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맨 리뷰

이카루스의 날개가 아닌 자신만의 날개를 완성하다

by 세네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자신이 속한 특정한 집단 속에서 누군가와 어울리고 부딪히며 다양한 유형의 관계를 쌓고 그 속에서 질투, 열등감, 분노, 존경, 우월감 등을 비롯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그 중에서도 질투나 열등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흐름 속에 빠져있을 경우 영혼은 무너지고 자아는 기형적 왜곡 현상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나머지 자신을 학대하고 현재의 모습을 부정하며 자책한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확신하지 못하며, 언제나 사회적 관습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누군가 나의 외모에 대해 칭찬을 하거나 특정한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면 자신을 그러한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다른 이가 당신의 외모를 폄하하거나 특정한 분야에 있어 당신을 깎아내린다면 취약한 자아는 본래 자신의 모습과 이 부정적 평가를 대조하기 시작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나는 쓸모없고 나약한 투정쟁이일 뿐인가? 영화의 주인공 리건은 타인의 인정에 몹시 목말라 있다. 때문에 자신의 극단 평가와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시종일관 민감하다. 가족은 뒷전이다. 그에겐 그저 옛 영광에 지나지 않는 짙은 버드맨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옛적의 영광에 도취된 나머지 버드맨의 그림자를 벗어던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리건은 결국 자신의 아내를 떠나게 만들었고 딸과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과 같은 오붓한 추억 하나 없는 쓸쓸하고 무능력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를 자극하는 버드맨의 무의식은 처음엔 내면의 목소리로만 등장하여 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헤집어 놓다가 점차 윤곽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구체적인 시각적 형태를 갖추기에 이른다. 보잘것 없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 속에서 방황을 거듭하며 리건 스스로 만들어낸 무의식은 그의 정신분열을 더욱 가속화하고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무의식과의 끝없는 사투에서 혼란을 느낀 리건은 결국 버드맨을 떨쳐내기로 결심한다. 학수고대해왔던 연극무대 입장 전 아내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그동안 아내와 딸에게 가장으로서의 소홀했던 모든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그 굳은 결심을 내비친다. 실제 연극 무대에서는 자신에게 실제 총을 사용하여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데 그는 이 행위를 통해 자신의 배우로서의 진정성을 최대한 표현하고자 했다. 리건은 무대가 끝난 후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서로 모욕적인 언사를 주고 받기도 했던 칼럼니스트에게서도 나름의 호평을 얻는다.


얼굴에 심각한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리건은 병문안을 온 딸과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며 무너졌던 부녀간의 신뢰를 회복한다. 리건이 입원한 병원의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버드맨의 자아는 말없이 변기 위에 앉아 그를 응시하는데 이는 지속적으로 그의 정신을 흔들어왔던 그 무의식이 더 이상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은유한다. 그는 상념에 잠긴 채 창문을 열고 밖을 응시하다가 돌연 창밖으로 몸을 던진다. 잠시 후 병실에서 아버지를 애타게 찾던 샘이 열려 있던 창밖을 올려보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아니면 그토록 갈구해왔던 자신만의 인생을 마침내 이룩한 것일까. 답은 아마도 리건이 초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항상 타인의 시선을 통해 환기시켰듯이 그의 딸 샘의 미소에 힌트가 들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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