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4 공유 1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대한민국구석구석 Oct 12. 2017

강릉 안반데기에서 쏟아지는 별빛에 취해보아요

이제 제법 불어오는 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지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시야가 좋아지는 이 계절에 반드시 즐겨봐야 하는 게 하나 있지요. 바로 하늘에 쏟아놓은 듯 반짝이는 '은하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별을 잘 볼수 있는 곳. 별을 만나러 강원도로 떠나보았습니다. 


느지막이 집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강원도 강릉의 작은 마을 대기리. 안반데기로 더 잘 알려진 대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안반'은 떡을 칠 때 쓰는 것으로 가운데가 우묵하고 넓은 통나무 판을 말하며, '데기'는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 덕의 강릉 사투리입니다. 

해발 1,100m에 자리한 안반데기는 우리나라 최대 고랭지 채소 재배지역이기도 한데요. 이즈음 거두는 대기리의 씨알 굵은 고랭지 배추는 아삭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잔디처럼 펼쳐진 고랭지 배추밭은 사진작가들이 탐내는 최고의 풍경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이 아름다운 풍경에 묻혀 원 없이 별빛에 취해 볼 생각입니다. 운이 좋다면, 은하수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투명한 가을하늘에 기대를 걸어 봅니다.

해발 1,100m에 위치한 안반데기는 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산한 영동고속도로와 헤어진 건 강릉이 아닌 대관령 나들목에서입니다. 안반데기는 행정구역상 강릉시에 속하지만 평창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합니다. 강릉과 평창이 경계를 이루는 고루포기산(1,238m)과 옥녀봉(1,146m) 사이에 자리한 탓이지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나들목에서 알펜시아리조트까지는 길이 널찍하니 참 좋습니다. 내년 2월이면 이곳에서 화려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볼 수 있을 테지요. 멀리 바라보이는 스키점프대가 참 멋지네요. 산뜻한 도로는 용평리조트 인근을 지나면서 모습이 많이 바뀝니다. 왕복 4차선 도로는 그 폭이 반으로 줄고,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네요. 뭐랄까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안반데기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올라야 하는 피덕령은 그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3km 가까이 이어지는 이 길은 차 두 대가 교행하기도 버거울 만큼 폭이 좁고, 또 가팔라 운전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안반데기 별보기 명소로 알려진 멍에전망대

안반데기에서 별 보기 좋은 곳은 멍에전망대와 일출전망대입니다. 두 전망대는 대기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언덕에 각각 위치합니다. 일단 멍에전망대로 길을 잡습니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시간인데도 멍에전망대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네요.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도 보이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촬영 포인트를 확인하는 사진가도 여럿 눈에 띕니다. 어슴푸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금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설렘과 지루함이 함께하니까요.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지루함보다는 설렘에 더 무게를 실어 주어도 될 듯합니다. 솔직히 지루할 겨를이 없습니다. 전망대 위 아담한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니까요. 빙글빙글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그 너머로 보이는 강릉 앞바다도 참 아름답습니다. 물론 드넓은 배추밭도 이곳에선 놓칠 수 없는 풍경이지요. 이제 막 수확이 시작돼 듬성듬성 붉은 땅이 드러난 건 조금 아쉽지만요.

풍력발전기 뒤로 보이는 무수히 많은 별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산촌의 밤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든 탓입니다. 완만한 능선 위로 고운 오렌지빛 노을이 내려앉으면 이곳의 밤은 시작됩니다. 분주히 오가던 배추 실은 트럭의 붉은 미등도 그제야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이즈음 은하수는 저녁 8시 이후부터 관측이 가능하다.

순식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싸인 건 정말 한순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내 별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위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옆으로 북극성도 반짝입니다. 알파벳 W 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도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네요. 수면 위로 올라오는 물방울처럼 돋은 별들은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밤하늘을 채워 갑니다. 하얀색 물감을 검은 도화지 위에 뿌릴 때처럼 말이지요. 욕심만 앞선 눈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안절부절못했던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멍에전망대 위로 떠 있는 은하수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까요. 마침내 멍에전망대 위로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희뿌연 연기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진 은하수는 사실 육안으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하의 안반데기라도 빛 공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요. 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를 보기 위해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정도의 노력은 들여야 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 노력으로 은하수를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입니다. 도시에서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별을 보기 위해, 은하수를 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네요.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이 감사한 건 그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늘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별똥별 하나가 그때처럼 은하수 위로 긴 꼬리를 남기며 흘러갑니다.

별 관측을 위해서는 두꺼운 외투와 헤드랜턴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강릉 바다에서 밀려온 습한 구름이 밤하늘의 별을 하나둘씩 지워 버립니다. 새벽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입니다. 은하수도 더 이상 보이지 않네요. 별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네요. 왜냐고요? 아직 제대로 된 별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원 없이 별을 보고 나서 별을 보지 못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하시죠? 

첩첩산중에서 만난 아름다운 일출

안반데기에서 아름다운 건 별과 은하수뿐이 아닙니다. 사실 안반데기는 별이나 은하수보다 일출로 먼저 이름을 알린 곳이니까요. 그러니, 이왕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면 일출도 꼭 한번 보고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앞서 제대로 된 별을 보지 못했다 말씀드린 것도 바로 일출을 두고 한 말입니다. 천문학에서 별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으로 정의하고 있으니 태양이야말로 진정한 별인 셈이지요. 말장난 같지만, 수줍은 새색시처럼 산머리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일출과 마주하고 나면 '아, 기다리기를 잘했구나' 싶을 겁니다. 더욱 날이 쌀쌀해 지기 전, 투명한 하늘을 기회삼아 이번 주말엔 안반데기로 별여행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keyword
대한민국구석구석의 브런치입니다.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