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바쁘시겠지…’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어느새 20분마다 휴대폰을 집어 들고 있는 나.
혹시 실수했나? 카톡 예절을 몰랐나?
아니다, 그냥 바쁘신 거다.
나, 원래 엄청 쿨한 사람이다. 쿨하게 기다린다. 쿨하게…(라고 자기암시 중)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야 돌연 도착한 짧은 답장.
“그래, 그러자.”
직장 생활 15년 차,
별별 성격의 사람들과 회의실에서 눈치 게임 레벨 만렙을 찍은 나였는데,
이 짧은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팀장에게 면담 요청이라니.
이쯤 되면, 주제가 뭔지는 다 안다.
‘퇴사’, 혹은 ‘휴직’.
입사 도장 쾅쾅 찍을 때보다 더 떨리는 레파토리.
팀장님 표정은 구름 한 점 없이 무거웠다.
아침 내내.
속으론 ‘이 녀석, 드디어…?’ 싶으셨을까.
아니면 그냥 오늘 커피를 못 드셔서 그랬던 걸까.
어쨌든, 침묵 끝에 팀장님이 커피를 내리며 내게 회의실로 오라고 하셨다.
회의실 문 앞.
머릿속이 순식간에 백지로 초기화.
‘여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다.’
(참고로 결심하고 말 꺼내는 데 3년이나 걸렸다. 그새 나는 명실상부 ‘밀크맨’- 우유부단하단 해서 붙인 별명 )
굳은 얼굴의 팀장님, “무슨 일이지?”
심호흡, 한 번.
(사실 몰래 세 번…)
“저… 육아휴직을 신청하려고요.”
팀장님은 예상 못 한 한 방에 손이 와르르 떨렸다.
뜨거운 커피 잔이 “톡!” 하고 쓰러져 탁자 위에 번졌다.
조용했던 회의실의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영혼을 담아 티슈로 커피를 닦았다.
‘차기 팀장 후보’라고 불리던 내가,
영업 실적 톱,
개념 없다는 MZ 후배들도 사르르 달래며 일 잘하는 선배로 인정받던 내가,
이 타이밍에 육아휴직이라니.
드라마도 이런 반전은 잘 안 쓴다.
팀장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말 동안 생각해보고, 월요일에 다시 이야기하자.”
이렇게 정리.
주말 내내,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진 한마디.
“정말 괜찮은 선택일까?”
그런데 한편으론
‘이게 내 마지막 인생 쿠폰일지도 모르지’
라는 쓸데없이 낭만적인 확신도 자라는 중.
아이는 곧 초등학교 2학년,
내가 쓸 수 있는 진짜 마지막 육아휴직.
이건 가을 야구 진출권 급이라는 걸
점점 깨닫게 됐다.
내가 원하는 건 사실 단순한 아이 돌봄이 아니었다.
20년 가까이 ‘어른’이라는 자격증 목에 걸고
회사‧가정 이중생활(!) 마스터로 바쁘게 살았지만,
가끔
등 돌린 내면 어딘가에서 ‘내 안의 어린 나’가 손 흔들던 기억.
이 휴직이 내 삶에 던진 큰 질문.
“나, 진짜로 뭐 하고 싶었더라?”
계획? 그런 거 없다.
욱여넣은 휴직 신청서 한 장,
“그저 좀 쉬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딱 하나뿐.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케이수환의 퇴사기도 비슷했다.
거창한 변화 없고,
일단 쉬고 나니 뭔가 찾아지더라는 그 느낌.
그냥,
‘때 되면 쉬고, 때 되면 뭔가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인생 프리 스타일.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건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이 앉아서
“아, 나 이런 거 좋아했었지!” 하고 다시 웃어보는 그런 하루.
아이는 내 옆에서 자라고,
나는 내 안에 있던 어린 나를
조금씩, 다시 키우는 중이다.
이 휴직 끝에,
조금 달라진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생각보다 멋진 풍경 속에 서 있기를!
[다음 편 예고]
육아휴직 선언 후, 가족과 동료들의 환장 리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