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조선족은 한복 대신 치파오를 입어야 하나요?
20화. 조선족은 한복 대신 치파오를 입어야 하나요?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큰 나라다. 그중 한족인구가 약 91%를 차지하고 나머지 9%는 55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데 가장 큰 소수민족은 짱족(壮族)으로 약 2000만 명 인구에 광시자치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다음은 위구르족으로 약 1200만 명 인구에 신장자치구를, 회족이 1100만 명 인구에 닝샤자치구를, 티베트족이 약 700만 명 인구에 시장자치구를, 몽골족이 약 630만 명(몽골국 인구보다 1배 이상 많음) 인구에 내몽고자치구를 형성하고 있다. 자치구는 성(省)급 행정구역으로 광둥 성이나 흑룡강성과 레벨이 동등하다. 그리고 상하이시, 베이징시, 텐진시, 충칭시는 성(省)과 레벨이 동등한 직할시(한국의 광역시에 해당)이다.
조선족은 170만 명 인구로 소수민족가운데 15위를 차지하고 자치구보다는 행정레벨이 한 단계 낮은 연변자치주를 형성하고 있다. 20년이나 30년 전에는 중국 조선족 인구가 200만 명을 넘었는데 신생아 출생수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가 일부 교포들이 한국 국적 회복 혹은 귀화로 중국국적을 포기하다 보니 최근 30년간 인구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한중 수교와도 직결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후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신 중국 최초의 소수민족 자치구로 특별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러 원인으로 인해 자치구 설립 3년도 안되어 자치주로 레벨이 강등되었다. 그 원인에 대해 일반적인 해석은 인구수나 분포면적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다른 자치구들에 비해 규모가 많이 작아서 행정레벨이 강등되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조선반도와 연결되어 있는 연변자치구의 지리적 위치나 조선족들의 정치적 파워(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가 염려되어 일부러 자치주로 강등했다는 설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이나 그후에도 상당 기간동안 중국인들은 우리를 조선족이라 부르지 않았고 조선사람 혹은 고려인(高丽人)이라 불렀고 무시하는 뜻으로 꼬리빵즈라고도 불렀다. 마치 우리가 중국사람들을 "떼 놈"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그런데 연변대학을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떼놈떼놈하고 부르는 상대가 사실은 한족이 아니라 북방 오랑캐 었다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중국사람들을 통틀어 떼 놈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잘못된 호칭이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다 보니, 건국초기 관리상 편의 목적으로 신분증명이나 호적상에 민족을 따로 표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차원에서 얘기하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민족이 100여 개나 되는데도 소수민족 이런 식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무슨 종족이니 민족이니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왜 유독 중국에서만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중국정부나 한족들이 소수민족을 대놓고 차별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소수민족에게는 여러 가지 우대정책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한족들은 아이를 하나 밖에 낳을 수 없지만 소수민족은 둘 혹은 셋까지도 허용하고, 소수민족 학생은 대학입시에서 단지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10점 가산점을 더 받는다. 무슨 얘기냐면, 한족들이 수능에서 500점을 맞았으면 그건 그냥 500점이지만 소수민족 학생이 500점을 받았다면 실제 점수 490점에 소수민족 가산점 10점을 더한 점수라는 얘기다. 그것 때문에 일부 한족들은 의견이 많았다. 한족과 결혼한 우리 큰 이모네 작은 딸레미는 수능 1년 전에 신분을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변경했다. 소수민족 가산점을 받기 위해.
