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행 SNS 핫플레이스 검증기
구기자의 #쿠스타그램 <해외편>
글 · 사진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블로그에 올리려고 사진을 이렇게 찍는 거야?” “아니, 혹시 기사로 쓸지도 몰라서.”
친구와 일정이 맞는다는 이유로 4월 말 휴가를 냈다. 3박 4일로 갈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다 항공권 가격이 적당하고 날이 적당하고 예산이 적당한 홍콩으로 정했다. 주변에서는 이 휴가 계획을 듣고 “5월 1일 근로자의 날까지 붙여서 휴가를 쓰면 유럽도 갔다 오겠다”며 아쉬워했지만 어쩌겠는가. 동행인이 주말 포함해 나흘밖에 휴가를 못 냈다는데.
과거 독일 여행을 갔을 때 7박 8일 동안 7개 도시를 찍은 적이 있다. 그때는 시차 적응에 실패해 일찍 일어난 게 아깝다며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나중에 독일에 다녀온 친구가 내 일정을 보고 “패키지 투어도 이렇게 강행군은 하지 않겠다”며 혀를 찼다. 그래서 이번에는 최대한 여유롭게 일정을 짜기로 했다. 마침 함께 가는 친구가 세상 느긋한 성격이기도 했고.
일단 인터넷 홍콩 여행 카페와 맘 카페, 홍콩 여행 유경험자의 조언을 들어 숙소를 셩완역 인근에 잡았다. 번화가인 주룽반도의 침사추이 근처보다 조용하면서도 저녁에 볼거리가 많고 이동이 용이하다고 들었기 때문. 홍콩을 자주 찾는 사람은 아예 홍콩섬만 둘러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정했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보기, ‘마약 쿠키’ 맛보기, ‘부바검프’의 새우 요리 먹기. 휴가차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편집장이 넌지시 혼잣말을 했다. “휴가를 홍콩으로 간다고…. 가서도 쿠스타그램 기삿거리 가져오는 건가.(웃음)” 여행지에서도 잊히지 않던 은근한 목소리. 그 때문이었을까. 회사의 사전 지원 ‘1도’ 없이 사비를 털어 돌고 온 홍콩 핫플레이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맛집 순례기를 쓰고 있다. 하루 예산은 2인에 10만~15만 원 선으로 잡았다(이렇게 쓰면 혹시 출장비라도 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를 정도로 안전한 곳이야! 여행 잘 다녀와!’
태어나 처음 홍콩으로 혼자 여행을 간다고 걱정하는 한 누리꾼의 글에 다른 누리꾼이 쓴 댓글이다. 홍콩은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직장인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주말을 끼고 휴가를 하루 이틀만 쓰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4시간 정도면 홍콩 땅을 밟을 수 있다. 가이드북을 보거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두 편 본다고 치면 비행시간도 적당하다. 치안도 나쁘지 않아 혼자 여행을 해도 무리가 없다.
인터넷은 한국에서 사들고 간 홍콩 유심을 이용해 썼다. 홍콩에서 나흘간 1GB씩 데이터를 쓰는 유심의 가격은 택배비를 포함해 1만 원 선이다. 50MB 넘는 게임을 내려받고, 고화질 사진을 전송하고, 유튜브로 영상을 봐도 데이터가 남아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단, 기존 유심을 빼고 대신 끼우는 것이니 원래 쓰던 전화번호로 문자메시지나 통화할 일이 있다면 여분의 기기를 챙기는 게 좋다. 태블릿PC나 노트북컴퓨터까지 챙겼다면 와이파이(Wi-Fi) 에그가 더 나은 선택. 홍콩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많아 길눈이 밝으면 오프라인 지도를 보고, 가능한 장소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하면 관련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홍콩국제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빠르고 비싼 순으로 나열하면 택시, AEL(공항고속철도), 버스, 지하철 순이다. AEL은 홍콩 티머니, 캐시비 같은 ‘옥토퍼스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사용법은 티머니와 유사하다. 보증금을 내고 카드를 발급 받아 충전한 후 체크카드처럼 지하철, 버스, 택시, 트램 등 교통수단과 편의점에서 사용하면 된다. 충전 단위는 50홍콩달러, 100홍콩달러. 남은 돈과 보증금은 카드를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
2명 이상이 AEL을 탈 생각이라면 각각 옥토퍼스 카드를 쓰기보다 AEL 다인권을 사는 것이 저렴하다. 공항에서 홍콩역으로 갈 때는 옥토퍼스 카드로 2명이 총 220홍콩달러를 냈지만, 돌아올 때는 2인권을 170홍콩달러에 산 덕에 50홍콩달러(약 7000원)를 절약할 수 있었다. 1홍콩달러는 140원 정도다. 진작 알았다면 그 돈으로 딤섬 한 접시라도 더 먹었을 텐데.
