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푸어 띵스>가 아니라 <가여운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는 사실조차 영화 예매 하루 전날에 알았지만 올해 손 꼽아 기다린 영화 중 하나인 <가여운 것들>! 사실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길래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 보다가 잠들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면서 갔는데 이런... 졸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뭡니까.
바로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휘갈겨 쓰는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스포 있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영화를 '여성 해방에 대한 영화'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벨라 백스터는 어린 아이의 뇌와 성인의 몸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또 영화 <괴물>이 떠오르네요... 돼지 뇌를 이식받은 사람은 돼지인가 인간인가 하는 그 영화 극초반의 물음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가여운 것들>의 서사를 빌려오자면, 그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돼지'가 되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그런 벨라 백스터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자아를 만들어나가는, '벨라 백스터의 성장기'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벨라는 아직 언어 구사 수준이 높지 않던 시기에 '자신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행위'를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유아기의 아동이 자위 행위와 유사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생식기를 만지기도 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들 하죠. 그걸 공공연한 장소에서 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요. 그렇다면 벨라 백스터가 이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이야기이냐? 라고 한다면 그건 당연히 아니라고 봅니다. 말했다시피 이 시기의 벨라는 아동이니까요... 뭐 그렇다고 해서 이걸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으로 해석하는 것에 위험이 따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냥 제 생각은 그렇다는 거고요. 이 장면에서 진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다른 지점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벨라에게 '그런 행위를 공공연한 장소에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상류 사회에 맞지 않다'고 혼내는, 맥스의 끔찍하다는 눈빛과 말투겠죠.
그리고 이런 면에서 이 영화의 페미니즘적인 면은 더러 나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페미니즘적 면은 다른 영화에서도 더러 찾을 수 있지 않나요? 이런 면들 때문에 와 이 영화는 여성 해방을 노래하는 영화야~ 라고 하기에는... 불필요하게 긴 성관계 장면과 불필요하게 많은 엠마 스톤 배우의 노출 신들이 아주 충분하게 마이너스 지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 장면들이 포르노적으로 보이게(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성적 흥분을 유발하기 위한 장면으로 연출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연출이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웨스 앤더슨도 그렇고 불필요하게 많은 노출 신들을 집어넣는 백인 남성 감독들의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하하...
그래서 제가 이 영화가 여성 해방에 대한 영화다! 라고 말하는 게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은... 아무래도 벨라가 파리에서 성매매를 한 지점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성매매를 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점은 사실 저에게는 이 영화의 단점이자 한계점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서사 구성상 최선이라고 판단해서 쓴 대목이겠거니...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성매매를 했다'는 지점 때문에 벨라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성매매를 했다니 넌 이제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잖아!'라는 지점 때문에 벨라를 비난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페미니즘의 어떤 맥락과도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지만 제가 뭘 알겠어요... 그냥 넌 그렇게 생각했구나 알겠다~ 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첨언해서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았을 때... 태아의 뇌를 임산부에게 이식해서 실험을 한다는 상황 자체가 정말 비윤리적이죠. 영화의 시작부터, 영화 서사의 시발점이 되는 첫 이벤트부터가 이렇게나 비윤리적이라니! 그렇지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나 제가 뭘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냥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가 그 비윤리적인 행위를 미화했나요? 이 비윤리적인 행위의 끝에 벨라 백스터가 지적이고 진취적이고 당시 시대상에 비해 진보적인 여성상을 갖게 되었구나! 이 비윤리적인 시술 덕분이야! 라고 말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니까요.
사실 좋다는 감정에 이유를 찾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가 벨라 백스터의 '자아 찾기 과정'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러한 자아 찾기 모험이 영화 속에서 (거의 아마도 완전히) 끝난 이후 벨라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Re-animated되기 전 벨라 백스터(죄송합니다 프리... 뭐더라 이름을 까먹었네요... ㅎㅎ.... 아무튼 그 한글로 여덟 글자? ㅎㅎ...)는 'cruelty'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reanimated 이전의 벨라의 남편인 알피와 하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요. 그래서 그 장면에서 벨라는 이야기합니다. 그때의 자신은 'kindness(친절함)'이 없던 사람이었다고요.
그렇지만 reanimated 이전의 벨라의 몸 속에서 처음부터 다시 자아를 찾아나가고 직접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자아를 만들어나간 벨라는 달랐습니다. 마사와 함께 철학을 공부하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죽어나가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규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주겠다고 나서고, ... Re-animation의 과정은 분명 갓윈 백스터의 시술 끝에 탄생한, 벨라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영화 말미에서 갓윈 백스터가 이야기한 것처럼 벨라라는 사람은 갓윈 백스터가 아닌 벨라 백스터 자신에 의해서 탄생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는 친절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또 이름을 까먹었는데 마사와 같이 지내던 비관주의자 친구... 그 친구가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cruelty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죠. 하지만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나간 벨라 백스터를 보면 꼭 모든 사람이 cruelty를 품고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이즈음이 되면 또 'kindness'를 다루는 문학을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떠오르네요. 물론 <가여운 것들>이 'kindness'에 대한 영화다! 라고만 말하기에도 역시나 애매하지만요.) 아무튼... 그런 자아 찾기의 여정을 다룬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고, 그리고 영화가 웃기고 재밌잖아요. 이 영화의 오락성 가득한 상업 영화 면모 일부가 저를 깔깔 웃게 만들었달까요. 극장에 사람이 가득 차서 함께 울고 웃으며 영화를 보는 경험을 좋아하는데, <블랙 위도우> 개봉 당일 이후로 이런 경험이 너무 간만이었거든요. 이것도 이 영화가 좋게 느껴진 데 또 한 몫을 했습니다. 너무 객관적이지 못한 후기가 아니냐고요? 그렇지만 그게 Art다... 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선호도에 분명 그 작품을 본 시기, 그때 내 마음 상태, 주변 상황, 이런 것들이 다 녹아들어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내일이나 언젠가 다시 이성을 조금 더 찾고 다시 떠올려 보면 이 영화가 오늘 느꼈던 것만큼 좋지는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지금의 저는 이 영화에 대한 호감을 아주 강력하게 표출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