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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길이 아닌, 나의 선율로 나아갔지요-비제. 2

위대한 열등감은 언제나 결핍에서 태어난다.

by 지나김

" 이 글은 <<위대한 열등감>>을 주제로 진행 중인 작가의 인문 교양 시리즈 일부입니다."


<<위대한 열등감>> - 지나김 예술감독

비제-"그들의 길이 아닌, 나의 선유로 나아갔지요"

조르주 비제, 금기를 넘어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한 젊은 천재


in His grace


내가 누군지보다, 뭘 해냈는지가 더 중요했죠

로마 상을 받은 뒤, 비제는 로마의 빌라 메디치에서 유학하며 해마다 칸타타와 대형 작품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건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매년,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여전히 ‘천재’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공식 같은 지루한 반복이었습니다.

비제가 Prix de Rome(로마상) 수상자로서 로마 아카데미에 파견되는 동안 “매년 심사위원들에게 작품 제출(envoi)”이 요구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envoi(제출 과제)로 원칙상 “미사(mass)”를 제출해야 했지요. 하지만 실상 그는 미사 대신 《돈 프로코피오》 같은 희극적 오페라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제출한 Te Deum(종교곡)가 심사위원들의 인상을 사로잡지 못하면서 그는 더 이상 종교음악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젊은 비제는 이탈리아의 찬란한 음악적 전통과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 사이에서 길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선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자신의 감성과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초기 오페라 《돈 프로코피오》에서는, 당대 유행하던 이탈리아 희극 오페라 형식을 능숙하게 차용했지만, 후대 비평가들은 여전히 “비제만의 목소리를 모색하는 단계였다”정도로 평가하곤 했지요.

특정 형식과 종교적 형식을 요구했던 음악계 안에서, 당시의 비제는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전 미친 사람처럼 오케스트레이션을 하고 있어요. 제가 다시 제 ‘필치’를 되찾았다는 걸 엄마께 알리게 되어 기뻐요… 다비드 선생님도 제가 구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걸 보고 무척 놀랐어요.
저도 무척 기뻤고요. 구노는 본래가 독창적인 작곡가라서, 선생님을 괜히 모방하다가는 영원히 학생 신세로 남게 되거든요.”

— 1859년 2월 19일, 로마에서 어머니 아델 비제에게 보낸 편지 중


실제 그의 어머니에게 전한 이 말은, 당시 첫 과제였던 《돈 프로코피오》를 준비하며 느낀 자부심이자 틀에 박힌 작곡법에 대한 해방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오래가지 못했지요.

그는 시대의 유행에서 빌려온 형식에 자신만의 색깔을 끼워 맞추기 위해 애를 썼으니까요. 남의 옷을 입은 채 자신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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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콘텐츠 크리에이터 지나김 예술감독입니다. 예술의땅étang 대표.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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