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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Aug 17. 2021

꼬리를 무는 독서

독서의 확장

읽고 나면 다음 읽을 책을 알려주는 책은 좋은 책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인데 특히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은 이런 점에서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분량도 많지만 소재가 무궁무진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저절로 꼬리를 무는 독서가 됩니다. 역사 자체가 장편 드라마 같아서 매력적인 인물과 흥미로운 사건의 인과관계 등 자꾸 궁금한 점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일본의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전국시대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수많은 사건의 전개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어서 술술 읽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이 일본의 패권을 놓고 싸우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일본판 삼국지의 느낌입니다. 조정래가 쓴 <태백산맥>의 두 배쯤 되는 양이지만 쉽게 쓴 대중소설이어서 분량의 압박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을 일본 최초로 통일한 영웅인데 일본의 현대화는 도쿠가와막부가 몰락하면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메이지 유신인데 유신의 주도세력에 많은 하급 무사들이 참여한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메이지유신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창립자 손정의 얘기를 보다가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책이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라는 걸 알고 저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TV 드라마의 대본 같은 느낌의 이 책은 10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본의 근대사와 역사를 바꾼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스토리의 전개가 재미있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는 낭인의 칼에 죽는 바람에 메이지 유신의 주축세력으로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사이고 다카모리나 다카스기 신사쿠 등 유신의 사무라이 출신 주축 세력에 큰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당시 서양의 증기선이 처음 닿았던 야마구치 지역이나 가고시마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번이 조슈 번과 사츠마 번인데 이 지역의 사무라이들은 그들이 흑선이라고 불렀던 증기선의 규모와 대포의 위력을 보고 자기들의 칼 가지고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습니다. 전투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무라이들은 힘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파악했고 싸우기보다는 그들의 무기와 문물을 배워야겠다고 자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카모토 료마가 앙숙이었던 두 사무라이 주력 집단을 단합시켜 동맹을 맺게 하고 현실 자각의 매개 역할을 합니다. 결국은 이들이 도쿠가와막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갑오개혁은 실패하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본의 경우 힘의 차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현실주의자들이 개혁을 주도했다는 점 아닐까요. 그에 비해 우리의 개혁파는 지식인의 약점, 즉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사무라이 집단에 의한 개혁에도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한론을 주장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의 원흉이 되었듯,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를 앞세우게 됩니다. 유신의 주축세력인 조슈 번은 일본 육군의 주축이 되고 사츠마 번은 해군의 주축이 되어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오늘날 일본의 정치 시스템이 선진국 치고는 후진적인 것이 아마도 사무라이 정신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한 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라는 마인드가 일본인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어서 권력에 복종하는 경향 말입니다. 일본에는 단 한 번의 시민 혁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다 보니 저절로 연결되는  책이 있었습니다. 니토베 이나조가 쓴 <무사도, 일본의 정신>입니다. 일본인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일본인의 혼, 소위 야마토 다마시(大和魂)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니토베 이나조는 미국 여자와 결혼해서 펜실베이니아에 거주 중 이 책을 영문판으로 먼저 냈다고 합니다. 1899년의 일입니다. 메이지 유신 후 청일전쟁에 승리하고 제국주의적 힘을 기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일본에서 이후 발간된 책은 이 영문판의 번역본이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일본인의 혼이라고 하며 미화한 내용입니다. 하라키리 혹은 셋부쿠라고 부르는 할복자살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미화 방식을 보면 아연할 정도입니다. 할복의 형식은 자살이지만 사실상 강요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니토베 이나조에 의하면 할복은 야만적인 살해가 아니라 고차원의 철학과 정신이 포함된 엄숙하고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설명하며 아주 자세하게 그 과정을 묘사합니다. 배를 자신의 칼로 가르는 장면이나, 죽어가는 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옆에서 무사가 목을 쳐주는 절차를 영화를 찍듯 끔찍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잘 나가던 시절 미국에서도 이 책은 베스트셀러였다고 하지요. 사무라이의 무사도에 뭔가 고차원적인 정신세계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이 책에 서양인의 호기심이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팀 별명을 ‘사무라이 블루’로 야구 대표팀을 ‘사무라이 재팬’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무라이 정신을 정신적인 불패를 의미하는 고차원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나 봅니다. 무사도 정신이 조금 더 나아가면 가미카제 특공대 같은 군사 작전까지 등장합니다. 어느 작전에서는 자살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온 조종사에게 할복을 명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런 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전체주의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대표하는 민족적 특성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일본처럼 스스로 내세우고 미화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선비정신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동시에 느껴지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사학자 한영우 교수가 쓴 책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문화>는 선비정신의 긍정적인 측면을 조망합니다. 조선 왕조는 500년 이상 장수를 누렸고, 근현대사의 많은 굴곡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간 내에 경제적으로 일어서고 민주화를 이룬 데는 선비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는 주장입니다. 한영우 교수는 선비정신을 서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퇴행했던 이유는 선비정신이 타락했기 때문이지 선비정신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현대화에 실패한 이유도 시대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지 선비정신이 열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품질 시대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선비정신입니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조선의 서적을 약탈해 갔던 프랑스군의 장교 앙리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에 적혀 있다는 조선 사람과 책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강화도는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인데 외규장각의 도서 규모와 가치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도 책 없는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소감을 적었던 겁니다. 종군 화가였던 쥐베르는 동방의 작은 나라에 책이 이렇게 흔하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고 합니다. 병인양요가 발생했던 1866년 당시만 해도 책에 관해서는 조선이 선진국이었다는 말입니다.  


일본 소설만 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완독 하지 못했던 우리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토지>에 재도전했습니다. 다시 한번 묵직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끼며 근현대사의 배경을 떠올렸습니다. <태백산맥>의 역사의식과 <토지>의 문학성은 압권이라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지만 분량의 압박이 커서 속도와 함께 사는 젊은이들 대부분은 버텨내지 못할 듯합니다. 저 자신도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서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정서적으로도 이런 묵직한 소설을 Z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도 읽어내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하고 기대합니다.  

      

그리고는 미국 현대사를 다룬 소설이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켄 폴릿 Ken Follet이 쓴 <20세기 삼부작>이 있더군요.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과 두 차례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권을 잡아가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대중소설이었습니다. 영국의 귀족과 노동자, 독일의 상류층, 러시아의 평민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현대 미국의 일부가 됩니다. 미국이 이민으로 부강하게 된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량은 한국이나 일본의 대하소설에 비하면 약소합니다. 스토리는 재미있었고 20세기 초 유럽의 사정과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과정을 단편적이지만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한미일 3국의 소설을 보먼저 드는 생각이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토지>나 <태백산맥>은 확실히 무겁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의 소설들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볍게 전개됩니다. 특히 일본 소설의 경우는 주요 인물을 미화하고 사건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민중의 애환이나 고통은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소설이 해답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느낌이라면, 우리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쪽의 소설은 빨리 읽을 수 있는데 우리의 소설은 빨리 읽기가 어렵습니다. 박경리나 조정래가 심각한 작가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에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점이 많아서라고 봅니다.

               

독서가 습관이 되면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이 아주 쉬워집니다. 궁금증이 자꾸 생겨서 저절로 꼬리를 무는 독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꼬리를 무는 독서가 독서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독서 방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 편한 방식으로 읽으면 되는 거지요. 보르헤스의 말 그대로입니다.     


“책이 지루하면 내려놓으세요. 그건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읽고 있는 책에 빠져든다면 계속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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