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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llow Sep 17. 2019

뉴올리언스

-세상밖으로 시간속으로 2 (렛츠북 2019)-

뉴올리언스에서 흐느적거리다     

미국 북부 미네소타 주에서부터 멕시코 만 입구에 위치한 뉴올리언스까지 3700킬로를 달려 온 미시시피 강은 어느 새 처음의 그 청순한 물 빛깔이 짙은 암갈색의 흙탕물로 바뀌어 있었다. 뉴올리언스 시와 알저어스라는 섬을 왕복하는 선상에서 미시시피 강의 흐르는 강물을 생각 없이 바라본다.     

강은 항상 나를 끌어당긴다. 예전 러시아 니즈니 노보그라드(구 고리키 시)의 볼가 강변에서 그리고 카이로의 나일 강변에서 그 길이만큼이나 길었던 아득한 시절부터의 사람들 삶을 생각하고 이곳을 거닐었을 알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강을 따라서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문학이 나온다.  고리키는 볼가 강을 오가는 선상에서의 화부 경험을 ‘어머니’라는 소설로 녹아냈고, 윌리암 포크너는 미시시피 강을 끼고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젊은 시절 작가로서의 꿈을 ‘용사의 봉급‘이라는 소설을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이집트의 나깁 마후푸즈 역시 ‘뒷골목의 아이들’을 쓰면서 나일 강에 스며있는 사람들의 향기를 맡았으리라! 뉴올리언스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내던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걸었던 이유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뉴올리언스는 루이지애나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다. 프랑스의 탐험가가 이 지역을 발견한 이후 루이 14세에 바친다는 충성심에서 루이지애나라고 이름 지었다. 예전 미국의 농부들은 곡물들을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내려 보낸 뒤 그곳에서 대서양으로 향하던 배로 유럽과 무역을 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이 뉴올리언스에서 미국 상품의 보관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자, 미시시피 강의 동쪽을 지배하던 미국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다. 3대 제퍼슨 대통령은 미시시피 강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호전적인 나폴레옹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하여 크게 기대하지 않고 뉴올리언스를 사겠다고 제의하였으나 나폴레옹은 예상치 않게도 루이지애나를 포함하여 프랑스 관할 모든 지역을 팔겠다고 하여 1500만 불에 프랑스로부터 구입하였다. 이는 그 당시 미국이 통치하던 지역과 거의 같은 규모로서 뉴올리언스 지역만을 보면 단돈 7불에 산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그 당시 영국이 이 지역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뉴올리언스 역시 영국이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어 그 이전에 미국에 파는 것이 프랑스의 이해와 일치된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에 간다고 하면 누구든지 프랑스 구역(French Quarter)을 찾아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버번거리(Bourbone Street)와 프랑스 시장(French Market)을 다녀 보라고 하는데 이는 미국 어디를 가더라도 짧은 역사와 일천한 문화뿐이어서 미국에서 느끼기 어려운 역사의 짙은 향기를 프랑스 문화가 스며있는 이곳에서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밤에 나가본 버번 거리는 재즈 연주로 귀청이 떠나갈 듯하다. 들어간 술집에서 4명의 연주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있고 그 앞에서 관광객들이 흐느적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다. 맥주 한 병을 뽑아들고 연주를 듣고 있노라니 거기서 처음 본 듯한 젊은 남녀가 바로 앞에서 서로 부둥켜않고 프렌치 키스라고 할 정도의 깊숙한 입맞춤을 하는데 쑥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얼굴을 돌리기보다 오히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른 술집 앞에서는 눈부시게 하얀 젊은 백인 여자가 상체를 다 드러낸 채 젖가슴 부위만 살짝 가린 모습으로 서 있는 가운데 흑인이 옆에서 이 여자를 미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백인이 흑인을 상품으로 내놓았었는데 이곳에서는 흑인이 백인을 옆에 두고 사람을 끌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남는 것은 없는가 보다!     

