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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Oct 27. 2022

아직도 이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아직도 이민을 가면 더 나은 삶을 보장받거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이민에 대한 저의 생각을 여기에 조금 나눠볼까 합니다. 


우선, 이민은 모두에게는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호주에 이민 와서 잘 사는 사람도 봤고, 정말 힘들게 살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기도 하는 가족들도 봤습니다. 우리에게 이민의 환상을 심어준 것은 많은 글과 영상 속 예쁘게 포장된 이민 성공사례들 때문이겠죠. 하지만 실패한 케이스도 굉장히 많아요. 그렇지만 그분들은 굳이 밖으로 드러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죠. 저는 이민이 답이기도,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이민 확률을 높이려면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민에 대한 환상을 지우고 현실적인 이민의 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 준비하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가족들이 호주에서 만족하고 잘 사는지 제가 알았던 분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한 번 정리해 볼게요.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니까 참고만 해 주세요~ 세상엔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경우들이 존재하니까요.)


1. 우선 그분들은 대체로 영어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스카이 대학을 나온 분들이 많았고, 이민 와서도 인맥을 잘 활용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한국의 스카이는 호주의 한인사회에서도 무시할 게 못되죠. 하지만 이분들은 아마 한국에 계셨어도 괜찮은 직장에, 나쁘지 않은 일을 하고 있겠죠? 호주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맥보다는 실력으로 공정하게 경쟁하고 고용하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밖에서만 그렇게 보이지만 않을 뿐 실은 마찬가지로 인맥이 굉장히 중요하죠. 한때 우리나라의 '낙하산'처럼 대놓고 내정자가 있는 게 아니라, 지원자가 열심히 모든 절차를 밟아서 지원을 하게 만들죠. 인터뷰까지 다 하죠, 마치 내가 진짜 그 자리에 뽑힐 확률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실은 애초부터 내정자가 있었다면 정말 힘 빠지는 일이겠죠. 물론, 내가 너무너무너무 넘사벽으로 실력이 뛰어나다면... 조금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 경제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가족도 없이 거의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호주에 처음 이민을 오면 이래저래 잃는 돈도 많고, 생각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굉장히 많아요.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나가는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최소 십억 이상을 들고 오고, 처음 마땅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1~2억 정도 정착금으로 지출이 나가도 괜찮은 정도라면 좀 더 여유롭게 이민 생활을 자리 잡을 수 있겠죠. 생활이 당장 쪼들리지 않으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차근차근 밟아가거나 여유롭게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거고요. 이런 분들 역시도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겠죠? 다만 호주를 선택해서 왔을 뿐. 


3. 호주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이민 가서 산다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인데,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을 별로 그리워하지 않거나 한국에 별 미련이 없는 분들은 호주 생활에 더 만족하고 사시더군요. 어떤 분은 한국의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도 않고,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님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었거나, 부모님이 사건 사고를 많이 만드셔서 계속 수습을 하며 살아야 한다거나, 시댁과 엮이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지만 맏이는 아니고 막내라 좀 더 자유롭게 이기적?인 삶을 살아도 된다면 호주의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럽겠죠. 


4. 전문적인 기술이 월등하게 뛰어나신 분. 옛날에 어떤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 얼떨결에 호주에 살러 오셨는데 타일에 엄청난 기술이 있으셨다고 하더군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호주인들은 흉내내기 힘든 뭐 그 정도의 기술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영어도 거의 하나도 못했지만 그 기술 하나로 호주에서 자리 잡으시고 돈도 엄청! 버셨죠. 호주인들이 감탄할 만한 기술이 뭐라도 하나 있으면 자리잡기가 수월하겠죠. 한동안 호주인들이 근접하기 힘든 기술을 가진 한국의 미용사분들이 정말 인기였었는데 요즘은 뭐니 뭐니 해도 IT가 아닐까 싶습니다. 호주에서는 IT의무교육을 초등학교에서는 200시간 이상으로 늘렸다고 하는데 이 숫자만 들으면 엄청나게 들리지만 그만큼 뒤처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한국의 IT업계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20~30대라면 강력하게 이민을 생각해보라고 할 것 같아요. 자신의 능력만 인정받으면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연봉을 받으며 원하면 재택근무하며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당연히 모든 블루칼라 직종은 호주에서 엄청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실력만 뛰어나다면요. 


