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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가루두스푼 Sep 30. 2022

흙수저의 세상바꾸기

개천에서 용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안녕하세요.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하고, 이룬것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못쓰는 글이지만, 가끔 글로 소통을 할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현실이 힘듭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글은 자서전 형식으로 쓴글이지만, 내가 이만큼 고생해서 잘하고 있으니, 이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으니 힘내라는 뜻으로 쓴것이 아닙니다.

"고생은 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내가 고생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고생인 것이고 가장 힘든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의지, 간절함, 실제 능력과 스마트함이 있어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당연히 더힘들었던 분들도 계실것이고, 이정도도 양반이네 하실분도 계실겁니다. 이겨내시고 성공하신분들도

사연 공유해주시면 후배들이 좋은 것은 참고하고 이겨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조언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결과, 이력을 가지고 있는 지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언을 하느냐도 중요합니다. 제가 과연 그정도 결과와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왠만한 사람들과 비교해도 연령에 비해, 뒤지지 않는 능력과 객관적 지표, 결과 들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부끄럽지만, 이런 글을 써보고 있네요. 이유는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 했습니다.


시덥지 않고 오지랖글이라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그냥 편안히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글이지만, 이를 통해 어떻게 이겨냈는지 방법, 경험, 요령을 보고 자기에 맞게 데입(활용)하여 이 험난한 세상 건승해 나가시길 함께 기원합니다.


글이 길어 읽기 힘들테지만, 한분에게라도 도움 되었으면 하여, 그럼 써내려 갑니다.


- 콩가루 인생의 시작-

흙수저들은 다 알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생활보호대상자(생보자)라고 하면 국가대표 흙수저구나 하면된다. 그만큼 못산다고 확인, 증빙이 되어야 나라에서 인정하고 받아주기때문이다. 생보자, 영세민 또는 기초수급생활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사람들은 보통 장애인, 고아, 고령자, 아주 못살면서 몸불편하고 가족 대대로 못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듯하다. 뭐, 국민임대주택이나 생보자로 살아본 사람들은 단어만 들어도 어떤 출신이다를 알 것임.


난 생활보호대상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되기전까지는 생보자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살았다. 처음부터 계속 지원을 받았던건 아닌걸로 알고 있고 초등학교 고학년때부터 생보자 자격이 주어진것으로 알고 있어서, 더어렸을 때는 더욱 힘들었었다.

생보자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네식구가 약 10평도 안되는 방두개짜리 코딱지만한 마치 원룸같은 국민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아봤고, 그곳에서는 고층에서 투신한 사람이 흰색 천에 싸여있는 것도 여러번 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지원도 없이 다가구 주택에 사글세로 단칸방에 살았었는데 연탄불을 피우고 자살한 옆집 아저씨도 봤고,네식구가 가끔 연탄가스도 먹고도 자랐다.


어릴적 그기억은 아직도 잊지못하는 충격이자 지워지지 않는 현장도 경험으로 기억속에 남아 있다.

울 엄마는 앉은 뱅이 양다리를 아예 못쓰는 1급 중증장애, 울 아부지는 한쪽 다리절고 여기저기아픈 4급 장애, 그리고 내겐 나이어린 여동생 1명 있었다. 우리가족은 그나마 길바닥에서 엄마가 구두닦이를 하면서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살았으며, 집에 가진것이 너무 없어서, 나중에 경차라도 하나 우리집에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나도 결혼할 수 있을까? 평범하게만 살아도 좋겠다였다.

개떡같은 인생 망나니로 살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돈도 없이 짐짝만 같던 중증 장애인 부모는 오히려 부담되고 죽을 때까지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에 난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없이 많이 해보았다.


당시는 유유상종이라고 주변사는 친구들도 매 마찬가지 답없는 놈들 밖에 없었고, 온전한 놈이 거이 없었으며, 성인이 된 지금은 내 스스로가 더욱 성공하기 위해, 그리고 올바르게 살아야겠다 싶어, 다 손절하고 연락도 안되는 상태이다.

나이먹고는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하니 조금 외로운? 생각이 가끔들때가 있긴하다. 부랄친구나 평생 좋은 친구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하도 사는게 어렵고, 더럽고 힘들고 서러워서 책임도 못질거면서 왜 낳았냐고 울 엄마에게 화도 많이 냈다. 밥먹다 화가나서 상도 몇번 뒤집고 집구석이 이렇다보니 10살이 될때까지도 글도 집에서 못배워서 초3때나되서야 글씨 어느정도 스스로 알기 시작했고,, 글을 늦게 알다보니 학업 진도를 못따라가서 중학교때까지 항상 맨뒤쪽이었다. 고등학교 가서는 다소 수준이 낮은 공업고등학교에 겨우 야간이 아닌 주간으로 입학했는데, 첫 수업부터 수업시간에서 만큼은 열심히 해보자 해서 성적이 그나마 괜찮았었다.