뉴올리언스의 가장 오래된 커피 집으로 부둣가 한편에 위치한 Cafe du Monde의 풍경은 싱가포르에서 자주 다녔던 어느 허름한 식당과 비슷하였다. 더운 날씨 탓에 누구나 오갈 수 있게 열린 커다란 건물에 천장에는 선풍기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베트남계 종업원들이 투박스럽게 주문을 받아 나르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허덕대기는 하였지만 커피 한잔과 엄청난 파우더 안에 푹 박힌 3개의 작은 도넛이 베이너(beignets)라고 하여 가장 유명하여 맛을 보니 기막히다. 간식으로는 일품이 아닌가 한다.      

이곳의 음식 특색 중에 하나는 케이준(Cajun) 스타일이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우리의 짬뽕이나 비빔음식으로 보면 된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서인도 제도, 아프리카의 여러 음식 제조방식을 혼합한 것으로 특히 바닷가여서 해산물이 주 재료이다. 케이준은 캐나다 최동부에 위치한 노바 스코시아에 살던 사람들로 영국으로부터 추방당해 남쪽으로 오게 되었다. 케이준 음식은 우리 입맛에는 딱 맞는데 고추장을 항시 버무려 왔던 나는 타바스코라는 매콤한 소스를 더 곁들여 나름대로 새콤한 맛을 더하여 본다. 타바스코는 이곳 루이지애나에서 개발되었는데 석유개발에 실패하여 빈털터리가 된 사업가가 여러 조미료를 버무려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개발된 케이준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서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음식점에서나 식탁마다 타바스코 소스 병이 놓여 있다.     

작은 가재(crawfish)의 맛도 일품이다. 이 생선의 주산지이기도 하며 더위를 피해 주로 진흙 속에서 살기 때문에 잡기도 쉽다. 11-12월부터 많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양식이 잘되고 싼 가격에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교수부부가 작은 가재를 먹자고 들고 온 것이 쌀가마니 크기의 커다란 봉투이었는데 어떻게 이 많은 양을 먹을까 싶었지만 너무 맛있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는 듯 하였으며 오히려 빨리 먹은 사람에게 눈치를 주게 된다. 적당히 삶은 것을 머리와 몸체를 비틀어 분리한 다음, 몸체의 눌러 나오는 살을 먹고 머리 부분은 빨아 먹게 되는데 많이 먹으려 하다 보니 머리 부분은 적당히 먹으면서 수시로 몸체를 눌러대었다.     

이곳의 더위는 피하기보다 즐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버번 거리에서 본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40도가 넘는 물 더위임에도 검은 양복과 검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흑인이 양절모를 쓰고 검은 색의 우산인지 양산인지를 들고 걷는 모습이 너무나도 색다르기만 하다. 물론 이것만이 이 지역의 특색은 아니며 거의 다 벗어던진 모습의 사람도 수시로 보게 된다. 인종전시를 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 다양하고 진기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고 나 스스로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돌아다녀도 되기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프랑스 구역의 거리를 거닐면서 예전 독일 동부의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바이마르와 같은 문화적인 모습과 싱가포르에서 느꼈던 열대의 자연 모습을 같이 연상하게 되었다. 동독 지역에 가게 되면 거리 구석구석마다 연륜이 쌓여있는 상점들이 자신만의 특색을 가지고 손님을 끈다. 건물들마다 오랜 연륜을 뽐내는데 뉴올리언스에서도 그러한 모습이다. 차이가 있는 것은 동독의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라기보다 이곳에서는 자연에서 내뿜는 강렬한 열기가 더해지고 있어 적당히 흐트러진데 더하여 싱가포르에서 느꼈던 끈적끈적함도 보인다. 문화와 자연이 어울린 곳이다 보니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의 이름을 딴 포크너 하우스라는 책방은 프랑스 구역의 한 중간에 있지만 물어물어 찾아야 할 정도로 숨어 있었다. 들어서니 노부부가 맞이하는데 어느 고객을 대상으로 포크너 작품에 대하여 설명하는 양상이 대수롭지가 않았다. 책방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진 태도로 다음날 있을 어느 작가의 서명행사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말에 그 고객은 동의하는 표정을 하면서도 다른 일이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나가는 것으로 볼 때 십중팔구 오지 않을 것이다. 포크너의 뉴올리언스 단상(New Orleans Sketches)이라는 책을 집어 돈을 지불하고자 하였다. 주인은 3단인 오래된 장롱 안에 깊숙이 감추어진 카드기계를 사용하여 영수증을 발급한 후 장부에 연필로 하나하나 써내려가면서 작은 계산기를 이용하여 세금과 영수가격을 적어 20년 전 동대문 고서점가에서 본 그 모습을 연상한다. 40여 년간 익숙하였던 방식이었지만 지난 수년 동안 기계를 통하여 더럭더럭 나오는 영수증에 매몰되어 이러한 방식이 신기하기만 하다. 관광객인지 이곳에 사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책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 정말로 책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나처럼 포크너의 냄새를 맡고 싶어 하여 그러한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거리를 벗어나면 꼭 보아야 할 거리가 챨스 거리라고 한다.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가운데 전차가 지나고 플라터나스 나무로 연상되는 나무 양쪽 뒤편에 프랑스식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있다. 남부의 명문인 튤레인 대학과 흑인이 많은 로욜라 대학에는현대식 건물이 거의 없고 200여 년 전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색깔에서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되고 이래서인지 영화의 촬영장소로 널리 이용된다.     