5. 사람들과 만나서 소맥 하고, 수다 떨고, 같이 모여서 등산가고, 밥 먹고 하는 거 보다는 자연으로 혼자 캠핑이나 싸이클링을 다니거나, 낚시를 다니거나, 뭔가 혼자서 자연을 즐기며, 혹은 자연을 벗 삼아하는 취미가 있거나 그런 삶을 살고자 하시는 분들도 아주 만족하시더군요. 호주는 정말 자연환경만큼은 좋거든요. 공기와 숲과 동물들과. 호주의 동물원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분도 뵈었으니까요. 호주에서의 캠핑은 정말 한국에서 말하는 캠핑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자연 상태에 가깝지요. 원시적인 것에 가깝다고 할까요? 한적한 시골에 저렴한 집에서 살면서 언제고 캠핑을 다닐 수 있어서 다른 어떤 불편함도 감수하고 살 수 있다는 분도 계시더군요. 


6. 가족 중 누군가가 신체적 육체적 장애가 있다면 한국에서의 삶보다 호주가 훨씬 더 좋겠지요. 지금까지도 저는 호주의 그런 편견 없고 차별 없는 모습들을 보면서 여전히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프로 럭비의 물 떠다 주는 water boy는 다운증후군, 주요 방송사의 고정 리포터는 항상 휠체어를 타고 진행하고, 자신의 의안과 의족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거나 얘기하고, 팔이 하나만 있어도 수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수영하고, 더  중요한 건 그걸 쳐다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스퍼거스, 난독, 자폐가 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죠. 럭비 경기가 끝났는데 선수가 관람석 바로 앞에 앉아있던 water boy에게 달려가 그를 안아주고 그도 필드로 넘어와 선수들과 아무렇지 않게 축하하는 모습이 한국에선 언제나 있을까 하고 생각했죠. '우리들의 블루스' 이후로 한국이 좀 더 바뀌긴 했을까요?  


7. 젊은 20대들. 아직은 부모님을 생각할 나이도 아니고 주로 자신만을 생각할 나이죠.^^ 이 나잇대의 젊은 분들은 정말 이것저것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 같더라고요. 아주 좁은 아파트에 (쉐어를 하며) 살아도 괜찮을 것이고, 어떤 힘든 일을 해도 견뎌내고, 실패도 두렵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기 쉬운 나이인 것 같습니다. 아주 열심히 무슨 일이든 해서 자리 잡고 성공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죠. 20대는 외국에 나가 살아 볼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추진해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다만, 20대의 고단한 삶이 30대, 40대까지 별 차이 없이 이어진다면 평생 비주류로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 수도 있어요. 그래도 호주의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으니 어떻게든 시민이 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게 목표는 아닐 테니까요. 


자, 그럼 이제 위의 경우들을 뒤집어 볼까요? 


1. 나는 영어를 못한다. 혹은 그냥 의사소통만 겨우 된다면 주류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항상 비주류로 한인사회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죠. 영어는 무조건 기본으로 잘해야 합니다.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이집트인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랍어를 쓰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 이거나, 한국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일 테니 정말 제한적이겠죠. 당연히 주류가 못 됩니다. 


2. 이민 갈 돈이 빠듯하게 있거나, 힘들게 겨우 모은 돈으로 처음엔 어떻게 1년쯤 버티다가 최대한 빨리 직업을 구해서 어찌어찌 살아지겠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죠. 하지만 가끔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시고, 모은 돈 다 쓰고, 영주권도 못 따고, 창피해서 한국도 못 돌아가니 버티고 또 버티며 그냥 그냥 살기도 하시더군요. 돈은 여유롭게 있는 것이 좋고, 그것이 안된다면 도착하면서 거의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해놓으시는 게 좋아요. 한국의 사교육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사교육이 판치지 않는 호주가 더 좋을 것 같으세요? 호주도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수학, 연극... 그리고 사립학교... 얼마든지 호주의 교육도 돈이 많이 들어갈 수 있죠. 다만 대다수가 그런 것 없이 공립학교에 다니니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거죠. 내 아이가 엘리트가 되려면 그곳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물론, 가족이나 아이가 없는 젊은 1인이라면 실패해도 튀어 오를 각오로 한 번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다만 멘탈이 강해야겠지요. 


3. 형제자매들끼리의 사이가 너무 좋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정말 각별하다면 늘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거예요. 한국에 한 번 들어오는 게 비행기 티켓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정말 외롭고 그립고 또 그리울 거예요, 가족이. 내가 지금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호주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자문하는 분들도 계시죠. 이민은 무조건 외롭습니다. 아무리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가족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이 나와 문화와 어린 시절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아니고, 나와 유전자를 나눈 가족도 아니고요. 40~50대쯤 한국에 다시 들어오고 싶으면 한국에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도 한 번 생각해보고 가세요. 이쪽으로 다시 건너 올 다리를 아예 태워버리고 저쪽으로 건너가실 각오인가요? 그건 죽을힘을 다해 성공하려고 노력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정말로 돌아와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면 참으로... 난감하죠. 


