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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Nov 05. 2021

사람 이야기

자서전은 자랑?

어릴 때부터 동화책과 더불어 익숙한 책이 위인전입니다.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역시 사람으로부터 배울  많습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서양의 대표적 인물 평전입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제목은 <비오이 파랄렐로이 Bioi Paralleloi>로 비교 열전이라는 뜻인데 개인 전기 외에 유사성을 가진 영웅적 인물을 둘씩 짝지어 비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못지않게 인류 역사상 유명한 인물 전기는 <사기열전>인데 이는 사마천의 종합 역사서 <사기>의 일부분인 인물 평전입니다. 사기열전은 플루타르코스에 비해 더욱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역사적 영웅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지요. <사기열전>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보다 1세기 정도 먼저 나왔는데 그 둘은 동서양의 대표적 역사서로 2000년 이상 함께 빛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늘 역사서의 중심을 이룹니다. 유명 작가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 궁금하면 평전을 찾아 읽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자서전은 본인 스스로 쓰는 평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는 자서전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자서전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의 <고백록>니다. 고백록 혹은 참회록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아우구스투스, 톨스토이와  더불어 이 분야의 대표적 고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한동안 루소를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네바 시계공의 아들 루소는 귀족사회 가까이 살면서 하녀와 결혼해 아이 다섯을 낳았는데 아이들 모두를 고아원에 맡기는 등 그에 관한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작가 이전에 인간성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루소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칸트 덕분입니다. 칸트는 엄격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런 그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는 산책을 며칠 거른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루소의 <에밀>을 읽느라 그랬다는 겁니다. 칸트가 그렇게 몰두할만한 작품이라면 인간성을 떠나 읽어봐야지요. 칸트는 루소의 초상을 자기 방에 걸어둘 정도로 그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칸트를 생각하며 <에밀>을 먼저 읽어 보려고 했는데 <고백록>으로 시작한 것은 루소라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참회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도 있으나 책의 주요 내용이 참회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제목이 아니라고 봅니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기는 했지만 저자의 주관으로 쓴 책이고, 독자의 시각으로 볼 때 참회보다는 자기 합리화나 변명으로 보이는 부분도 많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가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 저작,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시간 순으로 직설적으로 적었습니다. 루소의 이 자서전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대개 자서전이란 좋은 얘기 위주로 쓰는 것인데 루소는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한 듯합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약점을 명확하게 기술합니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 말했듯이 인간 내면의 모든 것을 내보이려는 시도인가요. 자신의 성격적 결함, 인간관계의 오류, 여자들과의 연애 실패담, 친구가 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등, 보통 자서전이면 다루지 않을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오락가락하는 인간의 복잡한 심정을 순간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표현합니다.


루소는 프랑스혁명과 현대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고백록>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으로는 루소는 사상가라기보다는 문학가에 가깝고 인간관계에서는 자기 편한 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주변 인물들과 쉽게 친구가 되고 섭섭한 일이 있으면 금방 적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방에서 지독한 적들이 괴롭히고, 자신은 최악의 불행 속에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불행한 운명이라고 한탄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루소에 호의를 가지고 후원해준 귀족들도 많았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즐겼고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서 전원생활도 만끽했습니다.


