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등감의 화신이었다. 결핍된 모든 것을 갈구했고 날마다 이유 모를 분노로 가득했다. 해소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타인을 괴롭혔고 울분을 토로했다. 잔혹할 정도로 평범한 현실에 좌절했고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모진 수난을 겪었다.
원망과 시샘, 치욕과 모멸의 역사. 현실을 직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낭만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
이 모든 문제는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갈급한 욕망이 생겼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순응에 반항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이는 내가 최초로 내 속에서 진심으로 발휘되었던 욕망이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 의미의 욕망에서 애걸복걸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은 결코 이 욕망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수신자가 없는 발신 전화를 날마다 걸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대는 무참해졌다. 나는 진심이었기에 서글펐고, 진심이었기에 절실하게 스스로가 미웠다. 이 원망을 해소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아팠다. 이기적인 나는 스스로를 포장했다. 쉽게 고귀해졌고, 타인을 배척했다. 이 모든 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옳은 일을 추구한다는 미명으로 나는 얼마나 타인들을 괴롭혀왔는가. 돌아보면 나는 쓸데없이 감상적이었고 진지한 체하며 타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어쩔 때는 너무나 솔직했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으로 타인을 난도질했다. 그들도 나만큼 초라하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었다. 그것만이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고 믿었다. 고귀하게 죽고, 내 이름이 이 땅에 기록되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헛되다는 것을 잘 안다.
모든 것을 죄악시하고 타인을 배척하며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힌 채 살면서 슬픔을 오롯이 직면했다. 슬픔에게 호소했고, 타인은 왜 내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토로했다. 나의 슬픔은 내게 답했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라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 타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각자가 자기 삶을 살아 가느라 바빠 남을 이해할 시간이 없다고. 고로 아픔은 스스로 치유하는 거라고. 그 과정이 몹시 힘들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내 욕심을 버리고, 타인의 욕심을 돌보라고 슬픔은 내게 답했다. 그렇게 슬픔에서 깨달음을 얻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타인은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이 명제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참 길었다. 이제야 나는 쾌활해졌다. 드디어 나는 나를 잘 만들어내고 있다. 나를 만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미를 버리고 일상을 살기까지 수없는 시련을 겪었고, 마침내 이겨냈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의미가 가슴 깊숙이 남아 여전히 내 가슴을 들끓을 것이다. 희망은 여전히 내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하다.
범인(凡人)으로 살아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