4. 월등하게 차별된 기술이 없다면 공기가 좋은 다른 나라에서 남들과 똑같이, 어쩌면 더 힘들게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집트에서 한국에 이민을 오려고 한다면 한국어는 당연히 잘해야 할 거고, 한국인 대신 고용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나 특출함이 있어야 하죠. 아니면, 그는 한국에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까요? 비슷한 실력이라면 외국인보다는 한국인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요? 언어는 기본, 기술은 평균보다는 무조건 뛰어나도록 갈고닦으세요. 


5. 사람 만나는 걸 정말 좋아하시나요? 그럼... 호주 생활이 많이 힘들 수 있어요. 호주에서 직장동료나 이웃사람들과 맥주도 마시고 바베큐도 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끈끈함이나 재미와는 정말 달라요. 현지인인 직장동료와 이웃들과 언제든 전화해서 술 한잔 하자고 하는 사이가 되기도 쉽지는 않죠. 저도 친한 호주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말이 더 잘 통하는 친구들은 홍콩계, 러시아계, 인도계 친구들이었어요. 토박이 호주인들은 친해져도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 깨기 힘든 아주 얇은 막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이게 살면 살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죠. 처음 몇 년은 잘 몰라요~ 서울 사람이 제주에 가서 몇 년을 살아야 진정으로 가까운 제주 친구를 여럿 사귀게 될까요? 


6. 장애가 없다면 한국이나 호주나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호주는 외모에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없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우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애가 없더라도 비만인데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옷을 입고 싶거나, 여성이지만 머리를 밀고 다니고 싶거나, 성 소수자이거나, 나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평등한 대우를 원한다면 호주가 여전히 조금 더 맞겠네요. 


7. 만약 지금 젊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20대가 아니라 30~40대인데 아이들을 위해서 이민을 생각하신다면, 내 아이가 그곳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지를 생각해보세요. 아이는 완전한 호주인이 될 수도 없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어요. 20대쯤엔 정체성의 혼란으로 참 힘들어할 거예요. 10대까진 당연히 호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보면 호주인이 아니라는 걸 아주 미묘하게 느끼기 시작할 거거든요. 또한 한국에서도 그들은 완전한 한국인이 못 될 거고요. 만약, 아이가 부모가 원했던 대로 이민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잘 살게 된다면, 부모가 평생 모국을 그리워하며 살 수도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한국이 그리워질 거거든요. 이 경우엔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좀 고민해보시고, 본인도 노후에 자유롭게 한국에 왔다 갔다 할 만큼 돈을 열심히 벌어두세요~ ㅎㅎ


이민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이민 성공 사례들을 책에 싣고, 방송에 내보내고, 글로 쓰시는 것 같아요. 이민에서 실패한 사례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데 말이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자신의 이름을 쓰면서 얘기할까요? 대부분은 호주에서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한국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겠죠. 우리나라에 이민 와서 성공적으로 살고 계신 외국분들을 한 번 쭉 보세요. 몇 퍼센트 정도가 주류로 살고 있는지. 물론 외국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유명세를 타고 하는 그런 경우 말고 실제로 전문직의 임원이나 사업이나... 이런 한국인들과 경쟁하는 그런 부분들에서 말이죠. 그다음엔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하는 외국인들을 떠올려보세요. 어느 쪽이 더 많을까요? 호주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다행히 호주에서는 블루 컬러 직종들이 돈을 많이 받는 경우가 많아서 청소나 설거지, 도살장, 하우스키핑 등의 일을 해도 생활은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요. 


만약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신다면 얼마 후 그 나라의 안 좋은 점을 아주 많이 경험하게 되실 거예요. 그리고 견딜 수 없이 힘들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한국에서도 살 수 있지만, 호주의 자연이 너무 좋다거나, 사회적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마음에 든다거나, 동물을 대하는 호주인들이 부럽거나, 비건이 아무렇지 않은 곳이어서 좋거나 무슨 이유로든 호주가 너무 '좋아서' 이민을 결정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몇 배로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호주의 그 장점들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호주의 '단점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을 테니까요. 호주에는 참 많은 단점이 있거든요. 내가 누리고자 하는 호주의 장점이 너무나 커서 호주의 많은 단점들을 다 상쇄할 수 있으면 가도 괜찮겠죠. 그리고 정말 철저히 준비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서러운 이민 생활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모든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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