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를 네 번쯤 넘어 살아보면

by 코리아코알라
내가 첫 번째 십 대를 맞았을 때,
나는 인생의 모든 것을 알았다,
인생의 의미와 삶의 태도까지.


나는 인생에 통달한 십 대였다.


심오한 철학책을 읽고 인생에 대해 논했으며,

인생의 허무와 절망의 끝에서 울었으며,

항상 냉소와 희망의 부재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두 번째 십 대를 맞았을 때,
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돈을 위해 아양 떨지 않고, 내 가치의 잣대를 굽히지 않으며,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잘 사면,
멋지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참으로 다채로웠지만,

교만하고 건방졌던,

그러나, 쓸쓸하고 외로운 여행의 연속이었다.

다만, 그 긴 여행의 의미를 그땐 몰랐다.


내가 세 번째 십 대를 맞이했을 때,
내게 나는 없었다.
나보다 더 중요한 생명들이 내 곁에 왔으므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인생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구나 하고.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만,

내 안에 숨어있었던,

나 조차도 미처 몰랐던 나를 찾을 수 있었던,

오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인생은 허무하지도 절망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희망이 없지도 않음을

믿어야만 되었다.

그들이 내 삶이고, 내가 그들의 생명이었으므로.


내가 네 번째 십 대를 맞이했을 때,
내 여행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음을,
오르는 과정에 있었음을,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어느 풀잎 하나, 개미 한 마리 밟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간은 홀로 성공했다고 믿는 것 만큼

이기적이고 아둔한 것이 없다는 걸 이제 '안다.'


인생은 홀로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외롭고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리가 두 개인 까닭은

한쪽이 나아갈 때, 다른 한쪽은 반드시

뒤에서 받쳐주어야 하기 때문이란 것도 이젠 '안다.'


네 번째 십 대에 몇 해가 더해지도록
나는 '알게 된 것'만 가득하다.

아는 것이 많아지는 요즘,
고개 들고 올려다보는 교만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다섯 번째 십 대를 맞기 전에
알게 된 것들을 어떻게 실천할까?

처음으로 다음 십 대가
조. 금. 만.
천천히 와 줬으면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