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에 매출 20억?!
홈쇼핑 관련 일을 시작한 건 마지막 회사를 그만두고 온라인쇼핑몰을 준비하던 몇 년 전 여름이었다.
당시 홈쇼핑 사업을 운영하던 선배의 권유로 일하게 됐다.
"늘 하던 기획과 영업력으로 일하면 되는 거야. 별다를 거 없어. 1시간에 20억씩 팔리기도 해!!"
평소에 홈쇼핑에 관심도 없었지만 하향 산업으로 생각하던 내가 홈쇼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정보가 별로 없던 나는 결국 20억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덜컥 일을 시작했다.
막상 일을 해보니 온라인 마케팅과 기획, 영업, CS가 총망라된 모든 영역을 함께 해야 하는 육체노동이 수반된 종합예술적(?)인 일이었다.
업을 이해하는데만 일 년은 넘게 걸린 듯하다. 속았다! 쉬운 듯하면서도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홈쇼핑의 높은 비용구조와 늘 우상향 되어가는 수수료 체계, 노력에 비해 결과는 늘 알 수 없는 도박판의 마지막 승패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기업의 신제품을 홈쇼핑 방송에 론칭하는 기획밴더 업체다.
홈쇼핑 진출에 관심이 있지만 아직 회사내부에 홈쇼핑팀을 갖추기엔 부담되고 파일럿을 원할 때 우리를 찾는다.
우리의 고객사는 거의 홈쇼핑을 해보지 않았던 업체들 대부분이라 제품생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정을 밴더사에 위탁한다. 밴더는 홈쇼핑 방송 후 매출에 대한 일정의 수수료를 의뢰업체로부터 받는다.
처음 홈쇼핑을 경험하는 업체들은 1~2회 진행하고 나면 생각했던 손익보다 미흡할 경우 비전을 잃고 방송을 중단하거나 직접 운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말리지 않는다. 팀 수준의 역량이 투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접 전 과정을 이끌고 가는 것은 첫 진출 시에는 쉽지 않다.
어쨌건 상품이 홈쇼핑 방송에 론칭되려면 수많은 관계자 회의와 자료조사, 판매전략수립, 인서트 영상, PPL, 심의, 방송세팅 등의 과정을 거치는 통상 3~6개월이 소요된다. 무엇보다 각 단계별 회의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방송 며칠전이 되어야 홈쇼핑사와 방송위탁계약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첫 미팅을 시작으로 수개월을 론칭 준비를 하는 동안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하지만 이메일과 메시지, 구두 상으로 협의될 뿐 계약서는 며칠 전에 작성된다.
흔하지는 않지만 방송사 사정으로 진행이 보류, 지연,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며 서류적으로 계약된 사항은 없기에 어떤 것도 담보되지 않는다.
상품을 홈쇼핑에 론칭하고 싶은 기업은 목표는 명확하다.
방송비용은 높지만 한 번에 대량판매를 통해 높은 매출과 수익, 마케팅 홍보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 론칭을 위해서는 몇천만 원에서 억대의 높은 비용이 소요된다.
반대로 준비기간은 길지만 평균적으로 방송 1시간 내에 높은 매출을 내지 못하면 손실은 커진다.
방송수수료, 재고부담, 기타 마케팅비용을 모두 합치면 웬만한 실적으로는 기대수익을 내기 어렵다.
무엇보다 판매실적이 부진한 상품은 다음 방송편성을 잡기 매우 어렵고 비용도 증가된다.
물론 여러 사정으로 다른 방송사도 론칭할 수 있다.
홈쇼핑 채널은 현재기준 총 18개 채널이나 되기 때문에 갈 곳은 많다.
그중 실시간 방송되는 라이브 방송과 녹화 후 여러 번 송출하는 데이터 방송으로 나뉜다. 채널별 장단점이 있지만 비용구조는 비슷하고 매출규모와 비용 차이는 크다.
업계에 입문하기 전 홈쇼핑은 재고를 처리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착각했었다.
대부분은 신제품의 성공적 론칭을 위해 투자한다.
더불어 홈쇼핑에서 판매가 대박이 나는 상품의 경우 온라인매출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효과도 발생해 생산원가도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업체 관계자는 이 상품은 방송만 나가면 대박 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온다.
이때 우리의 상담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너무 좋은 상품 같은데 가격이 비쌉니다"
홈쇼핑은 무조건
온라인 최저가보다 낮은 가격이어야 하고
진행과정에서 더 낮아질 것이며
추가할인까지 붙어 더 낮추어야 방송이 시작된다.
적어도 방송일 기준 일정 기간은 최저가여야만 한다.
홈쇼핑은 정해진 기간 내에 대부분 무료반품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구매 후 방송가격보다 저렴한 상품을 찾으면 즉시 반품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일 년 내내 00세일, 00 특집, 오늘만, 역대급, 최초, 마지막 등의 지금 사지 않으면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할인을 준비해야만 한다.
현재의 시장도 홈쇼핑으로 대박을 낼 수 있지만 흔하지 않다.
10여 년 전 홈쇼핑 번성기에는 한 시간에 10억, 20억대 상품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면 "매진" "완판"이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쩌다 완판 되는 상품이 나오면 뉴스기사에 올라올 정도로 이슈가 된다.
어떤 상품이 홈쇼핑에서 대박상품인지 주변에서 늘 묻지만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전혀 기대가 없는 상품도 모두가 대박상품으로 예견한 상품도 실패와 성공확률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때문에 홈쇼핑에 처음 도전하는 업체는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짧은 시간에 확인해 본다는 목표를 정하기를 권한다.
결과가 기대보다 작을 경우 보완 및 개선점을 빠르게 확인하고 목표달성 또는 상회했다면 공격적인 영업과 마케팅을 추진하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현실적인 목표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모든 관계자가 복도나 미팅실에 모여 간단한 스탠드 미팅을 거친다.
성공한 방송은 모두가 웃으며 서로 당신 덕분이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실패한 방송은 서로 눈을 잘 마주치지 않거나 실패의 이유를 상당히 많이들 공유한다. 수개월 준비했어도 더 주의하고 고려할게 많았다니 새삼 놀랍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때그때 다른 의미의 말들이 오간다.
"다음 방송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