홍콩역에서 내려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일단 야경도 식후경이다. 기내식만으로는 성난 위장을 잠재울 수 없었다. 숙소에 짐을 던져놓자마자 구글 맵스로 주변을 검색했다. 마침 800m 안에 구글맵스 이용자 별점 5점 만점에 4점이 넘는 식당 ‘딤섬스퀘어’가 있었다. 100명 이상이 리뷰를 남겼는데 4점 이상이면 실패 확률이 낮다. 당장 나가서 걷기 시작했다. 원래 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식사시간대를 넘겨서 가니 10여 분 만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딤섬 가격은 한 접시에 17~37홍콩달러로 저렴한 편이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후기에서 이구동성으로 ‘비추’(비추천)라고 한 메뉴는 빼고, 추천 메뉴 위주로 주문했다.
오기 전 홍콩에서는 서비스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주인부터 아르바이트생까지 접시와 컵, 영수증, 잔돈을 던지듯이 줬다. 처음에는 동양인 관광객에게만 그렇게 하나 싶었는데 만민평등하게 접시를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는 걸 보고 마음을 비웠다. 주문한 메뉴는 소가 너무 달아 금방 물려버린 번만 빼고 전부 성공이었다. 특히 새우가 들어간 딤섬과 쇼마이가 맛있었다. 샤오롱바오는 육즙이 부족했지만 이 가격대라면 용서할 만했다. 찻값으로 인당 6홍콩달러가 추가로 붙었다. 누군가 후기에 ‘여기서 인당 100홍콩달러 정도 쓰면 적당하다. 돼지라면 150홍콩달러 정도를 생각하라’고 적어놨는데, 우리 테이블은 인당 130홍콩달러가 나왔다. 휴, 아슬아슬하군.
다음 행선지는 ‘후식’ 핫플레이스. 마침 홍콩 전체 카페 가운데 별점이 가장 높은 커피숍이 지척에 있었다.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 ‘커핑룸’이 바로 그곳. 오후 5시 문을 닫는데 4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니 자리가 여유로웠다. 브런치 메뉴는 동이 나 플랫화이트(40홍콩달러)와 카페라테(40홍콩달러)를 주문했다. 부드러운 향과 맛이 일품이었다. 에스프레소는 30홍콩달러, 필터 커피는 60~90홍콩달러였다.
이후에는 카페 거리를 구경했다. 셩완 골목골목에 특색 있는 카페가 많아 꼭 서울 연남동 뒷골목이나 경리단길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세탁소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거나, 댄스 스튜디오와 카페를 한자리에서 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그 시간’이 왔다. 바로 ‘술 타임’. 홍콩에서 인기 있는 술을 맛보기로 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관광객이 많이 사는 술은 ‘블루걸’과 ‘잭콕’. 블루걸은 한 캔에 15.5홍콩달러, 잭콕은 25홍콩달러였다. 딱 하나씩만 사서 맛보려는데 친구가 “어차피 2+1이면 다 먹고 갈 수 있잖아”라고 했다. 결국 블루걸 3캔을 사서 마지막 날까지 알뜰하게 다 마셨다. 무난한 필스너 맛이었다. 블루걸은 특히 한국 오비맥주에서 만드는 맥주인데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 독특했다. 잭콕은 잭다니엘에 콜라를 섞은 제품으로 국내에서도 판 적이 있다고 한다. 내 입에는 너무 달아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이날 야경 명소라는 빅토리아 피크에 갈 예정이었는데, 안개가 짙어 다음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냥 숙소에 들어가긴 아까워 근처에 있는 ‘제니쿠키’ 판매점을 찾아갔다. 쿠키를 사려면 2시간가량 줄을 서야 한다고 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의외로 사람이 적었다. 셩완점이 침사추이점과 코즈웨이베이점보다 덜 붐빈다고 했다. 양옆으로 ‘짝퉁’ 제니쿠키를 파는 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가짜에 속지 말라’는 블로그 정보를 토대로 ‘정품’을 파는 곳에서 4가지 맛이 들어 있는 버터 쿠키 틴케이스를 75홍콩달러(320g)에 샀다. 640g의 가격은 140홍콩달러. 곰돌이가 그려진 귀여운 틴케이스가 인상적이었다.
