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인더스트리 4.0)의 원산지인 독일에서 로봇공학 연구 현장에 있으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그 진부한 주제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번 꺼내보자.
한국에서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고, 이런 기술이 몰고 올 미래 세상이 궁금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미래 세상은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다가왔다. 그리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수많은 얘기와 노력이 대선정국과 맞물려 구체 화화고 선별되었고,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과학기술 정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국가 연구과제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이 키워드로 제시되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과제들이 만들어지고 시작되었다고 한다.
또한, 새 정부는 앞으로 더욱 장기적인 안목으로 과학기술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하고, 또 누구는 인더스트리 4.0 대신 과학 4.0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자며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응용기술보다는 기초과학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럼 그들이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란 언제일까? 아마도 4차 산업혁명을 공부하고 이해하면서 그 시대가 언제 도래할지도 예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스케줄에 맞는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했을 것으로 믿는다.
3-5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과학기술 국가 연구과제는 그 이후에 쓸모 있는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할 것이고, 더욱 장기적인 기초과학 연구는 몇십 년을 내다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들은 최소 5년 이후에 또는 몇십 년 이후에 그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 현지에서 바라보는 인더스트리 4.0 시대는 벌써 도래했다. 그중 핵심이자 출발점인 스마트 팩토리는 현실화된 지 오래고, 벌써 경제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달 전, 인더스트리 4.0의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슈투트가르트 프라운호퍼 IPA 연구소에 방문했다. 새로 지은 큰 건물(아레나)에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산업용 로봇은 다 가져다가 각종 형태의 스마트 팩토리를 구현해놓고, 대기업 중소기업 대학 및 연구소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관련 스타트업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미 스타트업으로 나온 기술들 중심으로 소개했는데도 불구하고 깜짝 놀랄 기술들이 대부분이었다. 10년을 로봇기술을 연구하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기술들. 바로 지금 당장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들이었다. 이런 문제들은 현장을 모르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에게 공개한 완성된 기술들이 이 정도인데, 현재 연구 중인 기술들은 또 얼마나 더 있을까? 내가 참석한 모임은 중소기업과 함께 산업용 로봇 문제를 해결하는 유럽 로보틱스 챌린지 성과 발표 세미나였다. 나름대로 현재 솔루션이 없는 산업용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발표했는데, 스마트 팩토리 투어를 하고 난 이후의 소감은 한마디로 OTL. (난 그동안 연구실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같은 독일 내에서도 대학의 연구와 현장 연구는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었다. 즉, 다시 말하면 대학의 연구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현장 연구를 따라갈 수 없다. 물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주제를 할 때 말이다.
내가 독일에서 본 그리고 매일 보고 있는 인더스트리 4.0은 현실이고 실재이다. 단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미래 문제를 가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 안에서 눈앞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고, 벌써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미래는 어떤 것이고 언제일까?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과 사물들과 정보들이 초연결된 유토피아 같은 그런 세상? 인간의 수준을 넘는 각 분야에 전문화된 인공지능의 도움을 누구나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그런 슈퍼휴먼들이 사는 시대?
꿈을 꾸는 건 좋다. 아니 꿔야 한다. 그런데 그건 과학자들이 해야 되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국가가 나서서 그 꿈을 대신 꿔주겠다고 하면 큰일 난다. 그런 일은 과학자들이 국제무대에서 마음껏 꿈꾸라고 놔두고, 대신 국가는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현재 계획대로라도 5년 후에나 쓸모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을 개발해서 수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처음에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를 보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어설픈 꿈을 가까운 미래로 가져와 버리고, 과학기술 정책화해서 과학기술 연구자들을 올인시켜버리는 이 무모함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현장의 연구자들은 또 단기간 성과에 쫓기느라 무슨 꿈을 꿨는지도 잊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구멍이 뻥뻥 나 있는 현재 기술을 메꿀 시간도 없이 인공지능이란 새로운 물을 부어버린다. 거기에 만약 일자리 창출까지 하라고 하면, 뭐 사기 쳐서 돈만 버는 인공지능 시스템 비슷한 무언가가 단기간에 나오긴 하겠다.
또, 그 꾸다가만 꿈은 누가 꿀 수 있을까? 아마 초등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어떨지 상상해보세요.' 라며 억지로 꿈을 꾸라고 하며 코딩 교육이나 시키고 있겠지. 그런데, 그것 아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바로 지금이고, 과학자들은 그 이후 5, 6차 산업혁명 시대를 여는 것을 꿈꿔야 하며, 어린이들은 그냥 꿈속에 살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냉정히 현실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일자리 창출은 과학자나 대학 연구원들이 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하는 것이다. 혹시 스마트 팩토리가 생기면 일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하는가? 지금 이대로라면 곧 스마트 팩토리를 가진 중국 기업들에 밀려서 기업 자체가 없어진다. 국가가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때늦은 꿈속을 헤매면서 과학기술자들 괴롭힐 여유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