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만드는 나라, 감정을 만드는 나라
며칠 전 한 카페에서 중국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한국 드라마 뭐 재미있는 거 없어?"
그는 여전히 한국 콘텐츠를 즐겨 보고 있었다. 몇 년째 이어지는 한류의 영향력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중국 콘텐츠는 왜 세계 시장에서 한국만큼 안 통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단순히 '퀄리티 문제'라고 말하기엔 중국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 수준도 이미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30년을 살면서 나는 중국의 문화 전략이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은 문화를 바라볼 때 '산업'과 '구조'를 먼저 본다. 문화 콘텐츠 자체보다, 그 콘텐츠가 어떻게 확산될 수 있는 플랫폼과 인프라에 더 집중한다. 기술 기업들이 문화 산업과 손을 잡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화웨이가 통신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끝나지 않고, 문화 콘텐츠 유통의 기반이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반면 한국은 '사람'과 '감정'에서 출발한다. BTS의 팬덤이 만들어낸 네트워크,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인에게 던진 보편적 질문. 그 힘은 구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길을 만드는 나라이고, 한국은 그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나라라는 것을.
중국이 만드는 길은 거대하고 체계적이다.
국가 정책과 산업 전략이 결합되어 문화가 흘러갈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든다. 기술 플랫폼이 확보되면 그 위에 수많은 콘텐츠가 올라간다. 양적으로는 분명 압도적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 길 위에 올려진 콘텐츠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이 만드는 길은 조금 다르다. 작게 시작하지만,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거대한 흐름이 된다. BTS의 팬덤이 바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길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두 나라 문화 전략의 차이를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상하이의 한 대형마트에 갔을 때, 입구에서는 청소 로봇이 조용히 바닥을 닦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중국인에게는 이미 꽤 익숙한 풍경이었다.
나는 그때 한국 드라마를 보던 순간이 생각났다. 한 장면에서 주인공이 눈물을 흘릴 때, 나도 따라서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었다. 그 드라마 속 감정은 당시에는 그저 스크린 속 이야기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이야기를 만든 나라, 한국에 대한 작은 이미지 하나를 나의 마음에 새기게 했다.
이렇게 마트에서 마주한 로봇과 한국 드라마를 보며 흘린 눈물은 기술과 문화라는 접점이 있다. 기술과 문화는 두 개의 다른 영역이지만 결국 사람의 삶과 마음에 닿는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로봇이 보여주는 현실과, 드라마가 남긴 감정은 모두 ‘어떤 나라가 사람들에게 남기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술과 문화는 이미 분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은 기술을 통해 문화가 확산될 인프라를 만들고, 한국은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언젠가 다시 기술을 선택하는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며칠째 친구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왜 정말 중국 콘텐츠는 한국만큼 세계 시장에 스며들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답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구조가 먼저인 사회와 감정이 먼저인 사회의 차이. 길을 만드는 데 집중한 나라와 그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한 나라의 차이.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차이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다.
길 위에 올려진 콘텐츠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혹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가 더 넓은 길을 만나게 된다면, 문화의 힘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상하이의 밤,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그 질문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