 쌓여 자연스러움으로 바뀌는 , 그것이 언어이다. 대단한 동경을 가질 필요도 없고 환상도 도움이 안 된다. 언어는 사고와 커뮤니케이션  자체이기 때문에 언어 자체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은 그냥 노출 -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도 높은 노출 시간-  전부이다. 물론 언어에 대한 재능도 영향을 미치지만, 사실 기본은  노출, 시간, 환경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폭풍우에 적응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