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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ungoo Feb 05. 2024

그림쟁이의 남편

금요일 밤의 흔한 우울

사실 글을 적고 싶은 기분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듯 끄적여 본다. 마음은 불편하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발생하고야 말, 피할 수 없는 몇 가지 귀찮은 일들이 머릿속 어느 구석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이란 즉 일에 관한 스트레스이다. 그렇다면 나와 내 직업의 관계는 어떠한가. 마치 퍼즐 조각을 구겨서 끼워 넣은 듯한 억지스러움, 제자리가 아닌 줄 알면서 모른 척 쑤셔 박아 놓은 퍼즐 조각과 퍼즐판 같은 관계이다. 근무 한지 4년이 되어가지만 도무지 퍼즐은 완성될 기미가 없다.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절망적이지도 않다. 그나마 퍼즐판에 억지로라도 박아 넣을 수 있을 만큼은 되니까. 아예 모양이 달랐다면 억지로 끼워 넣지도 못하니까. 나의 퍼즐판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내게 슬픔인지,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가능성이 내게 여전히 존재한다는 기쁨인지 나 자신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지금 기분이 딱히 우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상쾌하지도 않다. 음, 이것은 좋은 일이다. 너무 좋거나 싫은 쪽이 아니라면 도파민의 영향이 적은 상태, 즉, 어느 정도 평온한 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주말이라는 사실은 기쁨으로 작용하지만, 주말이 온다면 반드시 그다음 월요일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면 다음 주 스케줄을 생각하게 되고, 바로 동시에 과거의 어느 힘들었던 주중과 상대적인 비교를 하고야 말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러한 생각의 굴레는 많은 확률로 금요일 오후 즈음 그 절차를 밟으려 한다는 사실을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그 굴레 속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음에 조금 놀란다. 그래, 무엇이든 써봐. 연상에 연상을 거듭하면 그동안 별 의미 없이 흘려보낸 생각과 행동 속에 뜻밖의 지겨운 의미를 더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발견이라고 해봐야 하찮은 것에 불과하나,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한걸음 뒤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무가치한 일은 분명히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다.


앞의 글을 조금 정돈하고 다시 새로운 단락에 글을 시작하고 있다. 여전히 무엇을 쓸 것인지 계획은 없다. 음, 계획이라. 계획을 계획할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하등 의미 없는 이런 말장난이 지금 무슨 소용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점점 타이핑을 멈출 수밖에 없음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한 문장만, 한 문장만 더! 쓸 수 있다면, 하고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그대로 놓아둘 볼품없는 이유를 찾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모니터에서 손가락으로 시선을 옮긴다.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렇다. 결국 별 의미 없이 타이핑을 즐기는 것뿐이다. 책을 보다 지겨워서,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에 조금 권태를 느껴 내 머릿속을 산책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곳에는 즐거움이나 슬픔이나 우울함 등의 감정은 없고 그저 지겨움이 있다. 그래 난 재미를 찾고 있었다. 늘 우쭐한 태도로 조언자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나는 아내에게 그럴싸한 말을 자주 해주어야 한다는 거만한 역할놀이에 집착한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 따위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작가가 느끼는 재미라고 나는 말했다. 그것이 진리라고 말한다. 즉, 당신이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궁극적인 목적이라며, 마치 엄청난 인생 명언을 남기는 듯한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의 재미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고 했다. 정작 나 자신은 이토록 지겨워하면서 누구에게 조언을 한단 말인가. 겸손은 어렵다. 그러나 겸손을 배운다. 너나 잘하세요. 텅 빈 뇌로 여기까지 글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아직도 글을 끝내지 않고 계속 적고 있는 이유는 그야말로 단순하다. 위 단락과 현재 단락이 비슷한 길이로 끝마쳐 지길 바라는 글의 연장선, 하여 글은 의미 없는 선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오늘 평소보다 작업실을 일찍 나서 조금 걷기로 했다. 이제 곧 길을 나설 예정이다. 위의 두 단락은 정교하게 길이를 맞춰 끝마쳤을 만큼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글이긴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지 못했고 어딘가 딱딱한 느낌이었다. 산책을 나서기로 한 지금은 그런 것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도 않을 만큼 훨씬 편안한 기분이다. 나는 아내와 1월의 추운 밤 온천천 길을 걸어갈 것이다. 집까지 가자면 만보 이상을 걸어야 한다. 과연 차가운 바람에 어김없이 반응하는, 그보다 맑을 수 없을 콧물이, 즉, 내 비염이 잘 참아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나가기 직전 아내는 나에게 마스크를 챙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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