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눈좌, 꼬북좌, 메보좌, 단발좌 “이번 역은 역주행, 역주행역입니다”
“브레이브 사운드~.”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에는 귀신같이 이 시그니처 사운드가 들어갔다. 가수 손담비와 보이그룹 빅뱅,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주옥같은 명곡을 만든 이는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본명 강동철·이하 용형)다.
용형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YG엔터테인먼트에서 중독성 강한 용형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었고, 2008년 연예 기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걸그룹 ‘브레이브걸스’(BraveGirls·이하 브걸)는 그의 소속사에서 2011년 데뷔했다.
2017년 브걸이 발표한 댄스곡 ‘롤린(Rollin’)’이 최근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절대 ‘음원 강자’ 아이유(본명 이지은)의 신곡을 꺾고 말이다. 아이돌 노래가 ‘팬덤빨’로 1위를 한 게 뭔 뉴스감인가 싶겠지만, 화제가 된 이유는 ‘롤린’이 무려 4년 전 나왔다 ‘묻힌’ 곡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동영상 노출 알고리즘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때문에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는 것이 곧 ‘로또 당첨’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유튜브 이용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알고리즘 비공개 정책을 고수하는 유튜브가 채널 ‘비디터’(교차 편집한 무대 영상에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함께 보여주는 댓글 모음 채널)가 올린 브걸의 ‘롤린’ 무대와 재미있는 댓글 모음 영상을 ‘알고리즘 수혜 영상’으로 ‘간택’하며 조회수도, 인기도 그야말로 날아올랐다.
실제로 기자 역시 단 한 차례도 관련 영상이나 연관 키워드를 찾은 적 없으나, 회사 유튜브를 관리하던 중 피드에서 ‘롤린’ 영상을 발견했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꼬부기’를 닮은 여가수의 미소와 ‘전쟁 때 이거 틀어주면 전쟁 이김’이라는 댓글에 “대체 ‘롤린’이 뭔데?” 싶어 눌렀는데, 지금은 1일 10롤린을 기본으로 하는 흔한 피어리스(브걸 팬던명)가 돼 ‘롤며들어’버렸다.
비디터 채널의 ‘롤린’ 무대 영상 1, 2는 3월 10일 현재 각각 조회수 698만, 283만 회를 기록했다. 노래 한 곡만 가지고 1000만 클릭 이상을 이끌어낸 것이다. 각종 미디어가 브걸을 재조명하는 것은 물론, EXID 멤버 하니의 팬이 찍은 ‘직캠’ 영상이 역주행하며 ‘위아래’ 활동을 다시 할 수 있었던 EXID나 ‘깡’이 화제가 돼 다시 무대로 나온 가수 비(본명 정지훈)처럼 브걸도 무대에 서게 됐다. 이미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SBS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각종 음악 방송까지 섭외가 이어지고 있다. 작금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운동에 빗댄다면 브걸이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후보’인 셈이다.
브걸의 ‘롤린’ 역주행은 최근 학폭(학교폭력)과 그룹 내 왕따 문제로 시끄럽고 지저분해진 관련 업계에도 간만에 들려온 좋은 소식이다. “과거 학폭, 과거 왕따 등이 이제 밝혀져 나락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과거에 노력하고 과거에 좋았던 노래들로 다시 빛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역시 매사에 열심히 착하게 사는 게 맞는 거 같네”라는 한 누리꾼의 댓글은 너무 당연해 잊고 있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Interview
“‘롤린’이 걸그룹 이름이야?”
기자가 처음 알고리즘 신을 통해 브레이브걸스(브걸)의 ‘롤린(Rollin’)’을 접하고 상큼한 에너지가 마음에 들어 친구에게 공유한 뒤 받은 첫 질문이다. 친구는 “처음 보는 걸그룹인데 노래가 신나고 다들 무대에서 즐거워 보여 좋다”고 평했다. 브걸의 ‘롤린’이 화제가 되면서 숨은 명곡인 ‘운전만해’ ‘하이힐’ 등도 역주행 노선을 탔다. 영상에는 “18군번인데 16군번 화석들에게 인수인계받고, 전역 때 20군번들한테 인수인계해주고 나옴” “밀보드(군대+빌보드) 차트 1위” “누나들 덕에 군 생활 버텼어요” “남자들은 이 좋은 걸 혼자만 들었어?” 같은 댓글이 이어졌다.