숙소에 가져와 두근대는 마음으로 케이스를 열었다. 맛있으면 돌아가는 날 잔뜩 사갈 생각으로. 그런데 이럴 수가. ‘마약 쿠키’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만약 마약이 이런 맛이라면 결코 중독될 일은 없으리라. 많이 느끼한 버터링 맛이었다. 두어 개 집어 먹고는 충격을 받아 맥주만 들이켰다. 친구가 “거 봐, 생각보다 별로랬지”라고 했다. 도착한 첫날 별점 4점 이상 맛집 두 곳을 간 데다 ‘마약 쿠키’ 맛까지 보니 홍콩을 다 둘러본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이날은 숙소에서 야경을 봤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되는 오후 8시에 맞춰 방 불을 끄고 창가에 앉았는데, 심포니는커녕 라이트도 잘 보이지 않았다. ‘100만 불짜리 홍콩 야경도 옛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예전에 봤을 때보다 화려함이 덜한 것 같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심포니오브라이트’라고 검색하자 ‘이게 다야? 실망’ ‘너무 기대했나’ ‘막 기다려서 볼 건 아닌 듯’과 같은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그동안 본 사진은 전부 포토샵 보정빨이었던 걸까. 숙소 인근 웨스턴마켓을 둘러보고 야식거리를 사왔다. 다음 날은 안개가 좀 걷혀 100만 달러는 아니더라도 50만 달러의 야경이라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우리로 치면 ‘김밥천국’ 같은 홍콩 ‘차찬텡’ 체인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차찬텡은 현지인이 즐겨 먹는 콘지와 토스트 외에도 밀크티에서부터 커피까지 다양한 음식을 파는 홍콩 특유의 식당이다. 곳곳에 늦게까지 문을 여는 차찬텡이 많아 야식의 유혹이 계속됐다. 이날은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 쪽으로 가서 놀기로 했다. 주룽반도에 있는 침사추이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 명동 같은 곳이다.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도 많고 맛집도 즐비해 정신없는 곳.
셩완에서 침사추이까지 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페리나 지하철이나 가격이 2~3홍콩달러로 비슷해 기왕이면 배를 타보기로 했다. 셩완에서 침사추이까지 가는 페리는 7번 선착장에서 탈 수 있다. 운임비는 평일 어른은 2.2홍콩달러, 주말 어른은 3.1홍콩달러다. 5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유람선 타는 기분을 누릴 수 있으니 어찌 안 탈쏘냐. 페리도 옥토퍼스 카드로 결제할 수 있어 편했다. 홍콩 대중교통은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기 때문에 옥토퍼스 카드가 유용하다.
페리에서 내려 조금 걷자 랜드마크인 시계탑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 몰라보려야 몰라볼 수 없는 장소였다. 좀 더 걸어가니 스타의 거리가 나왔는데,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었다. 그 대신 리샤오룽 조각상과 청룽의 손바닥 등이 있는 스타의 정원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잔뜩 찍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습도가 꽤 높아 더웠다. 에어컨이 있는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홍콩은 강한 실내 냉방으로 건물 안과 밖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얇은 카디건이나 바람막이를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시원한 곳을 찾으며 걷다 가까운 곳에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한 ‘청킹맨션’이 있다고 해 들르기로 했다. 영화 때문에 알려지긴 했지만 볼거리는 없다는 말 그대로였다. 1층은 인도인들로 북적댔고 금성무(가네시로 다케시)와 량차오웨이, 린칭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관광객은 대부분 맨션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고 떠날 뿐이었다. 인근에 주룽공원이 있어 쉬어갈 수도 있었지만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어제 제대로 먹지 못한 샤오롱바오의 육즙을 ‘딘타이펑’에서 탐닉하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딘타이펑은 한국인이 워낙 많이 찾다 보니 한국어 메뉴판이 따로 있었다. 샤오롱바오의 가격은 6개에 60홍콩달러, 새우 돼지고기 군만두는 6개에 82홍콩달러였다. 식사를 마치고 명품거리를 구경하다 버터 토스트와 밀크티 맛집인 ‘란퐁유엔’이 청킹맨션 지하에 있다고 해 다시 청킹맨션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저우룬파의 단골집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블TV방송 tvN 예능프로그램 ‘짠내투어’ 홍콩편에도 나왔다. 딤섬을 먹은 지 30분도 되지 않았지만 1인 1토스트 ‘석션’이 가능한 위장의 잠재력에 스스로 놀랐다. 합석이 기본이고 미니멈 차지가 있는 데다 서비스 역시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운 좋게 2인석에 앉은 덕에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다. 버터 토스트의 달콤하고 짭짤한 맛은 귀국해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밀크티는 너무 달지 않고 홍차향이 진해 좋았다. 버터 토스트 가격은 25홍콩달러, 밀크티는 23홍콩달러.