하지만, 항상 학창시절은 결식아동에 공부도 못하는 답안나오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때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점심을 제공해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때는 알바를 하며, 오토바이로 등하교를 하기도 했고, 맨바닥에 박스깔고 추운 상가에서 겨울에 자본 기억도 있고, 장애4급 아부지는 술먹고 행패에 가정폭력에 도박에 뭐 안좋은 건 다했었고 도박빚에 카드빚도 많았고,, 나도 많이 맞고 자랐으며, 내가 성인이 되고서야 이혼을 강제로 시키고 이과정에서 모두 급박하게 몸만 챙겨서 나와서 어릴적 사진이나 추억, 개인 물품 등등 못챙겨서 다른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어릴적 사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나는 울엄마만 지금껏 모시고 살았고. 아부지란 사람은 연끊고 생사도 모르게 살고 있다.


죽었다 연락오면 빚때문에 상속포기각서 쓸라고 대기중..

초딩때부터 신문배달, 짜장면배달, 가스배달, 피자배달 그리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안해본것 없이 섭렵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군대는 생계곤란 이라는 사유로 내가 세대내 가장으로 완전 면제까지 되었다.

* 당시 군면제 조건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부양가족 3명이상, 친족까지 재산이 거의 없고, 부모가 모두 장애, 생활보호대상자 등 여러 조건이 내가 청소년 가장임을 증명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정도 였기에 생계곤란이란 사유로 완전면제가 되었다.

면제되고 운좋게 회사도 취직은 했는데,,, 돈벌기 시작했다고 생보자에서 바로 탈락... 임대주택도 나가라고 함.


회사는 내가 능력 없으니까 기술배우려고 기술직으로 시다부터 들어갔음. 직업훈련원에서 기술과 이론 3개월 배우고.. 그렇게 시작했다..

성인이되고서도 만원이 큰돈처럼 느껴짐..

회사다니니 나라에서 나오던 지원금도 끊기고 내월급으로 먹고 살려니 더욱 빠듯하더라,,,

이후 얼마 되지않아 벌어봤자 먹고살기 힘들고 집에 빚은 늘어갈뿐이고, 이렇게 살아서는 답이 없다 느끼고 물에 빠져죽자고 맘먹고 오토바이 타고 물길로 달리는 도중. 순간 드는 생각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건 바로, 그래 이렇게 죽기로 결정했는데, 어차피 죽은 목숨, 죽을 힘을 다해 성공하려고 한번 노력은 해보고 안되면 그때 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죽을 힘으로 뭔가를 해보자고.

그날이후 나는 회사일하고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하려고 노력하고, 회사다니면서 야간대 다니고, 편입도 하고, 대학원도 나왔다. 외국어도 하나 할 줄알고 일할 수 있으면 쉬지않고 돈벌고 일하고 공부하고 스팩에 도움되면 다할라고 노력해봤다.


그렇게 한 10년 지나니 해놓은 게 좀있고, 뭔가 남는게 있어서 못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니 해놓은거랑 남은게 아까워서 더 못 죽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되어서 다시 또 열심히 노력하고 달렸다 그렇게 또 몇년지나니 결과들이 쌓여서 스팩도 생기고 능력도 있어서 어디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 수준은 됬다.

어릴적 오토바이로 폭주도 뛰고 오토바이 정말 목숨걸고 잘탄다 소리도 듣고, 정말 답없다 했는데, 이렇게 바꿜 수가 있더라. 나도 신기하다. 지금도, 오토바이 나한테 주면 윌리나 잭나이프 같은 것도 아직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사실 운이좋아서 안죽고 안다치고 사지는 멀쩡하네,, 확실히 운칠기삼도 있음..

10년넘게 회사다니면서 밤이슬 맞으며 공부하고, 남들 놀 때 제대로 못놀아보고 했지만, 지금은 그만한 보상이고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한다. 바로 다른사람들 힘든거 고생도 아니다라는 말 절대 안한다. 그사람 인생 내가 살아보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다른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고생이란건 내가 진짜 고생했다고 스스로 생각되는 것이 고생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너보다 내가 낫다. 너보다 내가 힘들었다가 아니라. 고생은 스스로가 정말 힘들었다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뿐이며, 고생은 주관적이고 추상적이기에 다똑같은 기준을 둘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살아남은 자가 위너고 결과가 있고 잘사는 사람이 위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와도 살아남고, 죽을 힘을 다해서 결과만들고 부자가 되면 그걸로 끝이다. "아쉬움 없게 살아봐야한다. 돈도 한번 벌어는 보고 죽어보자."


평범하고 보통사람들은 다시 어리거나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들 많이 이야기 한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아니다. 다시 끔찍한 그 젊은 시절로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않다. 절대로.

남에게 손벌려 본 적 없이 순수하게 회사생활, 알바로 돈벌면서 재태크도 해보고 혼자 성공하려고 달려와봤다.

