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영화] <서치 아웃> 통해 보는 우리 사회 민낯
3월 16일, 'n번방 사건'의 운영자 조주빈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추악한 범행들의 실체가 세상에 하나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 '감시자' 등 다양한 직책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워갔다.
조주빈이 과거 자신의 범죄에 이용한 시스템과 굉장히 흡사한 방식의 SNS 범죄를 다룬 영화 한 편이 눈길을 끈다. 영화 <서치 아웃>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 ㈜스톰픽쳐스코리아
지난 2013년 러시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흰수염 고래 게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서치 아웃>은 성민(이시언)과 준혁(김성철)이 지내고 있는 고시원에서 이웃 여성이 갑자기 자살하면서 벌어지는 SNS 추적 스릴러다.
영화 <서치 아웃>은 예리한 시선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진 이야기꾼 곽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 러시아에서 정체불명의 게임을 한 청소년들이 연속적으로 자살을 한 사건을 언급하며 "SNS를 통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미션을 수행한 후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된다는 것이 어쩌면 사회적 외로움과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SNS가 가진 이면과 삶의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전했다.
청년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영화로 녹여내다
▲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 ㈜스톰픽쳐스코리아
자장면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며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성민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준혁은 고시원에서 알게 된 사이지만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깝다. 두 사람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청년이 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보지만 취업의 벽은 높기만 하다. 서로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시원 이웃 여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며칠 전만 해도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미래의 꿈을 거창하게 떠들어대던 그녀였다. 뭔가 이상하다. 준혁은 수십 번 그녀의 자살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자살한 그녀의 SNS를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준혁은 의미심장한 댓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레시키갈)
에레시키갈이라는 닉네임과 비슷한 댓글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 어디서 봤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의 SNS 계정에서였다. 최근 일어난 자살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SNS 계정에는 모두 에레시키갈이 남긴 댓글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그는 이웃 여성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 사건이 아님을 느끼고 성민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우리가 그녀의 죽음을 밝히자." (준혁)
▲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 ㈜스톰픽쳐스코리아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수익으로 근근이 버텨온 준혁이지만 SNS에서는 인기 인플루언서다. 그는 자신의 SNS 인력망을 총동원하여 흥신소 '착한 사람'의 사이버 전략 테크팀의 브레인 누리(허가윤)와 함께 '사립 탐정단'을 꾸린다.
본격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 탐정단은 에레시키갈이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의 여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부터 찾기로 결심한다. 탐정단이 에레시키갈에 다가가면 갈수록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수많은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n번방 사태'와 '추적단 불꽃'이 떠오른다
"미션을 수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행적이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에레시키갈)
영화 중반에 들어서자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n번방 사태'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에레시키갈을 쫓기 시작하면서 마주하게 될 그의 추종자들은 조주빈을 따랐던 'n번방'의 수많은 직원들과 오버랩된다. 에레시키갈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신분과 그간의 행적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미션을 그대로 수행한다는 시스템도 꼭 닮아있다.
우연히 이런 실상을 알게 되면서 사건 깊숙이 파고들어 해결하려는 사립 탐정단은 n번방의 실체를 처음으로 경찰에 알린 '추적단 불꽃'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가 왜 범행을 끊을 수 없는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형 요즘 공부는 하고 있어? 형 시험 벌써 떨어졌다면서? 형이나 나나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인데 말야.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 건데?" (준혁)
▲ 영화 <서치 아웃>의 한 장면. ⓒ ㈜스톰픽쳐스코리아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연출을 맡은 곽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취업이 힘든 사회현상, 공권력 부패, SNS가 가진 폐해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수많은 현상을 다룬다.
영화는 수많은 반찬의 먹을거리로 가득하지만 손이 잘 가지는 않는 상차림처럼 어느 한 곳에 마음을 집중하기가 어렵다. 필요 이상으로 튀는 조연 캐릭터는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마치 엔딩에 등장할 것만 같은 웅장한 배경 음악과 무분별한 클로즈업 샷의 남발은 영화의 집중도를 계속해서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서치 아웃>은 'n번방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과 맞닿아 있다. 다만, 만약 이 영화가 장편이 아닌 40분 이내의 단편이나 중편정도로 제작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 영화는 오는 9일 개봉한다.
별 점 : 3/5(★★★)
한 줄 평 : 시의성만큼은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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