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률 Dec 04. 2015

곶자왈

『CEREAL 09호』, 52쪽 중에서

나는 그 계절 숲에 오래 있었다. 새로운 생각을 찾기 위해서였다. 생각을 찾기 위함이라니, 그런 식의 말 형태가 없어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숲을 만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제주의 숲을 처음 만난 건 제주 돌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의 일이다. 언뜻 100년 가까이 된 집을 고치고 또 고치고를 반복한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질 일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새소리가 들려 창문 밖을 보니 그 방향으로 숲이 나 있었다. 그 방향을 따라 걸었다. 뭔가 홀린 듯이 걷기도 하였고 뭔가 푹 젖으러 그 길을 따라 걷는, 그런 사람 같기도 하였을 것이다. 바람에 잎들이 스치는 소리들이 들려올 때면 소리들을 더 크게 들으러 잠시 발길을 멈추기도 하였다. 꿩이 푸드득 날아오를 때면 숲의 주인을 몰아낸 기분이 들어 잠시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허리가 꺾여 쓰러진 고목 위에 앉아 눈을 감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나는 다시 초록을 덮고 마지막 잠을 한번 더 청하는 사람이 되어 오래 흔들렸다. 그토록 숲은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가는 나를 포근히 받아주고 있었다.     


숲에 돌아와 그 숲 이야기를 들었다. 그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숲을 섬겼노라고 했다. 숲에 들어가 기도했고 숲으로부터 삶의 방향을 들었다. 숲을 섬긴다는 것을 나 같은 사람이 알 리 없었지만 방금 전 숲을 섬기고 돌아온 나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 믿으며 당분간 그 집에서 머물기를 희망했다.      


다행이도 그 집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그 집에 머물면서부터 제주 숲을 찾는 횟수는 숲이 번지듯 번져나갔다. 그 집은 제주의 동쪽에 위치해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제주 숲의 입구이기도 했다.     


사려니숲에서 정신을 차렸다. 세 시간에 걸쳐 숲을 다 돌고 나오는 길, 마주친 한 아주머니가 “일찍도 숲에서 튀어나오네.”라고 하시기에 “이른 새벽 어둑어둑할 때 숲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에요.”라고 했더니 내게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란다. 제주서 제일로 기운이 좋은 숲이라고 하신다. 신평곶자왈에서는 길을 잃은 김에 노래를 불렀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다가 간신히 사람을 만나 눈이 마주쳐 배시시 웃고 말았다. 들렁모루에서는 평생 만나야 할 청량한 바람을 모두 만난 것 같았다. 청수 곶자왈과 저지 곶자왈에서는 숲에다 살림을 차리고도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좋아한다고 말은 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