루소는 적이란 말을 책의 초반에 여러 번 언급하는데 그게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습니다. 볼테르는 루소의 대표적인 친구이며 동시에 적이었습니다. 루소가 원고를 쓰면 볼테르는 읽고 조언을 해주며 더 나은 저서가 되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루소는 언제부터인가 볼테르가 정신적으로 자기보다 우위에 서는 태도를 보인다며 싫어하기 시작해서 아이 다섯을 고아원에 보낸 사실을 볼테르가 책에 써서 비난을 한 뒤로 적이 되었습니다. 루소는 사람들과 사귀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기면서도 시간이 지나며 그들과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귀찮아합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새로 사귄 친구에게 전부 소개하고 그들이 친해지도록 하는데 그 친구는 아무도 자기에게 소개도 안 하고 나중에는 자신을 빼고 그들끼리 어울린다고 섭섭해합니다. 그가 책에서 셰익스피어를 언급하는 걸 보면 그의 작품을 꽤 읽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깊이 있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불행이란 자기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운명 탓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루소가 고백록을 쓰기로 결심을 한 동기는 어렸을 때 마리용이라는 어린 하녀에게 자기가 한 절도죄를 뒤집어 씌워 쫓겨나게 만든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루소라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약해서 그런 실수를 했다고 합리화하며 그 사건에 대해 40년간 자신이 회한에 빠져있던 것으로 죄를 갚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식을 다섯이나 고아원에 보낸 사실에 대해서도 자신이 키우는 것보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합니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다른 시대에 비해 루소 당시에는 실제로 프랑스의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의 신세를 졌더군요. 루소는 그 일로 평생 후회하며 비탄에 잠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자기보다는 고아원이 아이들을 더 잘 키웠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루소는 어려서 시계공의 수습생이었습니다. 수습공 시절 속박이 싫어 독서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평생 환자였습니다. 66세까지 살면서 아프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가 독서와 사색만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다방면의 저작들을 썼다니 놀랍습니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은 <에밀>이었습니다. 그는 20년의 사색과 3년의 작업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루소는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법을 자습으로 익히고 <마을의 점쟁이>라는 오페라의 대본을 쓰고 작곡까지 했습니다. 이 작업은 5-6주가 걸렸다고 하는데 수입 면에서는 <에밀>과 맞먹었다고 합니다. 노력과 소득은 역시 별 상관이 없는 모양입니다. 루이 15세가 이 오페라를 특히 좋아해서 루소에게 평생 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말주변이 없는 자신이 왕을 알현하는 것이 불편했고, 뭔가 구속이 될 것 같은 연금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볼테르는 루소가 어리석은 오만을 부리고 있다고 엄청 비난했습니다. 루소는 글만큼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에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원했습니다. 루소는 인생의 후반기에 책의 인세가 어느 정도 들어오기까지 악보 필사를 주요 생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딱 한 번 귀족 신세를 져서 프랑스의 베네치아 주재 대사의 비서관을 잠시 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성격과 맞지 않는 걸 깨닫고 때려치웠습니다. 아마도 이때의 경험이 정치외교의 배경을 이해하는 공부가 되었나 봅니다.


루소의 <고백록>을 명작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그다지 논리적인 글도 아니고 감동적인 부분도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명작이라는 평이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루소 자신이 책의 서두에 한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루소는 고백의 서두에 자신의 모습을 자연 그대로, 진실된 모습 그대로 정확히 서술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착한 일과 악한 일을 똑같이 솔직하게 털어놓겠다고 합니다.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솔직 담백한 진술을 인간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그려지는 인간상은 이것이 유일할 것이라는 장담까지 합니다. 오락가락하며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보면 루소가 자서전을 쓴 방식이 인간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느끼기에도 이런 자서전을 또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런 포장을 하지 않은 루소라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소가 훌륭한 인간이든 위대한 사상가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자신이 평생 만났던 인물들 특히 여자들에 대해 생김새부터 성격, 장단점까지 시시콜콜 논하고 별 일 아닌 연애 사건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는 걸 읽고 있으면 이 책의 중반까지는 저자가 <사회계약론>이나 <에밀>을 쓴 루소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설명하는 그의 인물 묘사는 정말 탁월합니다. 한 여자와 평생을 살면서 나이가 50이 넘어서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고 마음이 설레는 장면을 그리는데 뭐 이런 걸 다 썼나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걸 일생의 기록에 쓸 수 있는 사람이 루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몽테뉴의 자서전(아마도 수상록)에 대해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척하면서 호감을 살 수 있는 결점만 나열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촌철살인의 논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쓰더라도 그렇게 하니까요. 사실 자서전을 잘 쓰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도 자서전은 본인의 업적이나 자랑 혹은 합리화가 주된 내용이 되기가 쉽습니다. 특히 정치가의 자서전이란 읽을 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루소의 자서전은 문장도 내용도 날 것 그대로인 느낌이 들어 독서가 때로는 유쾌하지 않지만 묵직한 여운이 남습니다. 인간과 세상,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던져줍니다.

   

자서전으로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이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가 쓴 <어제의 세계> Die Welt von Gestern입니다. 루소의 자서전과는 대조적인 면이 많고 훌륭한 자서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량이 많아져서 츠바이크는 다음 글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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