소화를 시킬 겸 조금 걷다 선착장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각 잡고 보기 위함이었다. 오후 8시 시작이었지만 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6시 반부터 선착장 주변이 북적였다. 한 시간가량 기다리자 쇼가 시작했다. 멀리서 보지 못했던 초록 레이저 불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100만 달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눈에 담을 가치가 있었다. 이후 페리를 타고 홍콩의 밤을 만끽하며 숙소로 돌아와 눈을 붙였다.
일어나자마자 ‘상기콘지’로 향했다. 식사를 대부분 집 밖에서 해결하는 홍콩 사람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다는 콘지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쇠고기 콘지는 작은 사이즈가 32홍콩달러, 콤보 사이즈는 54홍콩달러였다. 미음에 쇠고기 건더기 몇 개 들어간 정도인데 간이 적당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덕분에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셩완 카페 거리에서 인기 있는 모던한 인테리어의 카페 ‘코코에스프레소’에서 피콜로라테(34홍콩달러)를 마셨다.
이날 디즈니랜드 중에서도 홍콩에 처음 들어선 마블 어트랙션 ‘아이언맨 익스피리언스’를 체험해볼 계획이었으나 여행 당시 ‘신데렐라의 성’이 공사 중이라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 대신 근처에 드러그스토어 ‘매닝스’가 있어 이곳에서 홍콩 기념품 가운데 하나인 ‘백화유’를 샀다. 백화유는 호랑이 연고의 액상 버전이라고 보면 되는 멘톨 오일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됐지만 가격이 50% 비싸다. 이곳에서는 백화유 2.5㎖를 16.3홍콩달러, 20㎖를 57.1홍콩달러에 팔았다. 5월 중 홍콩국제공항에도 매닝스가 입점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로 알려진 소호거리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보기로 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주인공이 매일같이 타던 바로 그 에스컬레이터다. 세계 최장 에스컬레이터라 해 한번에 쭉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에스컬레이터 여러 개가 이어진 구조였다. 중간에 타고 가다 마음에 드는 카페 또는 펍이 있으면 내려서 구경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한번 왔으니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긴 에스컬레이터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올라갈수록 고급 주택가가 나타났다. 제일 끝에는 고급 맨션과 빌라가 있었다. 살짝 허무했다.
이곳에서 도보로 20분을 가면 트램을 탈 수 있다. 기왕 여기까지 올라온 거, 어제 먹은 음식들을 소화시키고 죄책감도 덜 겸 좀 걷기로 했다. 걷다 보니 ‘홍콩 동물원 앤드 식물원’이 나왔다. 상당한 규모였는데 무료 개방하고 있어 아이와 나들이를 나온 현지인이 많이 보였다. 늘어져 있는 나무늘보와 신나게 뛰어노는 원숭이 떼를 구경하고 다시 이동했다. 트램 타는 곳까지 족히 30분은 걸은 것 같다. 도보 20분은 체력이 좋거나 다리가 긴 사람 기준이 아닐까 싶었다.