이렇게도 생각해봐라. 경차라도 우리집에 끌수 있을까? 시절을 생각하며, 지금은 조그만 소형차라도 끌면, 그때보다 나으니 됬다라고 생각하고, 한발한발 내딛고 몇년뒤 지나면 또 결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분명, 다른사람들도 같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같은 출신이 이겨낼 방법은 먼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닌 단기목표, 눈앞에 하나씩 결과를 만들며, 꿋꿋이 헤쳐나가며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고, 그 후 뒤돌아보면 이뤄놓은 것이 생겨야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살아남은 포인트>

- 목숨걸고하면 할 수 있다.

- 성과를 내려거든 눈에 보이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쌓는 결과를 만들어라.

- 성실함과 자신감, 자존감은 기본이지만 이속에 겸손함은 항상 필수.

- 객관적인 스펙(이력)과 능력을 만들어라. 누가봐도 잘났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 개뿔 가진거 없어도 마음은 대차게. 자신감과 내가 낸데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많은 데 그 중에 하나 느낀것을 꺼내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일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해야할때 명확하게 잘하는 사람의 차이점은 이랬다.

보통 사람보다는 타고난 사람이 확실히 잘했다. 그러나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을 타고난 사람은 따라가지 못했다.

근데, 즐기는 사람을 이기는 사람이 바로 노력(끈기)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결국 목숨걸고 간절하게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이 끝까지 결과를 만들고 해내었다.


국가대표 흙수저 출신이었던 나는 지금 회사 잘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있고 차, 오토바이도 있고 거기에 토끼같은 애들도 둘 있다. 소소하게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고, 물론 아직 빚도 남아있지만,,, 말이다.

참, 위 글내용 중에 다쓰지 못한 것들도 아직 많아 앞으로의 글에서도 조금씩 경험담을 공유할 예정이다.

회사생활도 했지만, 자영업을 하며 쌩돈 1억 가까이 까먹은 경험, 요식업(패스트푸드, 커피 등) 관리해본 경험, 주식투자, 가상화폐투자, 스톡옵션 주식 행사 등등.. 워낙 삶이 다이나믹하여 분야를 막론하고 이야깃꺼리는 많음...


그리고 여동생을 언급했었는데 동생도 알바하며 대학가고 내가 학비도 보태고 결혼도 내가 시키고 잘살고 있다. 내 상황에서 결혼은 어떻게 했냐고? 하루라도 빨리 평범한가정, 누려보지못한 화목한가정을 가지고 싶어 농담반진담반 소개팅 닥치는대로 100번쯤 해봤다.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나만의 이상형을 찾아다녔는데 있더라 외모보단 마음이 더착하고 이쁜사람,,

한 두,세번 만나보다 세번째 만남에 이여자다 싶어, 나의 현황, 출신, 비젼, 현재 자산등 다 공개하고 나는 이렇게 앞으로 살것이고 삶의 계획이 어떻다라고 첨부터 이야기 했다.


나는 이런놈이니 결혼을 전제로 앞으로 만나자 쇼부 쳤다. 들어보고 아니다 싶음 첨부터 시작도 하기싫어서 말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소원을 들어주었는지 나의 흙수저 환경도 이해해주고 미래를 봐준 지금의 조강지처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 물론 먹고살수 있는 수준의 직장과 능력, 비전이 명확하게 있어야 자신감을 가지고 여자를 만날 수 있다.

혼수도 없고 양가 부모님 도움없이 둘이 빚만 가지고 원룸에서 시작도하고,, 힘들고 했지만 이겨내고 함께 했다.

여자도 포기하면 안된다 찾으면 분명히 있다. 나의 장점이라고 할수 있는 부분인 끈기와 쉽게 포기하지 않는것이 도움이 되었다. 노력과 간절하면 이뤄질확률이 높다 옛말에 유지자경성, 무한불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평범하게 살기 힘들거란생각과 그건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현실이 되더라.

소박하지만 그때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감사하면서 살려고 아직 노력 중이다.

저남자도 할수 있고 저여자도 할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한번 해보고 안되면 그때 죽어도 된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살게 했다.

목숨걸고 해보다가 안되면 그때 죽어도 된다는 것은

타고난사람, 즐기는사람, 노력하는 사람 보다 더 능력있고 잘해낼수 있는 힘이된다. 그건 바로 간절한 사람의 힘이다.

쓰러지지않는 근성과 스마트함도 있어야 하지만,, 해봐야 이것도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수준인지, 어떤 놈인지 내스스로가 알 수 있다. 알고나서 포기하던 계속 도전하던 결정하면 된다.

살아보기로 했다면 결과를 낼수 있는 것 하나씩 매년 이뤄나가봐 그렇게 매년 만들어가며 버티다보면 꼭 이뤄질거다 살수 있는 힘이..

이글이 제2의 나같은 흙수저 출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모두 힘내길. 우린 모두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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