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많이 보는 친구에게 책 한 권 추천하라고 하니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말하더군요. 당장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습니다. 책이 얇아서 몇 시간이면 다 읽겠다고 생각했지요.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얇은 책입니다. 웬걸요. 정의, 공리, 증명 등 수학의 형식을 이용해 관념을 설명하는 것 같은데 몇 페이지 읽다가 처음으로, 다시 몇 페이지 읽다가 처음으로, 미로에서 헤매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좌절감이 반복되었습니다. 제1장은 ‘신에 대해서’, 제2장은 ‘정신에 대해서’라는 제목인데 어떤 문장을 읽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제가 철학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이유는 비트겐슈타인 때문이었습니다.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읽으려고 시도했었는데 이해의 난이도를 떠나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그 이후 철학 책을 한동안 멀리 했습니다. <에티카>도 이해하기는 마찬가지로 어려웠지만 몇 가지 강력한 메시지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았습니다. 재미보다는 지적 호기심이 생긴 것이지요. 스피노자를 이해하기 위한 꼬리물기 독서가 시작되었습니다.
펭귄 출판사에서 나온 영문판을 구입하고 도서관에 가서 <에티카를 읽는다>라는 스티븐 내들러가 쓴 해설서와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도서 검색을 하는 도중에 우연히 발견한 <스피노자 프로블럼>이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빌렸습니다. 그래서 4-5권의 책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은 이점이 많은데 특히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집중해서 탐구할 때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줍니다.
<스피노자 프로블럼>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어빈 얄롬 Irvin Yalom이 쓴 소설인데 스피노자의 생애를 흥미진진하게 그리면서 그의 철학을 일상적인 대화로 풀어냅니다. 나치 사상을 체계화했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Alfred Rosenberg가 스피노자와 함께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유태인이면서 유대교로부터 추방당하는 스피노자와 유대인을 말살하려 했던 나치의 반유대주의 사상가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각자의 얘기가 번갈아 진행되는 형식부터 흥미롭습니다. 스피노자의 신은 기독교나 유대교의 신과는 다릅니다. 그가 말하는 신은 자연이며 기독교나 유대교의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입니다. <에티카>의 제1장이 신에 대한 그의 해석입니다. 포르투갈 출신의 유태인으로 조금 더 자유로운 나라 네덜란드로 이주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해석은 유대교의 신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가지 안 되는 기록이나 근거만을 가지고 얄롬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스피노자의 일생을 재구성해냅니다. 그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하는 과정과 그 후 외톨이 철학자로 사는 과정은 너무나 생생해서 실제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이 책은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로도 재미있지만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와 <에티카>의 기본 개념을 쉽게 이해하는 단서로도 훌륭합니다. 게다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은 다른 인물들을 언급하는 내용들도 호기심을 불러서 추가적인 독서를 유발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종류의 재미가 무궁무진한데 관심 있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다양한 독서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본격적인 <에티카>의 해설서나 유명 철학자가 쓴 안내서보다도 저에게는 우연히 발견했던 소설 <스피노자 프로블럼>이 스피노자 철학을 이해하는데 더 즉각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적 용어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론 해설서가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때로는 철학 서적보다 문학이 철학을 더 잘 설명합니다.
언젠가는 스피노자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아이작 싱어 Issac Singer가 쓴 <장터의 스피노자>라는 단편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피셸손이라는 박사인데 스피노자를 연구하며 그의 철학대로 살려는 인물입니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셸손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30년째 연구 중인데 <에티카>의 해설서를 쓰는 것이 평생의 과업입니다. 그는 가상의 스피노자가 되어 살아가다가 어느 날 병이 드는데 돕베라는 이웃집 노처녀가 도와주어 회복됩니다. 피셸손은 자신을 돌봐주기 위해 드나들던 돕베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소설은 피셸손의 이런 독백으로 끝납니다.
“성스러운 스피노자여, 나를 용서하십시오. 나는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에티카>를 아주 어렵게 읽은 직후라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며 특별한 재미를 느꼈습니다. 30년 동안 <에티카>를 연구한 철학자에 대해 작가적 시점에서 이렇게 말하는 구절이 있는데 에티카를 읽어 본 독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수긍할 것입니다.
“사실은 피셸손 박사가 연구를 하면 할수록 문장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내용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신비한 구절은 더 많이 발견되었다.”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가 스피노자의 실천 불가능한 철학을 풍자한 것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 그만입니다.
저는 1-2주에 보통 5-6권의 책을 같이 읽는 편입니다. 특히 철학책이나 역사책의 경우에는 관련 서적을 한꺼번에 서로 참고하면서 보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은 독서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독서가 습관이 된 이후에는 가끔은 별로 관련이 없는 분야의 책도 교차해서 동시에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철학 관련 독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이후 니체와 쇼펜하우어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와의 관련성이 이들에게 어떻게 나타날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하나 먼저 말씀드린다면 저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에게서 재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자 계보가 궁금해져서 버트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를 읽게 되었습니다. 버트란트 러셀 또한 세기의 철학자인데 일반 독자를 위한 입문서를 썼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주류 철학자들의 사상을 아주 쉽게 설명해줍니다. 철학계 일부 거목들에 대해서 논리적, 인간적 약점까지 들춰내며 말입니다. 그 많은 철학 책을 대충이라도 전부 읽어보고 일반인의 언어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석학이라도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었을 텐데, 철학자가 이렇게 친절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