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제품 뒤에 숨은 중국의 얼굴
지난달은 내 생일이었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케이크 위에 나이의 숫자만큼 초가 꽂혀있다. 결혼한 이후로는 이미 스무 번째 맞는 생일이었다.
남편은 거실 서랍에서 꺼낸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문득 그 라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슈퍼에서 적어도 5년 전에 산 5위안짜리 싸구려 라이터였다. 몇 번 쓰면 고장 나는 그런 물건.
"저 라이터는 아직도 쓰고 있네."
나는 그 라이터를 뒤집어 보았다.
"Made in China"
라이터에 깨알같이 쓰인 그 글귀를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복잡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걸까.
금방 고장 난 물건과 중국의 초상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나는 가끔 통화를 한다.
엄마는, "인터넷에서 샀는데 벌써 고장이야. 다 중국 거라 그런가 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난감하다. 26년째 중국에 살고 있는 딸이 있는데, 엄마가 중국 제품을 이렇게 얘기하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나 역시 수많은 중국 제품들이 몇 주 만에 망가지는 모습을 봐왔다. 플라스틱은 깨지고, 전선은 끊어지고, 모터는 멈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똑같이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찍힌 제품인데도 어떤 건 10년이 지나도 멀쩡하다는 거다.
아이폰도 '메이드 인 차이나'고, 내가 산 천 원짜리 충전기도 '메이드 인 차이나'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상하이 전자상가에서 들은 이야기
몇 년 전, 상하이의 한 전자상가에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려고 했다. 인터넷에서 사도 되지만 마침 어디를 가려는 도중 전자상가 근처를 지나게 되어 직접 보고 고르기 위해서였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뭘 골라야 할지 몰라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이거랑 저거랑 무슨 차이가 있어요?"
그 아저씨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똑같이 생겼죠? 그런데 안에 들어가는 부품이 달라요. 이건 비싼 부품 써서 오래가고, 저건 싼 부품 써서 몇 달 쓰면 고장 나요. 근데 사람들은 싼 걸 더 많이 사요. 나중에 고장 나면 '중국 거라서' 그렇다고 불평하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 회사는 싼 거부터 좋은 거까지 다 만들 수 있어요. 돈을 주면요. 근데 다들 가격만 보니까 어쩔 수 있나요."
그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품질은 사실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의 거울이라는 것을.
시장에는 세 개의 중국이 있다
26년 동안 중국에서 살면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중국에는 세 개의 다른 제조업 세계가 공존한다.
첫 번째 세계는 타오바오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만나는 중국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싼 가격, 그리고 그에 걸맞은 품질. 이곳의 제품들은 애초에 오래 쓰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몇 달 쓰다 버리는 게 당연한 세계.
두 번째 세계는 샤오미나 DJI 같은 중간 지대다. 가성비를 내세우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품질을 보장한다. 소비자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선까지는 품질을 유지한다.
세 번째 세계는 화웨이, BYD, CATL 같은 기업들의 제품이다. 이곳의 제품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품질로 승부한다. 가격은 결코 싸지 않지만,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는다.
같은 '메이드 인 차이나'라도 이 세 세계의 제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
나는 가끔 한국에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우리는 천 원짜리 제품에 5년짜리 내구성을 기대할까.
왜 값싼 중국 제품이 고장 나면 '중국 탓'을 하면서, 그 값싼 제품을 선택한 우리의 소비 방식은 돌아보지 않을까.
물론 중국에도 문제는 있다. 위조품, 불량품, 안전 기준 미달 제품들. 이런 것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근절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메이드 인 차이나'를 하나로 묶어 '싸구려, 저품질'로 낙인찍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낙인 속에는 우리의 선택이 만든 결과가 숨겨져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생일 케이크의 라이터가 말해준 것
내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였던 그 5위안짜리 라이터는 아직도 우리 집 거실 서랍 속에 있다. 아마 내년에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그 라이터를 사러 간 날도 집에서 쓰고 있던 라이터가 갑자기 켜지지 않아 급하게 집 아래 편의점에 들렀다. 집에 흡연자가 없어 라이터는 일 년에 단 몇 번만 쓸 뿐이다. 라이터를 사려고 했을 때,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던 게 생각난다.
"이건 좀 더 비싼 건데 잘 켜져요. 싼 건 금방 고장 나니까."
나는 그냥 아무거나 집었다. 그런데 우연히 집은 그 5원짜리 라이터가 더 비싼 거였는지, 아니면 그 옆에 있었던 게 더 좋은 것이었는지 지금은 솔직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날 다른 라이터를 골랐다면, 나는 이미 몇 년 전 '또 중국 거 망가졌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혼한 지 20년, 중국 생활 26년. 그동안 수많은 중국 제품들을 써왔다. 어떤 것은 금방 망가졌고, 어떤 것은 아직도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점점 더 복잡한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싸구려 제품만 만들던 나라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와 경쟁하는 나라로.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의 소비 방식도 조금씩 변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이미 변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빨리 따라가느냐일지도.
거실 속의 라이터를 다시 꺼내 들어 쳐다보면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는 가격으로 물건을 보는가, 아니면 가치로 물건을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