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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Jun 10. 2022

공부를 하는 이유

공부란

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공부의 전부는 아닙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공부를 한 것도 아닙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해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공부의 수준은 평범한 수준을 넘기 어렵습니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이란 평생 배우면서 살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공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국내외 유명 대학의 엠블럼을 보면 웨리타스 veritas라는 라틴어 단어가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진리’라는 뜻인데 대학이란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니까 적절한 단어 선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학문적 진리만이 공부의 대상은 아닙니다. 실제 직업과 관련해서는 전문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요리사라면 음식을 맛있게 하는 요리법뿐 아니라 영양이나 칼로리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차가 많은 알레르기 문제까지 알아야 합니다. 좋은 재료를 구하는 법, 보관 관리하는 법 등 배워야 할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직업을 예로 들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 높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사람마다 공부의 의미는 가지각색일 겁니다. 보다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은 전문직이 되기 위한 공부이든, 학문적 성취를 위한 공부이든,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에서든, 공통점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고귀한 개인적인 욕망은 없을 듯합니다. 좋은 스승이 있다면 공부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프랑스혁명과 현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는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루소는 정보가 풍부하지 않았던 시대에 독서와 사색만으로 <사회계약론>이나 <에밀> 같은 위대한 저작을 썼습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 덕분에 정보는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좋은 책도 많습니다. 잘못된 정보도 많고 별 도움이 안 되는 책도 많으니까 선별하는 지혜가 약간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서 어떤 공부이든 훨씬 편한 시대인 건 분명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공부의 수단은 책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유명 작가들 일부는 명문 대학 출신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말로우나 존 라일리 John Lyly 같은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작가들이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르지 못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줄까요. 똑똑한 작가들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비판적인 논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로버트 그린 Robert Greene이라는 당대의 극작가는 셰익스피어를 ‘벼락 출세한 까마귀’라고 칭했다지요. 셰익스피어의 성공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대학도 안 나온 주제에 셰익스피어가 연극계를 망치고 있다는 험담도 많았답니다. <사랑의 헛수고>에 나오는 다음 대사는 당시 대학을 나와서 잘난척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쓴 것 아닐까요?

    

“학문은 우리 인간을 섬기는 하인일 뿐이야.”  

   

셰익스피어가 학문을 폄하할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동시대의 명문 대학 출신 극작가들의 속물근성을 살짝 조롱한 느낌입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거나 셰익스피어는 한 발치 떨어져서 귀족과 평민의 경계에 서서 양쪽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스스로 공부하며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있었을 겁니다. 그가 항상 양면의 세상을 전부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 특이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가 명문 대학을 다닌 사람들 못지않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정치, 역사, 지리, 철학 등의 지식이 풍부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학문을 인간 위에 두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무식은 신의 저주이며 지식은 하늘에 이르는 날개이다."


공부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노력입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공부의 시작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격언은 현대인에게도 철학적일 뿐 아니라 실질적인 교훈입니다. 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알면 그다음은 실행하면 됩니다. 물론 목표를 실행하려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준비 없이 저절로 능력이 생기고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학문學問이란 배울 학에 물을 문이니 배우면서 묻는다는 뜻입니다. 공부의 의미와 서로 통하지요. 배우면 배울수록 궁금한 것이 늘어나고 자꾸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질문들에 대한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입니다. 인터넷을 보면 원하는 정보를 몇 분 안에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책을 봐야 할 이유가 적은가 봅니다. 공부에는 듣는 공부와 읽고 쓰는 공부가 있습니다. 두 가지 공부가 서로 보완 작용을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공부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공부가 수준에 오른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인터넷의 동영상은 짧은 요약 정보라 휘발성이 더욱 강합니다. 현대인들은 10분이 넘는 동영상은 싫어한다니까 속도의 시대인 것은 분명하지만 공부라는 관점에서 듣는 공부는 그 한계도 분명합니다. 읽고 써야 공부입니다. 운동이나 예술, 생활 분야라면 몸을 써야 공부입니다. 듣는 공부만으로는 체득하기 어렵습니다. 몸에 체화가 되려면 생각하고 소화시키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운동과 공부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좋다는 건 알지만 실천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되면 안 하기가 하기보다 어렵습니다. 특히 처음 배우는 운동은 기량이 쉽게 늘지 않고 몸은 힘들어서 조기에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몸에 좀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안 하면 이상해지는 단계가 오지요. 가장 지루하고 힘든 운동인 마라톤에 진심인 사람들이 제 주변에도 몇 사람 있습니다. 이분들은 1년에 풀코스 마라톤을 2차례 이상 뛰는 걸 목표로 하고 그에 맞춰 평소에 운동을 합니다. 풀코스를 준비하는 것은 사실 운동이라기보다는 훈련이라고 해야겠지만 당사자들은 즐겁기만 합니다. 안 뛰어 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10km씩 매일 뛰는 것보다 며칠 운동을 거르는 게 더 힘들다고 합니다.

     

생활 체육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 예를 들면 축구나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은 마라톤에 비해서는 일반인들이 재미를 느끼기에 훨씬 쉽지요. 공부는 쉽게 재미를 느끼기에 어렵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비슷합니다. 공부의 기본이 되는 독서는 습관이 되기 전까지가 어렵습니다. 사실 습관적으로 책을 읽어 독서력이 조금 쌓이게 되면 궁금한 것이 점점 많아져서 책을 안 읽기가 읽는 일보다 어려워집니다. 재미있는 일을 안 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는 공자의 말씀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것은 바로 공부를 뜻합니다. 공부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네요. 공부는 즐겁지 아니한가의 싱거운 뜻이니 학창 시절에 처음 보았을 때는 옛 성현의 좋은 말씀이구나 정도의 별 감흥이 없는 말이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감동적인 말로 다가옵니다. 독서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뿐 아니라 대화의 폭을 넓혀주고 발전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치 얘기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사람이나 자기 자랑, 남에 대한 비방,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본 특이한 소문을 주로 얘기하는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 사람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사람들과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책을 읽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겠지요. 내가 책을 읽으면 책 읽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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