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육아휴직 버튼을 ‘꾹’ 누르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선언했다.
“나, 육아휴직… 썼다!”
아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표정이 너무 담담해서, 순간 내가 잘못 전달했나 싶었다.
잠시 후, 그녀의 짧은 대답.
“에이, 거짓말.”
…이럴 줄 알았다.
왜냐하면 지난 3년 동안, 매달 같은 시간대, 같은 대사.
“이번 달은 진짜 말할 거야. 봐, 내가 면담 신청했고…”
그리고 다음 달, 또 같은 장면.
그러니 아내 눈엔 이번에도 그냥 예고편쯤으로 보였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팀장님이 앞에서 커피까지 쏟은 이야기 까지 했다.
그러자 아내의 눈이 둥그레졌다.
“…진짜, 했어?”
응. 나도 믿기지 않아.
팀장이 처음 사준 커피, 그리고 불안한 예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팀장이 날 부르더니, 뜬금없이 카페로 데리고 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15년 직장 생활 내내, 그분이 커피를 사는 장면은 전설처럼만 들었는데
그 자리에 내가 호출된 것이다.
혹시 퇴사 권고? 아니면 “사실 나 은퇴한다, 이제 네 차례다” 같은 선언?
온갖 공포 시나리오가 뇌 속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처럼 펼쳐졌다.
그런데 자동 주문기 앞에서 팀장은 일격을 가했다.
“가장 비싼 거 골라.”
그 순간, 온몸의 세포가 긴장했다.
이건 왠지 ‘마지막 만찬’ 느낌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평생 습관은 어김없이 발현됐다.
“…저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됩니다.”
(내 인생의 한 줄 요약: ‘가장 비싼 건 못 고르고, 가장 무난한 것만 고른다’)
자리에 앉자, 드디어 날 선 질문이 날아왔다.
“주말 동안 생각은 해봤나?”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네. 이번에 육아휴직을 쓰겠습니다.”
짧은 정적.
이어서 터져 나온 말.
“그럼… 12월까진 좀 일해주는 게 어떻노?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니 자리를 신입한테 떠넘기긴 글코,
부사수는… 음, 그냥 잊어라.”
솔직히 흔들렸다.
팀장의 음성은 마치 “이 집 안국밥은 네가 아니면 못 끓인다” 같은 절박함이었다.
그리고 현실적 계산이 내 머리를 스쳤다.
“몇 달만 더 하면 월급이 늘어난다… 그 돈으로 여행이라도?”
게다가,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은 게 직장인의 본능 아닌가.
하지만 알았다.
이게 연장되면, 나는 또 1년, 아니 최소 6개월은 그대로 간다.
이미 3년을 미뤘던 내가 또 버틸 수 있을까?
아니다. 이번엔 아니다.
그래서 못을 박았다.
“약속한 4주 뒤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뒤돌아보니, 이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 탁월했는지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