데뷔 이래 가장 바쁘고, 그래서 신나는 나날을 보내는 브걸을 ‘롤린’ 대박 사건이 터진 직후인 3월 5일 오후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났다. 영상을 하도 돌려봐 멤버들을 보자마자 그들의 이름인 은지, 유정, 민영, 유나보다 먼저 왕눈좌, 꼬북좌, 메보좌, 단발좌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비밀이다. 멤버들의 활력 넘치는 인터뷰와 디테일한 내용을 영상으로 만나보자. 특별히 부탁해 오랫동안 브걸을 사랑해준 팬덤 ‘피어리스’와 지금의 입지를 만들어준 대한민국 국군 장병, 그리고 ‘주간동아’ 시청자를 위한 멘트도 받았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Q. 자기소개.
Q. ‘롤린(Rollin’)’ 음원 순위 ‘역주행’ 1위 소감.
Q. 가수만큼 팬들도 기뻐하던데, 기억에 남는 팬은?
Q. 멤버들이 생각하는 ‘롤린’ 인기 이유.
Q. ‘역주행’ 소식에 가장 신이 났던 멤버는?
Q. 해병대 ‘롤린’ 커버 영상이 화제였는데.
Q. ‘댓글’에 메인보컬이 케이팝(K-POP) 씹어먹겠다는 평이 많던데.
Q. 우리 노래 중 ‘롤린’ 말고 이 곡도 좋다?
Q. 개인 유튜브 활동도 하던데.
Q. ‘롤린’으로 무대 다시 서나?
Q. 활동 재개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Q. 연기·예능 출연 등 꼭 해보고 싶은 활동?
Q. 이참에 찍고 싶은 CF 어필 타임.
Q. 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섭외가 온다면?
Q. ‘롤린’ 재활동 시 달라지는 콘셉트?
Q. ‘롤린’ 한 소절 불러준다면?
Q. ‘롤린’ 포인트 안무.
Q. 팬들에게 한마디.
“솔직히 말하세요. 광고인지 아닌지.”
브레이브걸스(브걸)의 ‘롤린(Rollin’)’ 무대 영상 조회수가 지속해서 올라가자 일부에서는 ‘소속사 알바’의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다. 실제로 처음 ‘롤린’ 역주행 신화가 시작된 유튜브 채널 비디터(3월 10일 현재 구독자 10만여 명)에도 이런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려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정도 인기는 어지간한 바이럴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디터 운영자는 당시 “혹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봐 글을 쓴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은 올리기 전부터 팬들로부터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상 올리고 나서도 다른 영상과 달리 노출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브걸의 ‘롤린’을 발굴해낸 ‘유튜브계의 고고학자’ 채널 비디터의 운영자를 e메일 인터뷰했다.
비디터는 어떤 채널인가요.
“무대를 교차편집한 영상에 사람들이 남긴 댓글을 함께 보여주는 댓글 모음 채널입니다. 영상편집이 취미인 제가 혼자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을 만들었나요.
“댓글에 시청자들이 무대 추천을 많이 해주세요. 그러면 무대를 찾아보는데, 브걸의 ‘롤린’은 영상 길이도 적절하고, 노래도 정말 좋고, 재미있는 댓글도 많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만들었습니다.”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는데요.
“생각보다 반응이 무척 좋아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보통 올린 영상이 조회수 10만 회를 넘으려면 최소 하루는 걸리는데, ‘롤린’ 영상은 업로드하고 8시간 만에 10만 회를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은 비디터의 가장 인기 영상입니다. 영상 덕에 채널 구독자도 급격히 늘었죠.”