이런 의미에서 보면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산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한어(중국어)가 국가 공식언어인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한어가 서툴고 또 변방 지역이다 보니 교육환경이나 수준 또한 내륙이나 연해지역보다 훨씬 열악하다. 그러니 한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한족 집결지역의 학생들보다 소수민족 학생들은 성적이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 학생들과 똑같은 시험지로 수능을 보면 칭화대나 북경대, 푸단대, 인민대 같은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소수민족은 아마 눈 뜨고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모든 성(省)마다 수능 시험지가 다르고 대학교 입학 점수기준도 각이하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언어가 불리한 소수민족 학생에게는 10점이라는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대정책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들은 정치무대나 공공기관 시스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중국은 중앙정치무대 고위공직자들 중에서 소수민족의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같은 흑인 대통령도 나오고 영국에서는 인도계가 총리로 당선되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소수민족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큰 뜻 없이 평범하게 사는 데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건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한족들한테 무시를 당하거나 민족차별을 당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 한국사회교육방송국에 편지를 보내면서 주소에 "대한민국"이라 적은데 대해 한족직원이 "남조선"이라 써야 한다고 우긴 것도 조선족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는 이념적 차원에서 우방국인 북한보다 적대국인 "남조선"에 대한 "악의"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한족들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잘 알기에 소수민족들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조선족들이 한족을 무시하거나 깔보았고 심지어 "떼놈"이라고 욕까지 했다. 그리고 연변이나 흑룡강에 사는 한족들은 조선족들이 자기네를 무시하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치 지금 한국사람들이 중국사람을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20년 넘게 한국과 중국을 왕래하면서 중국동포들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감정 변천사를 몸소 경험하고 겪었다. 수교 초기에는 한국사람들은 중국동포들을 애국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으로 예우하거나 같은 민족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그때는 항상 중국동포 혹은 중국교포 이렇게 불러 주었고 어디를 가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불법으로 체류하거나 합법적으로 취업하는 조선족 동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많은 트러블이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엔 수십 년간 사회주의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평등주의에 세뇌된 교포들이 한국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이념적 충돌도 있었지만 일부 몰상식한 조선족 교포들이 한국에서 벌인 불법행위 심지어 한국사회를 놀라케 하는 무서운 살인사건 등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터지면서 한국사람들의 중국동포에 대한 선의와 동정이 점점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불신, 무시, 배척, 증오 등 감정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하나의 "트렌드"로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중수교 30년의 황금시기가 거둔 성과가 무색할 만큼, 중국의 부상과 함께 한중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드사태를 전환점으로 한중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으며 중국의 "동북공정" "한한령" 등에 분노한 한국사람들의 혐중정서로 조선족 동포들도 덩달아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가뜩이나 북한이라는 마냥 미워할 수도 품어 줄 수도 없는 커다란 이념적 숙제를 안고 사는 한국사람들은 식어진 한중관계에 더해서 최근 불거진 미중패권전쟁도 붙는 불에 키질하는 꼴이 되고 있다. 물론 깨어 있는 한국의 일부 중국전문가들이 한국정부에 중국과 더불어 사는 해결방안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지만,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린 양국 국민들의 정서는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 역사적인 앙금도 많고 이념차이, 문화차이, 사고방식의 차이도 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양국의 날로 치열해지는 산업경쟁이다. 이것만큼은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그야말로 미래 먹거리를 향한 목숨을 건 전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전쟁에서 한국은 계속 밀리고 있다는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한국전문가들이나 국민들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극소수 분야를 제외하고, 중국은 이미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턱 밑까지 좇아 왔거나 추월했고 이제 남은 반도체 산업마저 노리고 있는 형국이다.
10년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문화 한국상품이라면 끔뻑 죽는시늉까지 하던 중국사람들 특히 중국의 20대와 30대들은 이미 한국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핸드폰 등은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한국브랜드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다. "탈 중국"이니 "중국런"이니 하는 것도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한국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임에도 적지 않은 한국사람들은 단순히 중국정부나 기업들의 패악으로 인한 피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옛날처럼 중국기업들이 아직 "원시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라면 중국을 떠나서 동남아나 남미 같은 후진국으로 진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맞는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한국정부는 그걸 신남방정책이라고 한다) 경쟁력과 가성비를 모두 갖춘 중국기업들도 동남아나 남미 시장으로 함께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기업들은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 보니 중국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념이나 제도차이, 문화차이, 역사적 갈등 등을 핑계로 일부러 중국을 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 중국에 "동조"하는 조선족 동포들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것 같다.
