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해이해진 마음

내밀한 획

by 오우


어린 시절 나는 약속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에 대한 강박에 가까웠다. 약속 시간, 반납일, 등교 시간 등등 정해진 시간에 늦으면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괴로웠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보급된 시대였다면 아마도 강박이 덜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친구가 약속 시간을 어기거나 만남을 취소한다면 집에 돌아가서야 알게 되는 시대였다.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하는 게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였던 나이라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약속을 정하고 친구를 만났다.

당시 만났던 친구 중에는 유독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정해진 약속 시간보다 늦는 것은 기본이고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는 날도 있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도 "미안해"라는 한마디가 끝일뿐, 다음 약속 시간엔 어김없이 늦었다. 하지만 친구가 소중한 나이기에 나는 모든 것을 감내했다. 언젠가는 그 친구도 약속 시간을 지키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는 시간이 흘러도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 내가 변했다. 기다리는 법을 배운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시간에 대한 강박도 무뎌졌다. 약속 시간에 늦는 상대방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 스트레스를 견디며 나아간 덕분에 조금 유연한 사람이 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30분을 늦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이 생겼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가끔 나도 약속 시간에 늦다. 관대해진 만큼 해이해졌다.


나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해이해진 마음이 꽤 좋았다. 일상에서는 칼각보다 대충 쌓아 올린 더미 같은 일이 더 많이 벌어는 걸 경험했기에.


어떤 평온은 피하기 힘든 불편한 상황을 견뎌내면 얻어지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