‘롤린’ 외에도 비디터에서 ‘공력’을 들여 만든 영상이 있다면.
“가장 공력을 들인 건 ‘하이라이트 –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입니다. 넣고 싶은 영상이 매우 많아 10시간 넘게 편집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힘들거나 재밌던 경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집하다 밤을 새우기도 하고, 끼니를 거르기도 하니 건강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편집한 영상에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구독자들 덕에 웃기도 하고 힘도 납니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다 우연히 제 영상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구독자의 말에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됐어요.”
영상을 편집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뭔가요.
“가장 신경 쓰는 건 댓글 선정입니다. 남을 비하, 비교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댓글은 배제하고, 되도록 재치 있거나 웃긴 댓글을 가져와 편집합니다. 최근 ‘롤린’을 편집하면서 본 댓글 중에는 ‘대북방송으로 이거 틀면 지뢰밭 뚫고 달려온다’가 정말 웃겼습니다.”
비디터도 브걸만큼이나 빵 떴는데 앞으로 채널 운영 계획이 궁금합니다. 브걸에게도 한마디 해주세요.
“지금처럼 들어와 보면 많이 웃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영상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브걸분들! 앞으로 많은 활동으로 바빠질 텐데, 식사 잘 챙기고 건강 돌보면서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수가 흥하니 팬도 흥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물 들어와 노 젓는 브레이브걸스(브걸)의 팬들이 모인 디시인사이드 ‘브레이브걸스 갤러리’가 화제다. 브걸은 ‘군통령’ ‘밀보드 1위’ 아이돌답게 멤버들보다 나이가 많은 예비역 ‘아재’ 팬 비율이 높은데, 이 때문에 다른 팬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세대 차이’ 자체가 웃긴 요소가 됐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에피소드 일부를 소개한다.
‘완장’ 차고 운영할 매니저 뽑아요
한 팬이 갤러리 운영 매니저를 뽑자는 말에 뜬금없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증을 올리며 ‘고학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에 팬들은 “매니저가 되려면 앨범 구매와 스트리밍 인증을 해야지 갑자기 학벌 인증은 뭐냐”는 반응을 보였다.
총대는 뭐고 총공은 또 뭐죠
‘총대’(행사나 공동구매 등 진행을 맡는 팬)를 뽑자는 말에는 “가수와 팬 사이 중간 다리 역할이면 브로커 같은 거네” “일 빠른 젊은 놈 치킨 사주고 데려와 쓰면 안 되냐”는 반응이 나왔다. ‘총공’(총공격)에 대해서는 “이런 건 사람 사서 못 쓰냐”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팬들은 “진하게 느껴지는 아재 냄새” “ㅋㅋㅋㅋ 총공도 외주 맡기냐” “덕질도 하청을 주넼ㅋㅋㅋㅋ” 같은 댓글을 달았다.
조공 말고 용돈 주면 안 되나
팬들이 스타에게 커피차를 선물하는 ‘커피차 조공’에 대해서는 “내가 출장뷔페 운영 중인데 거래처 때문에 몇 군데를 안다. 커피차는 업체 따로 쓰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조공 개념이 어려운데 그냥 멤버들 개인 계좌를 알려달라. 용돈을 주고 싶다”는 글도 보여 웃음을 줬다.
대포폰 사서 스밍하면 안 되겠지
음원 차트 순위 상승을 위해 팬들이 꾸준히 음원 ‘스밍’(스트리밍)을 하는 응원 문화와 관련해서는 “공기계 스밍하려면 대포폰을 따로 몇 개 사야 하냐. 살 수도 있고 방법도 아는데 불법은 좀 꺼려져 그런다”는 걱정스러운 질문 글이 올라와 화제였다. 팬들은 “대포폰 사는 방법을 왜 아는데ㅋㅋㅋㅋ” “브로커에, 대포폰에 어마어마하신 팬분들이넼ㅋㅋㅋ” 같은 반응을 보였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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