암튼, 정치적 충돌이든 경제적 충돌이든 한중 양국의 밀월관계는 사드사태를 기점으로 파경을 맞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복구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대다수 조선족 동포들은 이미 스스로를 중국인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동질적 정체성을 부인하려고 한다.
내 아들의 경우만 놓고 봐도 그렇다. 그 녀석은 어려서부터 한족엄마인 내 아내로부터 한어와 한족들의 문화를 배웠고 초중고와 대학교도 모두 한족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내 성화에 못 이겨 중학교와 대학교 때 한국어 공부를 하는 시늉은 했지만 지금은 거의 까먹은 상태다. 그 녀석은 자기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지 오래고 거기에 대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 대해 아버지인 내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 원인도 크겠지만, 민족이나 정체성 대신 미국에 감히 대항하는 중국이라는 날로 부상하는 대국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 자존감 향상 이런 의식형태의 변화가 그 주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동포라는 단어 대신 "조선족"이라고 굳이 표현하는 한국 언론이나 일부 한국사람들의 중국동포에 대한 "악의적" 언행이나 태도 그리고 "조선족"을 피도 눈물도 없는 극악무도한 조폭이나 범죄자로 묘사하는 영화제작사에도 분노를 느낀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쁜 사람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법이다. 한국이라고 그런 사람이 없을까? 보편적으로 교육을 잘 받은 한국사람들에 비해 중국동포들이 문화 수준이 좀 떨어진다 해도 대부분 중국동포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량하고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분들이 있어서 한국은 젊은 이들이 기피하는 건설현장(막일)이나 식당 같은 노동현장이 아직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분들은 자신의 피땀을 흘려서 돈도 벌고 이 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한국정부나 한국기업들도 그분들이 필요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면서 중국동포들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지 공짜로 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런 조선족 동포들이 왜 한국사회의 편견과 무시 심지어 악의적인 인격비하 공격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때 일어난 해프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개막식에서 중국 55개 소수민족들이 입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조선족들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등장했다. 그때뿐만 아니라 중국의 모든 중요한 행사에도 조선족들은 한복차림을 하고 다른 소수민족들과 함께 등장하곤 했다. 그것은 하나의 "전통의례" 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조선족으로서의 자호감과 긍지를 느꼈다. 그런데 한국언론이나 유투버들이 그 장면을 두고 중국이 한국의 문화를 약탈한다고 대거 비난했었다. 그리고 많은 댓글러들이 조선족 동포들을 무차별 공격하고 나섰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어느 댓글에서 이렇게 질문한 적 있었다.
"중국동포들이 한복을 입고 입장하지 치파오를 입고 입장해야 하나요?"
그러자 "짱깨"니 "떼 놈"이니 "빨갱이"이니 "너희 나라로 꺼지라"니 별의별 욕설들이 다 달렸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댓글도 달았다. "조선족들이 입는 한복은 우리나라 한복과는 다르다. 너무 촌스러워 봐 줄 수가 없다."
내가 물었다. "그럼 100년 전이나 200년 전 조선사람들이 입었던 한복도 한복이 아니겠네요? 그땐 더 촌스러웠을 텐데..."
한국인들이 전통과 문화를 지키듯이 우리 중국동포들도 자기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고 애쓴다. 그 전통과 문화가 한국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부인하면 안 된다. 한족에 동화된 만주족이 자기 정체성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걸 우리는 똑똑히 봐 왔기에 한족들에 동화되는 건 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한국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자꾸 중국사람들 울타리로 밀어 넣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100여 년 전 조선왕조가 나라와 백성들을 굳건히 지켰다면, 우리 조상들이 만주땅이나 연해주로 살길 찾아 떠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역사적 정치적 원인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우리 잘못은 아니다. 중국에서 나고 자라 수십 년 중국식 교육을 받아 온 중국동포들이 한국보다는 중국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한국분들이 인터넷 댓글 같은데에서 중국동포들을 마치 악의 무리처럼 공격하고 있는데 나는 그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한테 당신은 어느 나라사람인지? 미국팀과 한국팀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느 나라를 응원하냐?"라고 물어볼 수 있는지.