국내에서 패스트 트랙 티켓을 사서 가도 줄을 서야 한다는 트램을 예매도 없이 무작정 타러 갔으니 기다림은 예고돼 있었다. 표를 사는 줄과 트램을 타는 줄이 따로 있었다. 정확히 1시간 40분 걸려 표를 샀다. 피크트램 스카이패스 가격은 어른이 왕복 99홍콩달러, 편도는 84홍콩달러였다. 어린이나 노인은 왕복 47홍콩달러, 편도 38홍콩달러.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 끝까지 기다렸다. 다시 홍콩 여행을 간다면 이걸 또 타지는 않을 것 같다. 15번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으니 말이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트램을 탄 시간은 5분 남짓밖에 안 됐다. 거의 45도 각도의 경사를 올라가는 느낌이라 놀랐다. 오른쪽 자리에 앉으니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그렇게 겨우 올라온 뒤에는 친구와 동시에 ‘부바검프’로 향했다. 부바검프에서도 트램처럼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부바검프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콘셉트의 레스토랑이다. 홍콩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좋은 것도 아니지만 풍경과 분위기 때문에 많이들 찾는다. 일정을 정해놨다면 온라인 예약을 추천한다. 안 그러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립스 콤보(278홍콩달러)와 그릴드 시푸드 트리오(188홍콩달러)를 시키고 코로나리타(139홍콩달러. 원래 110홍콩달러인데 추가금을 내면 기념으로 컵을 가져갈 수 있다)와 스트로베리 망고 칠러(85홍콩달러)를 주문했다. 음료보다 새우와 고기가 맛있어 계속 먹었다. 마치 트램에서 오랜 기다림을 먹부림으로 보상받으려는 것처럼. 붐비는 시간대에는 90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사진을 찍을 만큼 찍고 식당 기념품숍까지 구경한 뒤 야외 ‘스카이테라스’로 향했다.
스카이테라스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려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흡사 출퇴근길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같았다. 구글 맵스에서 검색하니 이곳 외에도 야경을 보기 좋은 장소가 몇 군데 나왔지만 초행길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경은 무척 예뻤다. 다만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역시 멀리선 잘 보이지 않았다. 내려와서 홍콩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와플을 사 먹었다. 문제는 내려가는 일이었다. 택시는 부르는 게 값이고, 버스와 트램은 줄이 너무 길었다. 고민 끝에 우리의 선택은 우버. 택시기사가 부르던 가격의 반값으로 10여 분 만에 차를 잡아 숙소까지 안전하게 귀가했다. 그렇게 홍콩에서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셩완에 있는 ‘why50’ 브런치 카페에서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간 브런치(60홍콩달러)와 더티커피(40홍콩달러), 라벤더라테(45홍콩달러) 등을 주문해 먹었다.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더 많은 카페였다. 근처 쇼핑몰을 구경하다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던 ‘얌차’라는 곳을 발견하고 홀린 듯 들어갔다. “우리 브런치 먹은 지 1시간도 안 된 거 알지”라는 친구의 말을 “브런치 배랑 딤섬 배는 따로야”라며 잘라버렸다. 얌차는 차를 마시며 딤섬을 즐길 수 있는 식당. 돼지 모양 딤섬과 노란색의 핫 커스터드 딤섬이 유명하다. 귀여워서 먹기 아까운 딤섬이었다. 사진을 잔뜩 찍고 입에 넣었다. 노란색 딤섬은 커스터드 크림 덕에 델리만주 맛이 났고, 돼지 딤섬은 야채호빵 같은 맛이었다. 도전적인 모양과 달리 맛은 실험적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 호텔 셔틀버스와 AEL을 타고 공항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제니쿠키를 제외한 홍콩 기념품 대부분을 공항에서도 팔고 있어 초반부터 캐리어를 무겁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니쿠키 못지않은 인기 매장인 ‘기화병가’에서 판다와 펭귄 모양 과자가 담긴 틴케이스를 각각 85홍콩달러에 샀다. 비슷한 듯하지만 맛과 식감이 퍽 다르니, 처음부터 잔뜩 사지 말고 꼭 시식해보거나 소량 구매해 먹어보고 사길 권한다. 공항에서도 밀크티와 콘지 등을 파니 시내에서 미처 다 맛보지 못했다면 이륙 시간을 기다리며 먹어도 좋다.
그렇게 ‘짠내투어’를 결심하며 떠났던 여행에서 우리는 ‘맛있는 녀석들’을 찍고 돌아왔다. 정산은 다 하지 못했다. 무서워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유심을 바꿔 끼우자 현지에서 쓴 카드 명세가 띠링띠링 소리를 내며 문자메시지로 날아왔다. 월급날까지는 아직 27일이나 남았다. 한껏 차오른 홍콩 에너지로 다음 여행, 아니 일단 다음 월급날까지 버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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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핫플레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와글와글한 명소가 궁금한가요? 검증되지 않았는데 생돈 주고 ‘도전’하는 건 조심스럽다고요? 걱정 마세요. 구희언 기자의 ‘#쿠스타그램’이 대신 찾아가 속속들이 살펴보고 알려드립니다. 가볼까 말까 고민되면 쿠스타그램을 보고 결정하세요. 인스타그램에서도 #매거진동아 #쿠스타그램 등으로 검색하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원문 읽기: http://weekly.donga.com/Main/3/all/11/1307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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