아쉽게도 뉴올리언스가 문화의 본고장으로보다는 최근에는 허리케인으로 더 잘 알려지면서 이 지역의 경제가 많은 타격을 받고 있다. 2005년 ‘카트리나’라는 허리케인으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1500여 명이 죽고 재산상의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 당시 48만 명의 인구가 25만 명까지 줄었다가 회복하였다고 하지만 아직 37만여 명에 불과하다. 수년이 지났어도 거주 인구가 회복되지 못했고 따라서 학교 수도 복원되지 못했다. 항시 사건이 일어나면 누군가를 탓하게 되지만 전혀 겪어보지 못한 자연재해로 제방부근의 지역은 5년이 지나 가본 시점에서 여전히 널브러진 모습이었다. 직접 타격을 받은 지역을 돌아보니 물이 할퀴고 간 흔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 수 있었으며 집집이 비어있는 가운데 간간이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주변지역을 청소하고는 있었지만 삶에 애착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묘지 역시 그 당시의 참담함을 말해준다. 뉴올리언스 지역이 해수면보다 낮다보니 무덤도 땅 위로 만드는데 허리케인으로 인하여 이 무덤이 벗겨지고 무덤자체가 물에 잠기어 빠져나가면서 오랫동안 잠들었던 시신도 떠다니고 묘지도 색깔이 바래어 거무스레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카트리나는 예술품을 비켜갔다. 뉴올리언스 미술관의 지하에 소장하였던 미술품은 4인치 정도의 받침대 위에 두었는데 정확히 그 정도까지만 물에 잠기어 다행스럽게도 10여 품을 제외하고는 수천 점의 미술품이 보존되었으며 이는 하늘의 도움이라고 하는 미술부관장의 이야기가 머리를 맴돈다. 내가 방문한 미술관에서는 카트리나,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이라크의 전쟁, 중국 쓰촨성의 지진 피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재난(disaster), 노화(aging), 도움(caring) 등으로 분류하여 전시하여 놓았다. 그 당시 처참하였던 광경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고 있어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뉴올리언스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곳은 세계 2차 대전 기념관이다. 미국의 어느 지역보다도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역사적 기록과 함께 충실하게 전시하고 있다. 긴 총검으로 무릎 꿇린 한 서양인을 참수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진은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못지않게 전율을 일으킨다. 이곳에서는 적나라한 사진 자료와 함께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곁들여져 있어 일본이 아무리 부정해보아도 선조의 만행을 부정하기에는 화끈해지는 전시관이다. 그곳에서 만났던 미국인은 일본이 이렇게까지 전쟁에 열을 올리고 만행을 저질렀는지 몰랐다고 할 정도이어서 미국 전역에서 일본을 고발한 기록관으로서 이만한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지역을 돌아보다 본 후 발걸음이 다시 다다른 곳은 역시 미시시피 강이다. 한낮의 뙤약볕이었지만 그 강변을 따라 상념 없이 걷다보니 더위도 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물가로 내려가게 된다. 깨어진 돌 사이로 미시시피 강의 흑갈색 물이 들어오지만 막상 잡고 보니 천연덕스럽게도 투명하다. 멀리 북부에서 시작된 이 물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왔듯이 이제 다시 머나먼 여행을 떠나 혹시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 내 고향으로 갔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물을 내려놓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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