그분들이 만약 "난 미국인이야. 당연히 미국팀을 응원하지"라고 대답하면 당신은 그분들을 비난할 텐가? 중국동포들한테 했던 것처럼?
물론, 중국동포들이 한국보다 중국을 지지한다는 건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섭섭하기도 하고 배신감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중국사람 취급한다고 해도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별다른 감흥이나 불만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을 중국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건 중국동포들만이 그런 게 아니다. 변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중국 소수민족들 예를 들면, 몽고족, 우즈베크족, 타지크족, 키르기스족 등 소수민족은 자기들을 당연시하게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독립이슈가 있는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 대다수 사람들도 자신들을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서방 매체만 보다 보니 마치 대다수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 몽고족들이 독립을 못해 환장한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한테는 독립이니 자유니 그런 것 보다 안정되고 안전한 사회질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내륙이나 한족 집결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에 대한 애국심이나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더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중국동포 3세나 4세들도 그들 중 하나다.
지난 30여 년간 나는 수없이 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났다. 고객사 사장이나 임원들도 있었고 사업파트너들도 있었고 그냥 술친구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대부분 한국사람들은 내가 중국교포인지 잘 몰랐다. 아마도 내 말투에 한국사람들이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들어 본 함경도 사투리가 섞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연변대 한국어과를 졸업했기에 나름 정확한 어휘나 문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고향 대오사구는 대부분 함경도 사람들이고 우리처럼 강원도나 전라도 쪽에서 이주한 동포들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함경도 사투리가 우리 동네 "공식 언어"였고, 물론 경기도 출신인 할머니와 충청도 출신인 외할머니한테서 함경도 사투리와는 많이 다른 말투를 배우긴 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함경도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가 한국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왕래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말을 더 많이 구사하게 되었고 지금은 함경도 사투리는 입에 잘 붙지도 않을 정도로 어색하다.
부산사람들도 "부러워한다"는 서울말을 나는 곧 잘 하지만 한국사람들을 처음 만나 인사할 때는 반드시 중국교포라고 먼저 밝힌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한국사람인줄 알았다고.
그때마다 나는 "한국사람 맞죠. 조상님들이 한국사람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해 준다. 그러면 어떤 한국사람들은 그렇죠, 중국동포도 한국사람이죠,라고 말하지만, 어떤 한국사람들은 그저 허허 웃고 넘긴다. 30년 전에는 내가 굳이 "나도 한국사람이다"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먼저 나를 한국사람으로 대해 주었다. 그때 그분들은 중국동포들은 독립유공자의 후손 혹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사람들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할 한국사람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는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을 관리하기 편하게 우리들한테 붙여준 딱지다. 중국사람이나 다른 소수민족은 우리를 조선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우린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게 맞으니까. 우리도 그들을 한족, 위구르족, 몽고족, 묘족 이렇게 부른다. 하지만 한국정부나 언론사,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싫든 간에 우리는 엄연히 한반도(조선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한 조선사람들의 후대이고, 나라가 강했더라면 아직도 이 나라에서 당신들과 함께 웃고 울고 살아왔을, 같은 핏줄의 혈육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영어를 모르는(조선족 학교는 무조건 일본어를 배워야 했다) 나는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영어로 대체 무엇이라 부르는지 궁금해서 구글에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KOREAN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희망한다. 당신들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르듯이, 미국이나 일본에 사는 교포들을 재미교포, 재일교포라고 부르듯이,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도 중국동포나 중국교포로 불러 주고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품어 주면 안 될까 하고. 그러면 한국사람들과 중국동포들 간 얼어버린 사이도 언젠가는 화해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