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중국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상하이에서 26년, 그곳에서 만난 질문들

by 경계인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 어디 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한다.


“중국이에요. 상하이에서 26년 살았어요.”


그러면 공기가 살짝 흔들린다.


잠깐 멈칫하는 표정. 눈빛이 스치는 사이에 무언가 지나간다. 그리고 겸연쩍게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려는 상대방의 답변.


“아~ 그런데 전혀 중국 스럽지 않으시네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만히 웃는다. 칭찬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말속에 숨은 어떤 것들도 느껴진다. '중국 스럽다'는 말이 뭘까. 왜 그건 피하고 싶은 형용사가 되었을까.


나는 그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중국을 낯설게 느끼게 되었을까.

| 뉴스가 말하는 중국, 내가 보는 중국


나는 지금 상하이에 산다.


아침이면 동네 커피숍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사고, 쇼핑몰에 가서 외식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도시를 가로지른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다. 아이 학교 걱정하는 엄마들, 출근길에 지친 표정의 직장인들, 해 질 녘이면 공원에 모여 느린 음악에 맞춰 춤추는 노인들. 그들의 하루는 내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 속에서 보던 거대한 나라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물론 이 나라에도 문제는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일어난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 뉴스가 말하는 중국과, 내가 매일 거리에서 마주하는 중국은 때로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 감정은 어디에서 자라나는가


사람이 어떤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그 감정의 뿌리는 깊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역사라는 뿌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전쟁은 아직도 살아 있는 기억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그 경험은 생생한 상처로 남아 있고, 그 상처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중국군이 참전했던 역사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경쟁이라는 뿌리도 있다.


예전에는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은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BYD 같은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산업 뉴스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경쟁의식을 심어준다. 내가 잘 나가던 길을 누군가 따라올 때 느껴지는 그 불편함. 그것이 국가에 대한 감정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리고 미디어라는 뿌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런데 뉴스는 일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용히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는 기사가 되지 않지만, 갈등과 충돌은 쉽게 뉴스가 된다.


그렇게 몇몇 사건들이 반복해서 보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그 나라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굳어진다.


| 경험이 없는 감정은 어디로 흐를까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중국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실제로 중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국에 살아본 사람들은 모두 중국을 좋아하게 될까.


그것도 아니다. 오래 산 사람들 중에도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다. 오히려 더 잘 알게 되면서 싫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달라진다.


'중국'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수많은 얼굴을 가진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대한 나라일수록 하나의 이미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아름다운 풍경과 지저분한 골목길, 웃음과 눈물.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일까


한국 사회의 중국 인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갈등도 있고, 넘어서기 어려운 벽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혹시 하나의 사건을 보고 나라 전체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뉴스 속 몇 장면을 보고 14억 인구의 삶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질문도 떠오른다.


우리는 중국을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중국의 이미지'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 둘은 분명 다르다.

| 상하이의 밤, 강변에서


가끔 나는 강 주변을 산책한다.


강을 중심으로 빌딩들이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강 위를 유람선이 천천히 지나간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연인들은 난간에 기대어 속삭인다.


그 풍경 속에 서 있으면 문득 생각이 스친다.


한국에서 말하는 '중국'과 내가 매일 보고 있는 '중국'은

과연 같은 나라일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뉴스만 보며, 서로의 일상은 보지 못한 채.

서로의 갈등만 기억하며, 서로의 따뜻한 순간들은 잊은 채.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불빛은 여전히 반짝인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알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동안, 나는 오늘도 이 도시의 거리를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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